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투표 폐지 안 될 말… 위법 땐 일벌백계를
6·3 조기 대선에 앞선 5월 29~30일의 사전투표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기상천외한 사건과 사고가 이어졌다. 서울 신촌의 한 사전투표소에서는 투표용지를 받아 든 유권자들이 좁은 투표소 바깥에서 줄을 길게 늘어선 일이 발생했다. 그중에 일부는 투표용지를 가진 채 긴 줄을 피해 식사하고 다시 투표를 마치기까지 했다. 선관위는 유권자에게 편의를 봐주었지만 투표용지 반출이 부실한 선거관리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다행히 시민의식이 높은 유권자들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고 중앙선관위는 바로 전국의 투표소에 재발방지 지침을 전파했다.
김용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바로 “책임을 통감한다”고 공식 입장문을 냈다. 그러나 그 뒤에도 사전투표함에서 2024년 총선 때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투표지가 발견되었다. 투표지가 투표함 내부에 정전기 등 때문에 끼어 있었다고 한다. 더 기가 막힌 거는 서울 강남구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투표 사무원을 맡은 한 공무원이 남편 신분증으로 대신 투표하고 난 뒤에 다시 자기 신분증으로 투표하다가 적발된 일이다. 물론 용인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기표된 투표지가 발견되면서 자작극 의혹까지 나온 일 등은 더 조사가 필요한 상태이다.

이번에 사전투표는 전체 선거인 4439만1871명 가운데 1542만3607명이 참여해 34.7%를 기록했다. 무려 1500만명 이상이 투표했는데도 사건, 사고가 겨우 손에 꼽을 정도에 그쳤다면 오히려 한국의 투표 관리 수준이 높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권자의 기준은 완전무결이고 유권자의 기대는 절대적이다. 그 기대를 못 채운 선관위는 잘해놓고도 관리 부실이라는 꼬리를 단 셈이다.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도 다시 “진심으로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라고 했다.
선거가 끝난 오늘 선관위는 당장 노 위원장이 약속했듯이 문제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밝혀 엄정한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유권자에게 편의를 제공하려다가 생긴 사고는 규정을 더 강화하여 재발하지 않도록 고쳐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발생한 ‘휴먼 에러’는 더 철저한 재검토 작업을 거쳐 없애야 한다. 그러나 일부러 중복 투표나 투표 조작 등을 저지른 위법 사례는 현행법상 최고로 강한 수준으로 일벌백계해야 한다.
다음으로 사전투표제를 없애자는 움직임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이미 3월 4일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이 사전투표제 폐지를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2014년 지방선거부터 실시된 사전투표제도가 투표율 상승에 기여했으나 점차 그 효과가 줄어드는 중이고 2024년 총선에서 사전투표 관리에 엄청난 비용(722억원)이 들었으나 관리 부실 사례가 있다는 입장이다. 장동혁 의원은 “본투표를 옮겨 금·토·일 3일 동안 치르도록 하면 투표율 상승도 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투표 관리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와 의혹들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만약 ‘3일 투표제’가 현행 사전투표제에 비해 투표관리 비용에 큰 차이가 없고 투표율 상승에도 영향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어도 국회 통과만 된다면 별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3월 5일 출근길 한 라디오 방송에서 한 정당의 대표가 또다시 대만식 투표소 수개표 도입을 주장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사전 선거도 투표소 개표, 본 선거도 투표소 개표하는 것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제가 행안위에 있을 때 이미 선관위에서 가능합니다… 그 문제만 되면 많은 부정 선거의 의혹들이 해소가 된다, 이렇게 보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제가 크다. 사전투표를 투표소마다 바로 개표한다면 개표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추가된다. 그 비용을 더 들여서 개표한다 해도 투표 결과가 바로 공개되면서 생기는 일은 누가 책임지나. 투표 결과가 그다음 날 사전투표에 영향을 주고 그 결과가 또다시 셋째 날 투표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더 다독여야 할 거는 선관위 내부에서 일은 일대로 하는데 조금만 사고가 터지면 욕을 먹는다고 퍼지고 있는 사전투표제 폐지 분위기다. 사전투표제를 폐지하는 데 반대하는 유권자나 정당도 있다. 또 사전투표제를 없앤 뒤에 투표율이 떨어지면 누가 책임지나.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