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 지역 표적 타격은 현대전에서 가장 중시되는 요소다.
후방 보급소나 지휘소 등을 정밀 폭격하면 적군은 전투태세가 급격히 흔들릴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최대 수백㎞ 떨어진 곳까지 타격할 수 있는 다연장로켓이 주목받은 이유다.

현재 세계 각국은 하이마스와 이스라엘산 펄스(PULS) 등의 다연장로켓을 도입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만든 천무도 폴란드 등이 구매했다.
세계 시장에 이름을 알린 천무는 새로운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제작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상·해상·공중 통합작전을 강화할 차세대 다연장로켓 ‘천무 3.0’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 등 한화 방산 부문 계열사의 역량을 총결집하는 모양새다.
기존 천무를 지대함 다연장로켓으로 변형하는 ‘천무 2.0’까지 감안하면, 다양한 영역에서의 타격 작전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미사일에서 분리된 무인기로 표적 타격
18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기존 천무에 배회형 정밀유도무기(L-PGW)를 결합한 천무 3.0 개발에 나섰다.
배회형 정밀유도무기는 표적 지역 상공에서 탐지되지 않은 채 오랜 시간 머물다가 적절한 순간에 표적을 충격해서 파괴하는 드론이다. 카미카제(자폭) 드론으로도 불린다. 기존 미사일과 달리 최적의 타격 순간을 기다릴 수 있고 부수적 피해도 없다.
가장 잘 알려진 무기는 이스라엘 유비전에서 만든 히어로(HERO) 시리즈다.

사거리가 10~200㎞, 비행시간이 30분~6시간에 이른다. 보병, 경량 차량, 전차, 요새, 방공체계 등을 타격한다. 지상 플랫폼과 해군 고속정, 공군 수송기 등에서도 발사할 수 있다.
천무 3.0은 배회형 정밀유도무기를 미사일에 탑재해서 비행 범위를 극대화하는 개념이다.
폴란드에 수출된 천무는 일반 로켓탄과 함께 사거리 290㎞의 CTM-290 전술탄도미사일을 운용한다. 해외에서의 수요에 따라 사거리가 더 늘어난 미사일(CTM-X) 개발도 거론되고 있다.
이같은 미사일에 배회형 정밀유도무기를 탑재하면, 미사일은 천무 발사대를 통해 쏘아올려져 수백㎞를 이동한다. 목표 지역 상공에서 미사일과 분리된 배회형 정밀유도무기들은 개별적으로 움직이면서 표적을 탐지, 정밀타격한다.
미사일이 배회형 정밀유도무기를 수백㎞까지 이동시킨다면, 배회형 정밀유도무기는 그만큼 연료를 아끼면서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까지 손쉽게 진출한다.
비행거리나 시간이 짧은 소형 자폭드론도 미사일에 의해 발사된다면, 훨씬 먼 거리를 비행할 수 있다. 전략적 수준의 타격력을 갖추게 된다.

천무 3.0이 현실화하려면 탄도미사일 탄두부에 탑재하는 소형 자폭드론을 만들어야 한다.
협소한 탄두부에 다수의 드론을 탑재하는 만큼 접이식 날개와 프로펠러, 초소형 열전지 등을 갖춰야 한다. 매우 적은 양으로도 강한 폭발을 낼 수 있는 탄두 장약과 탐색기 등도 필수다.
멀리 떨어진 지상통제소와 배회형 정밀유도무기가 통신을 할 수 있는 데이터링크, 미사일에서 배회형 정밀유도무기가 순조롭게 사출되어 공중에서 엔진을 점화, 비행하는 기술도 확보해야 한다.
국내에선 관련 개념이나 기술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수년 전부터 전술지대지유도무기(KTSSM)에 탑재되어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는 자탄(子彈)인 장입유도자탄을 연구하고 실험해왔다. 자탄들은 특정 표적을 향해 유도되어 정밀타격한다.
한화 측도 오랫동안 기반 기술을 축적해왔다. 방산업계 소식통은 “한화가 매우 적은 양의 장약으로도 큰 위력을 내는 기술을 포함해 다양한 기술과 구상을 갖고 있다”며 “(천무 3.0) 개발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천무 3.0은 대북 억제력과 수출 경쟁력을 함께 강화할 수 있는 무기로 평가된다.
위성 추적이 어려운 곳에 은신했다가 고체연료 탄도미사일을 기습 발사할 수 있는 이동식 발사차량(TEL)과 열차 등은 한국군의 작전을 마비시킬 가능성을 갖고 있다.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움직이면서 미사일이나 방사포를 발사하고 숨어버리는 TEL을 파괴하려면, 갑작스레 나타나 이동하는 긴급표적을 정밀타격해 대화력전 능력을 높이는 무기가 필요하다.
미사일에서 발사되어 특정 지역 내 상공에서 분리, 체공 비행을 하면서 감시 정찰을 하다가 표적이 발견되면 타격하는 무기가 적절하다.
미사일이나 정밀유도폭탄은 이동표적이나 긴급표적 대응 능력이 부족하고 가격도 비싸다. 반면 배회형 정밀유도무기는 대당 가격이 저렴하며, 표적의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북한은 새로 개발하는 탄도미사일과 방사포를 TEL에 탑재하고 있다. 군이 유사시 빠르게 대응해서 파괴해야 하는 긴급표적이 더욱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배회형 정밀유도무기를 다수 발사하는 천무 3.0이 위력을 발휘할 여지가 생기는 셈이다.
해외 시장에서도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은 드론으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있다. 최근엔 전투 사상자의 80%가 드론 공격에 의한 것일 정도다.
이같은 상황에서 양측은 기동성을 강화해 생존율을 높이고 있다.
러시아는 드론 공격을 피하는데 중요한 속도와 기동성을 높이고자 자국 군인들에게 오토바이를 활용한 전술을 훈련시키고 있다. 우크라이나군도 사륜 오토바이와 사륜차 등을 사용한다.
러시아군을 공격하는 포병 무기도 초기엔 M777 견인곡사포가 주목받았지만, 나중엔 차륜형 자주포인 프랑스산 시저와 미국산 하이마스 다연장로켓 등이 더 큰 위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았다. 정밀하게 포격하고 신속하게 움직이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래전에서 기동성이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는 점을 보여줬다. 유사시 기습공격을 감행하거나 아군의 공격을 피하고자 이곳저곳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적군을 탄도미사일이나 정밀유도폭탄으로는 제압이 쉽지 않다.

이때는 다수의 자폭드론이나 배회형 정밀유도무기를 띄우는 것이 효율적이다. 지상 차량의 속도와 기동성은 드론보다 훨씬 낮다.
다만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 지역은 천무 3.0처럼 미사일에 자탄 형식으로 탑재, 목표 상공에서 사출해 선회비행하며 기회를 엿보다가 표적이 나타나면 타격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다영역·다목적 작전 위한 통합솔루션 필요
천무 3.0은 위성통신으로 연결되어 지상 및 해상의 다른 무기체계와 실시간 소통하며 임무를 수행한다.
공군 작전 지역에 있는 적 방공망을 사전에 무력화하는 임무나 상륙 작전 시 적군의 해안 방어체계를 파괴하는 임무, 전선 후방의 적군에 대한 선제 타격 등 전장 구분 없이 다양한 임무를 공동으로 진행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현대전에서 핵심적 교리로 분류되는 다영역작전(MDO) 개념에 해당한다. MDO는 육해공을 넘어 사이버와 우주, 전자전까지 통합하는 개념이다. 모든 영역의 군사 자원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한 몸처럼 작전을 수행한다.
이는 무기체계가 과거처럼 단일 플랫폼이 아닌, 통합솔루션 일부로서 기능하게 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지대함 다연장로켓 개념을 앞세운 천무 2.0은 현재 개발중인 사거리 50~160㎞의 CTM-MR 유도로켓에 적외선 영상 탐색기를 추가한 형태다.

적외선 영상 탐색기를 장착하면, CTM-MR은 차가운 바다 위에서 고열을 뿜어내는 함정을 포착해서 타격하기가 쉽다. 섬 지역에서 접근하는 군함을 육지에서부터 기습 공격할 수 있다.
실제로 섬이 많은 필리핀 등에서 천무 2.0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천무 2.0와 천무 3.0이 위력을 발휘하려면, 실시간 정보 송·수신과 감시정찰 능력 등을 갖춰서 플랫폼과 체계통합을 해야 한다. 군의 지휘통제체계, 다른 화력체계와의 연동도 필수다.
각각의 무기체계를 통합해서 정보와 명령이 실시간 전달·공유되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고난도의 과제다. 일부 선진국은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으나, 다수의 개발도상국은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사우디처럼 군 전력 현대화를 추진하는 개발도상국에선 개별 무기가 아닌 네트워크와 지휘통제, 군수지원 등을 포함한 통합 방산 솔루션을 구매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천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도 관련 솔루션과의 연계를 통한 패키지가 없다면, 시장에서 외면받을 위험이 적지 않다.
한국의 경우 한국군은 다수의 플랫폼과 소프트웨어를 통합 운용한 경험이 충분하다.

반면 국내 방산업계는 이같은 통합솔루션을 해외의 잠재적 고객에게 제시하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방산업계 관계자는 “우리 기업들은 패키지 영업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며 “지난해 10조원 규모의 호주 호위함 사업도 지상이나 대공무기 등 한국 방산의 장점들과 함께 제안했다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한화는 지상 및 항공우주, 해양 등에서 통합솔루션 확보에 나서는 모양새다. 영국 위성통신 서비스 업체 윈웹을 인수했고, 에스토니아의 무인 차량 기업 밀렘 로보틱스를 비롯한 다수의 기업과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천무 2.0과 3.0이 세계 시장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개별 플랫폼이 아닌, 장거리 정밀 감시 및 타격 능력이라는 통합솔루션을 구성해서 관련 체계를 패키지로 제안해야 한다.
기존 방산 강국들의 생산역량이 떨어진 전차와 자주포 등의 재래식 무기만 만들고 수출한다면, 세계 시장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MDO에 맞는 무기체계를 서둘러 구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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