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고향’ 광주서 개헌 제안
원로 의견 수용… 禹 의장에 사과
반헌법세력과 선 긋고 진보 결집
李 “합의 가능 案부터” 유연 접근
민주, 비전 제시·수권능력 과시
TV토론 첫날 의제 선점 노림수도
‘국민 합의 전제’ 당장 추진 안할 듯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8일 전격적으로 개헌 카드를 꺼내 들며 선거 중반에 승부수를 띄웠다. 당초 “내란 종식이 우선”이라며 개헌 논의에 선을 그었던 이 후보가, 민주당의 정신적 고향인 광주에서 개헌 의제를 띄운 것은 연합세력 구축과 중도층 확장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이 후보는 이날 제시한 개헌안에서 대통령 4년 중임제와 결선투표제 외에도 지방정부 참여 헌법기관 신설, 생명권·정보기본권 등 기본권 확대,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등을 제안했다. 그는 “합의 가능한 사안부터 차근차근 추진하자”며 ‘권력기관 개편’ 등 민감 이슈는 뒤로 미루는 유연한 접근도 병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헌법세력’ 전선 긋기
이 후보와 민주당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제대로 절연하지 못하고 있는 국민의힘을 반헌법 세력으로 규정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진영 원로들이 제안한 개헌 제안을 받아들이는 한편, 이 후보의 입법·행정 절대 장악을 우려하는 합리적 보수 세력에게 ‘권력 분점’을 제시하며 손을 내밀었다. 국민의힘보다 앞선 미래비전을 제시하면서 수권능력을 갖춘 세력임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민주당 선대위는 연일 윤 전 대통령과 김문수 후보의 연결고리를 부각하며 김 후보와 국민의힘을 반헌법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12·3 비상계엄이 위헌·위법 행위라는 헌법재판소 전원일치 결정을 김 후보가 “공산국가에서나 있는 일”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 “헌법수호 세력과 헌법파괴 세력의 싸움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 강조하는 식이다.
특히 보수 출신 인사들의 지지 선언은 광주 등 호남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이는 윤 전 대통령의 탈당으로 균열이 생긴 국민의힘을 부각하는 한편, 민주당의 포용성과 외연 확대 전략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무소속 김상욱 의원, 김용남 전 의원의 지지 선언도 이 같은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개헌 주장 중도층 포섭
이 후보의 개헌 제안은 중도층의 ‘개헌론자’를 결집할 수 있는 제안이기도 하다. 정대철 헌정회장 등은 이번 대선을 앞두고 ‘개헌연대’를 공식화하며 ‘빅 텐트’를 치겠다며 보수층과도 접촉한 바 있다. 이들 주장을 이 후보가 수용하며 합리적 중도·보수 세력에까지 민주당의 문호를 연 셈이다. ‘이재명정부’의 입법·행정 두 권력 독점을 우려하는 합리적 보수세력에도 손을 내밀었다는 분석도 있다.
이 후보는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뒤늦게 사과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기자들과 만나 “우리 의장께서 오해를 많이 받고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그 점에 대해 저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우 의장은 4월 초 4년 중임제 등 개헌을 제안했다가 당과 지지자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고 철회한 바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정 회장이 이 후보에게 개헌 의지가 있다고 우 의장에게 미리 언질을 줬고, 비상계엄 관련 권한을 손질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우 의장도 이에 공감, 대선과 함께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차원에서 전격 제안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TV토론 앞두고 의제 선점
개헌 이슈를 선점함으로써 이 후보는 경쟁 후보와의 개헌 이슈 다툼에서 우위에 설 수 있게 되었다. 어떤 후보가 개헌안을 내더라도 판단 기준이 이 후보의 개헌안이 될 수밖에 없어서다. 동시에 그간의 대선 후보들이나 역대 국회의장이 제안해왔던 ‘권한 나누기’ 의제 외에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하는 헌법기관 신설, 안전권·생명권·정보기본권 등 기본권 강화에 대한 논의도 이어나가자고 했다. 권력기관 개편 등 논란이 많은 것보다는 5·18 정신 헌법전문 수록, 기본권 개헌 등 합의가 어렵지 않은 것부터 하자는 ‘유연함’도 보여주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또 ‘7공화국’을 열어가자는 제안을 하면서 민주당이 미래를 보고, 비전을 제시하고 수권능력이 있는 집단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재명발 개헌안, 국회에서 실현될까
이 후보는 개헌 국민투표 시점을 내년 지방선거나 2028년 총선이면 좋겠다면서도 ‘국민적 합의’를 전제했다. 이 후보가 당장 개헌을 추진하진 않을 것이란 의미로 보인다. 이 후보가 당선된다면 인수위 없이 바로 대통령 임기를 시작해야 한다. 당장 내각을 구성하고 장관 임명 절차를 거쳐야 하는 상황에서 개헌 논의까지 겹친다면 자칫 국정운영에 집중력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민주당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해소하고 국회 권한을 높인 방안을 내놓은 만큼, 국회에서 언제든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호중 총괄본부장은 “대통령 권한 분산, 총리 국회 추천제를 골간으로 하는 7공화국 헌법 논의는 국회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개헌 논의를 권력획득 도구로 생각하지 말고, 진지하게 협의에 임해달라”고 국민의힘에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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