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선 내일부터 재외국민투표 시작
직전 대선보다 투표 희망 1만명 ↑
냉철한 파트너십 구축 열망인 듯
언덕 위에 위치해 요코하마 명물 베이브리지가 시원하게 펼쳐져 보이는 요코하마 주재 대한민국총영사관 현관 옆에는 ‘조선왕조 통신사의 상’이 놓여 있다. 통신사절단 대표인 정사(正使)를 표현한 듯한 인물이 앉아 있는 모습 뒤로 일본을 찾을 당시 항로와 육로가 표시돼 있다. 대등한 관계에서 ‘신의를 나누는’(통신·通信) 외교의 상징으로서 총영사관이 신축될 때 세워진 것이다.
조선이 일본 막부에 보낸 공식 외교사절인 통신사는 약 400년 동안 20차례 일본을 방문했다. 문관뿐 아니라 무관, 화가, 음악가 등으로 구성된 수행원까지 300∼500명 규모로 꾸려진 통신사 행렬이 지나갈 때면 일본인들이 몰려 환영했다고 한다. 현지 관료, 유학자, 승려 등이 찾아와 필담을 나누고 글씨나 시문을 받아가기도 했다.

이들이 에도(현재 도쿄)에 들어가기 전 묵곤 했던 시즈오카 세이켄지(淸見寺)라는 사찰에는 통신사가 남긴 한시와 그림 48점이 남아 있다. 한·일이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공동 등재한 ‘조선통신사에 관한 기록’에도 포함돼 있다. 에도까지 반년 이상 소요되는 왕복 약 4500㎞의 통신사 여정은 조선·일본 문화 교류의 장이기도 했던 셈이다. 에도 막부 수립 전까지 통신사의 종착지였던 교토시의 역사 자료에는 “통신사의 방일은 문화 면에서도 큰 영향을 주어 회화나 가부키의 소재로 쓰일 정도였다”며 “선진적인 대륙 문화를 받아들이는 절호의 기회였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통신사는 주로 막부의 수장 쇼군(將軍)이 바뀔 때 초청을 받아 조선 국왕의 국서를 전달하고 답서를 받아갔다. 막부 측에 왜구 단속을 요청하거나 대장경, 경전 등을 전해주기도 했다.
일본 전국시대 혼란 등으로 100여년간 외교 관계가 단절돼 있다가 1590년 파견된 통신사는 성격이 조금 달랐다. 새로 집권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 의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급선무였다. 일본 새 정권으로부터 각종 푸대접을 받고 돌아온 통신사의 보고는 엇갈렸다. 서인 출신인 정사 황윤길이 “필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라고 우려한 반면 동인 소속 부사(副使) 김성일은 “그런 사정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후 황윤길과 비슷한 주장을 하면 “서인이 세력을 잃었기 때문에 민심을 요란시키는 것”이라는 반론이 나오면서 배척당했다고 선조수정실록은 전하고 있다.
중요한 외교·안보 사안에도 당파가 개입돼 판단을 흐린 것이다. 이후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6년여간 이어졌다.
조선통신사가 마지막으로 일본을 다녀간 1811년 이후 200여년 만인 지난 13일 오사카에 다시 통신사가 떴다. 2025 엑스포 ‘한국의 날’을 맞아 조선 시대 통신사 행렬이 재연된 것이다. 이번 엑스포를 상징하는 그랜드링을 따라 펼쳐지는 취타대 연주와 부채춤 등 공연을 관객들은 흥미롭게 지켜봤다.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으로 양국 문화에는 국경이 사라진 지 오래다. 비행기로 한두 시간이면 갈 수 있는 이웃 나라를 오가는 한·일 양 국민은 연간 1000만명을 넘는다. 문화 교류와 우호 확대에서는 사실상 온 국민이 통신사인 시대이다.
이제 곧 새 대통령이 뽑히면 한·일 정상 외교도 복원된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인 다음달 22일 전후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가 유력한 계기가 될 것 같다.
일본에 거주 중인 교민, 주재원, 유학생 등도 20일부터 엿새간 치러지는 재외선거에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다. 2022년 대선 당시 2만8800여명보다 1만명가량 많은 3만8600여명이 선거인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 중국, 일본 중에서 3년 전보다 선거인 숫자가 늘어난 곳은 일본이 유일하다. 한·일 관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한국의 정치 리더십 변화에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뜻일 터다.
한·일은 과거사 문제로 대립하고 있지만, 경제나 안보에서 이해관계가 비슷한 부분도 많다. 마침 두 나라는 미국의 관세 조치와 방위비 증액 압박 등으로 동병상련을 겪고 있다. 일본에 따질 건 따지면서도 국익 앞에서는 국내 정치적 이익을 뒤로하고 냉철하게 접근하는 정치 지도자가 탄생할 수 있을까. 오사카의 통신사 행렬과 요코하마의 통신사상을 보면서 든 궁금증이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