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구차량 지나는 길에 도열, 기도하고 눈물흘리고…박수 보내기도
장례미사서 中기도문 첫 낭독…'정세 반영' 정상 배치도도 막판 변경
프란치스코 교황이 영면에 든 26일(현지시간) 바티칸 시국과 이탈리아 로마 일대에는 40만명이 운집해 교황의 '마지막 여정'을 배웅했다.
가톨릭 교회가 '모든 사람을 위한 집'을 지향해야 한다던 교황의 뜻을 기리듯, 전 세계 국가원수에서 난민, 성소수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날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장례미사가 끝난 뒤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신이 안치된 관은 6㎞ 떨어진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성모 대성전)에 옮겨졌다.
운구 행렬에는 교황이 생전 공식 방문 시 신도들을 만날 때 사용하던 '파파모빌'(papamobile)라고 불리는 전용 의전차량이 사용됐다.
이 차량 뒤쪽은 원래 가급적 많은 사람이 멀리서도 교황을 볼 수 있도록 교황이 앉거나 일어설 수 있는 공간이 높게 설치돼 있었지만, 이날은 관을 실을 수 있도록 개조됐다.
바티칸 대성전에서 로마 시내를 가로지르는 내내 시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교황에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운구 차량이 지나는 아파트 건물에는 이탈리어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감사하다'라는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고, 기도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곳곳에서 포착됐다.
흰색 가운 차임의 사제들은 거리에 모인 시민들을 위해 가톨릭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성체를 시민들에게 일일이 나눠주기도 했다.
운구행렬 종착지인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앞에서는 난민과 수감자, 노숙인, 트랜스젠더 등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 40여명이 자리했다.
생전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언에 따라 교황청이 특별히 초청한 것이다.
운구행렬에 앞서 열린 장례미사에서도 관례를 깬 장면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장례미사 순서 전반은 라틴어로 진행됐으나, 프랑스어, 아랍어, 스페인어, 폴란드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영어, 중국어로 기도문이 낭독됐다.
특히 중국어 낭독이 포함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생전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려 애썼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을 반영한 것이라고 외신들은 해설했다.
바티칸은 다른 다수 국가와 달리 중국이 아닌 대만과 수교하고 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워 대만을 독립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중국은 1951년 대만을 정부로 인정한 바티칸과 단교한 뒤로 공식 외교관계를 맺지 않고 있다.

교황은 2013년 즉위한 뒤 끊임없이 중국과 관계 개선 노력을 기울였고, 2014년 3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편지를 주고받은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방중을 희망했으나 끝내 성사되지는 않았다.
장례미사는 라틴어가 아닌 정교회 전통에 따라 '그리스어' 기도로 마무리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전 우크라이나와 같은 분쟁지역 신도들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명해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언에 따라 그의 관은 평소 즐겨 찾던 로마 테르미니 기차역 인근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 묻혔다.
교황이 바티칸 외부에 묻히는 건 1903년 로마 라테라노 대성전에 안치된 레오 13세 이후 122년 만이다.
이날 교황의 장례식에는 130여개국 대표단이 집결하면서 사실상 외교의 장이 펼쳐지기도 했다.

특히 자리 배치도 관심을 끌었는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등이 맨 앞줄에 앉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 교황청 의전 매뉴얼에 따라 애초 세 번째 줄 정도에 자리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막판에 자리가 변경된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청이 '복잡한 국제정세'를 고려해 트럼프 대통령, 젤렌스키 대통령 등의 자리를 변경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교황청과 이탈리아 정부에 따르면 성 베드로 성당 장례미사에만 25만명, 운구 행렬에는 15만명 등 최소 40만명이 참석한 것으로 추산됐다.
2005년 선종한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 이후로 바티칸에서 열리는 최대 규모의 행사로, 장례식 전부터 전례 없는 보안 준비가 이뤄졌다.
각국 대표단이 동원한 보안요원을 제외하고도 수 천여명이 바티칸 및 로마 시내 일대에 배치됐고, 로마 인근의 해안에는 해군 구축함도 배치됐다.
이탈리아 공군의 유로파이터 전투기를 비롯해 폭발물 처리반과 레이더 시설, 드론 차단 장비 등도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날 자정부터 집회·시위가 금지됐으며 위험물을 탑재한 차량 통행도 전면 차단됐다.
성 베드로 광장에서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의료소가 설치됐고, 구급차 및 긴급구조대 요원들도 배치됐다.
<연합>연합>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