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영향력 확대·美 방위비 인상 압박
평화를 위한 최소한의 억지력 위해
도서방위사령부 등 해양력 강화해야
국제정세가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만큼 불확실한 가운데 전 세계가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은 예상을 뒤엎고 결국 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에 개입해 이란의 핵 시설을 폭격했다. 이제 도덕과 평화를 앞세운 인류 보편가치에 기반한 이성적 판단은 사치스러운 말이 됐다. 이는 며칠 전 한민족 최대 비극인 6·25전쟁 75주년을 지낸 민주 한국에게 북핵 위협에 시달리는 현실을 다시 한번 자각시키고 있다.
특히 ‘힘을 통한 평화’와 ‘억지력의 복원’에 바탕한 트럼프식 ‘선택적 고립주의’는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그대로 작동되는 형국이다. ‘규칙 기반’ 국제질서는 종언을 고했고, 미국은 글로벌 외교 무대를 유린하는 자의적 행보도 횡행한다. 대미 결사 항전을 고수하는 중국도 힘에 부치고, 러시아도 트럼프식 외교를 상대하기가 버겁다. 무엇보다 새로 출범한 한국 정부도 경제와 안보 레버리지를 동시에 활용하는 미국을 상대해야 하는 공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선 한국은 미국이 벌이는 무차별적 관세 전쟁에서 유의미한 협상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 워싱턴에서는 새 정부 들어 처음으로 한국의 통상본부장과 미국 상무장관,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회동하는 통상 장관 회의가 열리고 있다. 정부는 7월8일로 한정된 상호 관세 유예 시점에 얽매이지 않고 상호 품목 관세 면제 등 호혜적 합의 도출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긴밀하게 연결된 산업 공급망을 활용한 제조업 파트너십에의 기여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또 국방비 증액 문제도 풀어야 한다. 통상 장관 회담에서 직접 거론되지는 않겠지만 경제와 안보를 연계해 불필요한 국방비 지출을 제어하려는 것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의중이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은 주한미군 주둔비 분담금 확대 차원을 넘어 직접적으로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2.3% 수준인 국방비를 5%로 증액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안보 무임승차를 질책받아 온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도 GDP의 5% 국방비 합의를 공식화했다.
이렇게 되면 현재 한국의 61조원 국방비가 무려 132조원으로 증가해야 하므로 기타 분야에 대한 예산상의 제약은 불가피하다. 특히 미국은 중국의 대규모 군비 확장과 북한의 지속적인 군사적 위협에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면서 자국의 군사적 부담을 경감해 주기를 희망한다. 한국 정부 입장은 대다수 국가와 같이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국내 상황을 고려해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그러나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현재 한국 상황은 트럼프식 ‘거래 주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전략적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한국은 여전히 핵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북한과 특히 서해 지역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려는 중국을 맞닥뜨리고 있다. 한국은 미·중처럼 지구적 차원의 패권 경쟁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영토와 안전을 지키면서 평화를 담보해야 하는 현실적 문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핵보유국’을 기정사실화한 북한이 유사 핵 동맹을 체결한 러시아의 지원으로 재래식 무기도 현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기술로는 불가능하다고 본 5000t급 구축함도 우여곡절 끝에 진수했다. 러시아의 기술 지원이 충분히 예상되는 대목이다. 여기에 중국의 서해 지역에 대한 군사력 투사 및 영향력 확대도 계속되고 있다. 이미 중국은 동경 124도선을 관할 수역으로 설정해 해상 군사 훈련도 상시화하면서 서해 내해화(內海化)에 열중이다.
이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협력적 자강(自强)을 통해 평화를 위한 최소한의 방어적 억지력을 구축하는 것이 선결과제다. 육·해·공·해병대까지 물샐틈없는 연합 작전 능력 구비와 함께 해양력 확보는 필수다. 특히 해양력 확보의 원천인 항모 전단과 늘 위험에 노출된 서해 5도나 울릉도·독도 등을 방어하기 위한 전략 도서 방위사령부도 필요하다. 주변 안보 파트너들과의 협력 강화도 등한시할 수 없다. 급변하는 안보 환경 대비에 흔들림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중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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