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 산사태 2차 피해 우려도

경북 북부지역의 역대급 산불로 화마가 휩쓸고 간 안동시 일직면 원리 일대를 27일 오전 다시 찾았다. 이 마을은 산불 당시 화마에 초토화됐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상당 부분 정리된 모습이었다. 길가 곳곳에는 ‘모듈러주택 무료 상담’, ‘에어컨·보일러 필요 없는 집 짓습니다’ 등의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임시 주거용 주택이 모여 있는 산불 피해 이재민 단지에서 만난 김모(82)씨는 뒷짐을 진 채 불에 몽땅 타 철거된 집터를 말없이 응시했다. 뒤로는 야산, 앞으로는 마을이 보이는 곳에 100일 전엔 김씨의 집이 있었다. 김씨는 산불이 번질 당시 이웃의 도움으로 남편과 간신히 몸만 피해 살림살이 하나 건지지 못했다. 지난달부터 임시 주택에서 생활을 시작한 김씨는 임대 주택 사용기간이 끝나는 2년 후가 더 걱정이라고 했다.
김씨는 “정부 보상금이 나와도 건축 자재비와 인건비가 올라 보상금에 웃돈을 보태 집을 지어야 할 텐데 그럼 은행 빚 아니냐”면서 “노인이라 갚을 능력이 없는 데다 새집을 짓더라도 이곳에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고민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편과 좁은 집에서 지내느라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가로, 세로 각각 2.5m 남짓한 방에 한 명 몸만 누일 수 있어 한 명은 부엌 옆 통로에 접이형 간이침대를 깔고 생활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경북 산불 발생 100일(6월29일)을 앞두고 복구 사업에 장마까지 겹친 산불 피해 현장은 이제 본격적인 관심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시기가 됐다. 경북도는 정부 지원 계획에 따라 이재민 긴급구호와 농업·산림 복구를 추진한 데 이어 임시 조립주택 입주를 완료하고 있다. 하지만 몽땅 불타 버린 집과 논·밭·산 등 생활터전 복구까지 적게는 수년에서 많게는 수십년이 걸려 산불피해 이재민의 고통은 여전하다.

28일 도에 따르면 지난 3월 경북 북부의 대형 산불로 발생한 이재민 가운데 3개월이 지난 현재 대부분이 임시 주거용 주택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는 2495동의 임시 주거용 조립주택을 마련하기로 했다. 지역별로 안동 944동, 영덕 800동, 청송 457동, 의성 241동, 영양 96동이다. 도 관계자는 “우기가 닥치기 전에 입주가 완료되도록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는 451개 피해 마을 가운데 산사태 등 2차 피해 예방을 위해 위험목 제거 주택 인근 옹벽 설치 등 44억여원을 들여 지난 14일 공사를 모두 마무리했다. 하지만 산불 피해 지역에서 만난 주민은 한결같이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하면 산사태가 발생할까 두렵다”는데 입을 모았다.

안동 주민 박모(60대)씨는 “산불로 나무가 불타버린 데다 산지의 지반이 약해져 장마철에 많은 비가 내린다면 흙이 쓸려 내려오지 않겠냐”면서 “비만 내린다고 하면 걱정이 돼서 밤잠을 설치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안동과 맞닿아 있는 예천군에서는 2년 전인 2023년 7월 유례없는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일부 마을이 사라지고 15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관광지 주변 상인들도 고민이 크다. 하회마을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50대)씨는 “산불 발생 후 유동 인구가 크게 줄었다가 지난달부터 다시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다”면서도 “올해는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0% 정도 떨어진 것 같다”고 했다. 피해 지역에 도움이 될까 이곳을 한걸음에 찾은 관광객도 있었다. 대구에서 왔다는 이명순(60대)씨는 “고속도로를 타고 안동을 오는데 산림이 불에 타 마음이 아팠다”면서 “산불이 발생한 지역의 관광 경기가 위축되지 않도록 여름 휴가지로 많이 찾아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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