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박근혜 ‘4년 중임제’ 제안
임기 말 脫레임덕 위한 카드 활용
文정부 땐 발의… 야당 반발로 폐기
“개헌 논의 실패, 비생산적 정쟁 탓”
우리 헌법은 1987년 제9차 개헌까지 이뤄진 뒤 38년째 그대로다. ‘87체제’ 이후 여러 차례 개헌 논의가 이뤄졌고 두 차례 개헌안이 발의됐지만 매번 정치적 합의 도출에 실패하며 좌절됐다.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정당이 개헌의 필요성에 동의해 왔다. 그러나 정작 개헌 논의가 무산된 배경에는 정치권의 ‘파워게임’이 자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력을 쥔 정권 초기에는 대통령과 여당이 개헌에 소극적이고, 임기 말에는 지지율 하락을 만회하려는 여당과 이를 견제하려는 야당의 이해가 충돌하면서 개헌이 정쟁의 도구가 되곤 했다.

87체제 이후 만들어진 첫 개헌안은 2007년 참여정부에서 나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 4년 중임제 △대통령·국회의원 임기 및 선거일 통일 등을 담은 ‘원포인트 개헌’을 국회에 제안했다. 노 전 대통령의 임기는 1년도 채 안 남은 상태였으며 지지율은 20%를 밑돌 때였다.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비판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당시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당장 여당 의석도 줄었고 대선이 임박한 때 갑자기 개헌안이라니, ‘판 흔들기 의도’가 분명하다”고 비난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 내부에서조차 “개헌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지금은 어렵지 않겠냐”며 노 전 대통령과 거리를 뒀다.
노 전 대통령의 개헌 제안을 향해 “참 나쁜 대통령”이라 직격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박근혜·최순실(개명 후 최서원) 게이트’가 터진 뒤 지지율이 급락하자 개헌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대통령 연설문 유출 보도 등으로 국정 위기가 악화하면서, 개헌 논의는 자취를 감췄다.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직접 발의한 개헌안은 정권 초기의 높은 지지율이 뒷받침했음에도 결국 실패했다. 국회가 의결 최종 시한인 같은 해 표결을 진행했으나 의결정족수(192명)에 미달한 114명만이 참여해 투표 불성립으로 폐기됐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당시 대표가 문재인정부 지방분권 개헌은 ‘북한식 연방제 통일 목적’이라 주장하는 한편 소속 의원의 개헌 투표 시 ‘제명’이라는 강수까지 꺼내 든 탓이다. 당시 개헌안에는 △대통령 4년 중임제 △지방분권 강화 △기본권 확대(생명권·정보기본권·안전권 신설) △선거연령 만 18세 하향 등이 담겼다.
2020년 3월에는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의원과 미래통합당 김무성 의원 등이 주축이 돼 ‘유권자 100만명 이상의 발의로 개헌을 제안할 수 있다’는 내용의 원포인트 개헌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역시 같은 해 5월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정족수 미달로 폐기됐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역대 개헌 노력이 실패한 이유는 결국 서로에게 정치적 이득을 주기 싫어하는 ‘비생산적 정쟁’ 탓”이라며 “차기 정부에서 제7공화국을 열려면 권력구조에 한정해 야당의 원포인트 개헌안을 전적으로 수용한다고 하는 방법뿐”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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