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대통령 “일본은 중요한 파트너”
2024년 두 쪽 난 광복절 실망스러워
이념 갈등 아닌 국민 통합 場 돼야
1965년 5월 12일 독일(당시 서독)과 이스라엘이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이에 따라 롤프 프리데만 파울스 초대 주이스라엘 독일 대사가 텔아비브에 부임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나치 독일의 패배로 끝나고 20년이 흘렀으나 독일을 향한 이스라엘 국민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했다. 나치가 자행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로 600만명 넘는 유대인이 목숨을 잃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스라엘 시위대는 파울스 대사를 향해 “나치는 물러가라”고 외치며 물병과 토마토를 던졌다. 성난 시민들 속에 당시 26세 청년이던 레우벤 리블린도 있었다.
리블린은 훗날 이스라엘 국회의원과 국회의장을 거쳐 대통령(2014∼2021년 재임)까지 지냈다. 그의 임기 중인 2015년 이스라엘·독일 수교 50주년이 되었다. 이를 기념해 독일을 방문한 리블린 대통령은 요아힘 가우크 당시 독일 대통령한테 큰 환영을 받고 서로 어깨를 감싸 안으며 우애를 과시했다. 리블린은 홀로코스트의 흑역사를 의식한 듯 “인류의 존엄성에 대한 공격에 맞서 싸우기 위해 국제적 협조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가우크는 “독일인은 유대인과 이스라엘에 대한 도덕적 책임감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화답했다. 오늘날 한·일 관계에 비춰 보면 참으로 부러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독일·이스라엘 수교 후 1개월여 지난 1965년 6월 22일 도쿄에서 한·일 국교 정상화 조약 서명식이 열렸다. 수교 60주년을 맞아 올해 양국 간에 이미 여러 행사가 있었고, 하반기에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과거사, 독도 등에 관한 문제는 아무런 진척이 없다. 일본은 한·일 관계 개선에 그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사태로 중도 하차한 점이 못내 아쉬운 듯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과거 윤석열정부의 대일 외교 노선과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출 등을 강하게 비판한 점을 들어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가 4일 “민간을 포함한 한·일 교류를 더욱 활발히 해나가고 싶다”며 “한·일 정상회담은 조속히 하는 것이 좋다”고 밝힌 점은 그나마 고무적이다. 말로만 그치지 않고 꼭 실행으로 옮겨지길 바란다.
올해는 한·일 수교 60주년인 동시에 광복 80주년이기도 한다. 80년 전의 철천지원수와 친구가 되고 그로부터 60년이 흘렀다니 만감이 교차하는 대목이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일본을 “중요한 협력 파트너”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친일이냐 반일이냐 하는 양자택일 방식이 아니라 지혜롭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일로 일관했던 예전 모습과 사뭇 달라진 것이다.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직시하되 경제· 안보 등 양국 간의 현안은 미래지향적으로 풀어가겠다는 뜻이 아닌가 한다. 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 하겠으나, 일단 방향은 옳은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지난해 79주년 광복절은 국민 모두에게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진보와 보수 두 진영으로 갈라져 경축 기념식조차 서로 다른 곳에서 반쪽 행사로 치렀다. 대통령은 기념사에 일제강점기 35년간 우리 민족이 겪은 고통을 위로하는 말은 한마디도 넣지 않았다. 대신 이른바 ‘반자유 세력’을 겨냥해 “허위 선동과 사이비 논리는 자유 사회를 교란시키는 무서운 흉기”라고 비난했다. “검은 세력의 거짓 선동으로부터 국민을 지켜내겠다”는 다짐도 했다. 약 4개월 뒤 선포한 비상계엄이 바로 그 ‘국민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나 싶어 한숨만 나올 뿐이다.
이런 광복절은 더는 되풀이돼선 안 된다. 이 대통령은 80주년 광복절을 이념 갈등의 장이 아닌 국민 통합의 무대로 만들어야 한다. 일본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는 진영에 따라 상이할 수 있다. 그러나 식민 지배의 역사는 시간이 지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80년 전 조국을 되찾은 선열들의 희생에 경의를 표하고 과거사를 대하는 일본의 전향적 자세를 주문함이 마땅하다. 아울러 일본에 화해와 협력의 손길도 내밀기 바란다. 일본이 중요한 파트너라면 우리부터 먼저 그에 걸맞은 언행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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