
이른바 ‘의령 우 순경’ 사건 희생자 유가족인 전원배(84) 할아버지가 26일 43년 만에 경찰이 공식 사과한 것에 대해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이같이 답했다.
의령 우 순경 사건이란 1982년 4월26일 경남 의령경찰서 궁류지서에 근무하던 우범곤(당시 27세) 순경이 예비군 무기고에서 소총과 실탄, 수류탄을 훔친 뒤 궁류면 일대를 돌아다니며 주민 56명을 살해하고 34명을 다치게 한 사건을 말한다.
이는 단시간 최다 살인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대한민국 경찰 창설 이래 최대‧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될 정도다.
지난해 처음 희생자와 유가족을 기리기 위한 위령제가 의령군에서 열렸다.
하지만 이때 위령제에는 경찰이 참석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래서 ‘반쪽짜리’ 위령제 지적이 일었다.
의령군과 경찰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직 상처가 아물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었다.
40년이 훌쩍 지났지만 일부 유가족들은 경찰에 대한 반감이 컸다. 그날의 상처가 여전히 치유되지 않았던 것이다.

의령군과 경찰은 유가족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부단히 애를 썼다.
특히 김성희 경남경찰청장은 지난해 8월 경남청장으로 부임한 후 이 부분에 가장 역점을 두고 신경을 썼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 순경 사건 희생자 유가족들도 지난날의 과오를 바로잡으려는 경찰의 진정성을 알게 되면서 닫혔던 마음의 문이 하나둘 열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사건 발생 43년 만에 경찰이 공식 사과하게 됐고, 올해 열린 두 번째 4‧26위령제에 더 큰 의미가 부여됐다.

김성희 경남경찰청장은 추모사에서 “1982년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무고하게 희생당한 분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대한민국 경찰을 대표해 이 자리에 섰다”며 “당시 초등학생이던 저는 엄청난 소식에 놀라던 부모님 얼굴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청장은 “국민을 보호하고 지켜야 할 경찰이 오히려 국민에게 위해를 가하는 결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며 “한없는 비통함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경찰은 제대로 사과의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그는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바로잡고자 한다”며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유가족, 여전히 그날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사과했다.
김 청장은 이어 “매년 아름다운 4월의 꽃들이 필 때마다 여러분의 가슴에는 그날의 아픔이 되살아났을 것”이라며 “오늘 이 자리가 비록 깊은 슬픔과 아픔의 자리지만 동시에 회복과 화합을 다짐하는 뜻깊은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는 경찰이 굳은 다짐 속에 여러분께 더욱 헌신하고 봉사하겠다는 맹세의 순간이기도 하다”며 “함께 아파고 함께 치유하는 가족 같은, 이웃 같은 경찰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전원배 할아버지는 우 순경 때문에 당시 21살이던 동생 전은숙씨를 하루아침에 잃었다.
전 할아버지는 “우 순경 사건이 자기 때 일어난 것이 아니라고 모른 척 할 수 있었는데 경남청장은 유가족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며 “모든 경찰의 잘못이 아닌 것을 안다. (경찰이 사과해서) 고맙다. 눈물이 나서 말도 제대로 못하겠다”며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사건 당시 우 순경이 쏜 총에 실탄 3발을 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배병순(92) 할머니도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았나. 흘러가는 세월이 약인기라…”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 청장이 사과 추도문을 낭독할 때 뒤쪽에 앉은 일부 유가족들은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무겁고 숙연한 분위기는 추모식 내내 계속됐다.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추모공연에 나선 가수의 추모곡이 시작되자 일부 유가족들은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오태완 의령군수는 추모사에서 “궁류면에도 봄이 있느냐고 유가족들은 43년 동안 물어왔다”며 “참혹했고 원통했고, 따뜻한 봄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날 만큼 아픔은 깊었지만 여기 핀 백철쭉, 연산홍처럼 이제 궁류면에도 봄은 피어날 것”이라며 흐느꼈다.
오 군수는 “경찰의 진정성 있는 마음을 희생자 유가족, 국민들께서 포용과 화합의 마음으로 받아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의령군은 그동안 희생자 추모 사업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결과물이 지금 보고 있는 4‧26 추모공원의 완성”이라며 “오늘 우리는 아픈 역사를 또 하나 매듭지었다. 그 매듭은 미래를 향해 내딛는 디딤돌이자 미래 세대에 생명과 평화, 통합의 나침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이제는 슬픔 속에서 희망을 건져낸 감동의 역사를 같이 만들어 가자”며 “궁류의 완전한 봄이 올 때까지 우리 모두 서로 손을 더욱 단단히 잡고 가자”고 말했다.
의령군과 경찰은 우 순경 희생자 유가족의 마지막 염원인 특별법 제정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유영환 유가족 대표는 추모식이 끝난 자리에서 김성희 청장에게 특별법 제정에 힘을 보태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김 청장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위원들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법안 제정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공직 생활 내내 이 사건을 가슴에 새기겠다”며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오태완 군수도 “유가족의 마지막 염원인 만큼 우 순경 사건 희생자 특별법 제정에 행정력을 집중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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