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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미칼럼] 미래가 실종된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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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5-05 23:15:52 수정 : 2025-05-05 23: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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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결 후 대선 정국 요동
‘이재명이냐, 아니냐’ 구도 여전
시대정신, 미래 담론 논의 없이
유권자에 차선, 차악의 선택 강요

이런 대선은 없었다. 집권 3년차도 안 된 대통령이 느닷없는 계엄 선포로 파면되고 조기 대선이 확정될 때만 해도 ‘질서 있는 선거’ 국면을 기대했다.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선거 판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우위를 달리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대법원으로부터 유죄 취지의 판결을 받았다. 국민의힘 후보로 뽑힌 김문수 전 노동부장관이나 무소속 출마한 한덕수 전 총리는 몇개월 전만 해도 대선 후보 명단에 없던 인물이다. 유권자들이 받을 투표용지에 최종적으로 누가 이름을 올릴지도 알 수 없다.

역대 대선 시간표를 감안하면 지금쯤 후보들은 시대정신을 논할 때다. 개혁, 탈권위주의, 경제살리기, 통합, 공정·정의와 같은 시대정신이 담론을 주도하고 그것을 상징하는 인물이 누구냐를 놓고 다퉜을 것이다. 12·3 계엄 사태로 또다시 헌정 중단 사태가 벌어진 뒤 정치권 인사와 전문가들은 제왕적 대통령과 국회 폭주를 제어할 개헌, 승자 독식의 선거제도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엄·탄핵 사태와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관세 폭탄으로 이중삼중고를 겪는 국민들은 경제 회생이 우선이라고 말한다.(본지 4월22일자 1·3·4면 보도) 먹고사는 문제인 경제는 모든 선거의 ‘상수’다.

황정미 편집인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거 양상은 그렇게 흘러가는 듯했다. 유력 후보인 이재명을 비롯해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 모든 후보가 인공지능(AI) 강국을 약속했다. 과거 기본소득 같은 분배 공약에 치중했던 이 후보 측은 “지금은 성장이 시대정신”이라며 이명박의 7·4·7 공약(경제성장률 7%·10년 내 국민소득 4만달러·세계 7대 강국)과 유사한 ‘3·4·5 성장’(잠재성장률 3%·세계 4대 수출국·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 구상을 내놓았다. 경선에서 떨어지긴 했지만 국민의힘 안철수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AI 토론은 인상적이었다.

통합만 14차례 언급한 이 후보의 수락 연설도 눈에 띄었다. “이념과 사상, 진영에 얽매여 분열과 갈등을 반복할 시간이 없다”며 먹사니즘, 잘사니즘을 내세웠다.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 후보는 좌우 인사들을 두루 접촉했다. 진보 진영 원로들은 “말의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며 입조심을 당부했고, 보수 진영 원로들은 “정치 보복 말고 통합하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수락 연설과 매머드급 선대위에는 이런 조언이 반영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기조는 지난 1일 대법원의 이 후보 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 판결 이후 뒤집어졌다. 이 후보의 민생 행보는 사법부를 향해 쏟아내는 민주당 인사들의 악담과 ‘이재명 구제법’ 추진에 묻히고 있다. 대법원 판결을 ‘3차 내란’ ‘사법쿠데타’로 딱지 붙인 민주당은 언제든지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추진할 태세다. 현실화하면 헌정사상 처음이자 민주당의 32번째 탄핵이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를 향해서도 재판 연기를 공개 압박했다. 선거 전 파기환송심에서 유죄가 나올 가능성에 대비해 피고인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재판이 정지되도록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 처리 절차도 밟고 있다.

이번 조기 대선은 처음부터 이재명이냐, 아니냐 구도였다. 이 후보가 이념 대신 성장·통합을 앞세운 전략도 ‘이재명 포비아’를 줄이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 후 민주당이 보이는 행태는 입법·행정부를 장악한 이재명 정권을 불안해하는 여론을 증폭시키고 있다. 지금껏 말한 대로 실천해온 민주당이 사법부마저 장악해 삼권분립 원칙을 깨는 건 시간문제로 보이기 때문이다.

김문수·한덕수 단일화와 빅텐트론이 성사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두 사람이 윤석열·광장 세력과 끊고 탄핵의 강을 건너는 ‘육참골단’의 결의를 보여야 의미가 있다. 누가 후보가 돼도 결국 전투는 ‘이재명이냐, 아니냐’ 전선에서 치러질 것이다. 선거가 최선을 택하는 절차가 아니라 차선, 차악을 택하는 의무로 전락한 지 오래다.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은 “누가 덜 나쁜가”를 놓고 고심해야 할 처지다. 민주주의의 축제라는 선거가 미래에 대한 기대, 나아진다는 희망 없이 그렇게 소비되고 있다.


황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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