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첫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7일 서울 용산구 육군회관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에 첫 출근했다.
안 후보자는 이날 오전 사무실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지난 40여 년 정치권에 몸담으면서 여러 가지 익혔던 노하우와 경험을 살려 참국방, 진정한 국방, 군을 국민의 군대로 재건하는 데 온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안 후보자는 “12·3 불법 내란계엄으로 군이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군심(軍心)이 흐트러져 있고 군의 사기가 저하돼 있다. 이 문제 해결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겠다”고 강조했다.
계엄 직후 국회에서 가동됐던 12·3 비상계엄 사태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를 이끌었던 안 후보자는 계엄의 내막과 더불어 군에 대한 문민통제 등을 깊숙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1년 명예해병으로 위촉될 정도로 군에 대한 이해도 높다.
안 후보자는 “도려낼 부분은 도려내야 새살이 돋는다”며 “척결 없이 간단하게 소독약만 뿌리고 봉합해서 가면 또 다시 곪아 터진다”라며 12·3 비상계엄 사태 수습 과정에서 강력한 대응을 예고했다. 64년만에 등장한 문민 국방장관 체제의 칼날이 어디로 향할 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20여년 만에 재등장한 문민통제
조만간 출범할 안규백 장관 체제에서 문민통제는 또다시 무대의 중심에 섰다. 국방부에 민간 공무원을 늘리면 문민통제가 된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인식은 12·3 비상계엄 사태로 철퇴를 맞았다.
계엄의 모든 책임이 군에 있지는 않지만, 대통령과 상관의 불법적 명령에 군대가 쉽게 투입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 하의 군사 통제’에 허점이 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안 후보자는 취임 이후 군에 대한 문민통제 강화와 더불어 대규모 군 인사를 단행할 전망이다.
내란·순직해병 특검이 관련자 수사 및 처벌을 하면, 안 후보자는 정책 추진과 군심 잡기 및 군 수뇌부와 조직 개편 등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자의 구상을 일부나마 엿볼 수 있는 것이 있다. 지난 4월 안 후보자가 대표발의한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개정안은 △명령이 헌법 및 법규에 반하는 것이 명백할 때 △본연의 직무와 관계가 없거나 권한 범위 밖의 사항인 것이 명백할 때 군인이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염두에 둔 것이다.
안 후보자는 제안이유에서 “군인의 헌법 의식 내면화를 도모하고 위헌·위법적 명령을 구분할 분별력을 함양하며, 위헌적이거나 위법한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있도록 한다”며 “‘제복 입은 시민’으로서 군인의 정체성을 다시 정립하고, 적법한 직무수행을 보장한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제복 입은 시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
‘제복 입은 시민’은 군인이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당연히 가진다는 뜻이다.

독일 연방군이 만든 개념으로 연방군 내 민주주의와 시민의식, 법치주의를 확고히 하는 것이다.
연방군은 상사의 불법적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 이행하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나치의 불법적인 명령을 맹종한 데 따른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연방군은 방첩기관인 군사정보부에서 신나치주의자를 포함한 헌법에 위배되는 장병들을 철저하게 조사해서 퇴출한다. 의회가 지명하는 군특명관은 군의 정치적 중립을 감시하고 인권보호 활동 등을 한다.
한국도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TF가 군특명관 제도를 연구했고, 안 후보자도 군옴부즈맨 도입을 포함한 군 인권법을 발의한 바 있다.
안 후보자가 2022년부터 최근까지 발의한 법안 중 대안반영으로 폐기된 것을 제외한 26건 가운데 절반 이상이 군 투명성 강화, 인권 증진 등 군에 대한 문민통제와 관련이 있다.
한국군은 예전부터 연방군의 문민통제와 교육 방식 등을 연구해왔다. 관련 자료와 보고서도 적지 않다. 안 후보자의 의정활동과 연방군의 문민통제는 미묘하게 겹친다.
불법적인 군 동원을 막으려면 군인들이 헌법과 국민에 대한 충성이 상관에 대한 절대복종보다 우선시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군 본연의 임무와 역할을 충분히 보장하되 군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작동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군 내 교육에서 민주주의 시민으로서의 소양을 키우는 교육이 필수다. 헌법을 경시하거나 위반하는 장병들을 찾아내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참여정부의 ‘국방개혁 2020’이 프랑스 국방개혁을 벤치마킹한 것이라면, 안 후보자 취임 이후 전개될 국방개혁은 독일 연방군의 문민통제 체제가 기반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대목이다.

K방산 진흥 정책의 전환도 주목된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전후로 팔란티어, 쉴드AI, 오픈AI, 안두릴 등의 빅테크 기업들이 방위산업에 진출해 록히드마틴 등과 경쟁하며 방위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한국도 첨단 기술을 지닌 민간 기업들을 방위산업에 더욱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차와 자주포, 다연장로켓은 지금까지의 방산수출에 큰 공헌을 했다.
하지만 AI와 빅데이터, 무인체계 기술이 각광받는 상황에서 한국산 재래식 무기가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할지는 불확실하다.
K방산이 한 단계 도약해 군 전력증강과 산업발전을 동시에 추구하려면, 첨단 기술을 가진 민간 기업의 방위산업 참여를 확대하고 정부 지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

◆군 ‘인사태풍’ 몰아치나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국방부와 군 수뇌부에 대한 인사도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정부 소식통은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합참 전투통제실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내란 특검의 조사를 피하기 어렵다”며 “군 인사도 이를 고려해서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대로라면 기존 국방부와 합참 수뇌부 대다수가 특검 수사 대상이다.
계엄과 탄핵 여파로 전반기 장군 인사가 이뤄지지 못한 것까지 고려하면, 큰 폭의 인사가 불가피하다.

군 인사는 이두희 전 육군 미사일전략사령관이 26일 신임 국방부 차관에 지명되어 27일 취임하면서 본격화할 전망이다.
육군사관학교 46기인 이 차관의 지명은 기존의 예상을 깬 것이다. 군 안팎에선 대선 캠프에 참여한 여운태 전 육군참모차장(육사 45기), 김도균 전 수도방위사령관(육사 44기) 등이 거론됐다.
그럼에도 육사 후배격인 이 차관이 발탁된 것은 안 후보자의 의중과 지역 안배가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국방차관은 장관과 함께 보조를 맞춰가며 일해야 한다. 안 후보자의 뜻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전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이 신임 차관은 2020∼2021년 국방부 정책기획관이었다. 정책기획관은 국회의원들에게 대면보고를 하러 국회에 자주 간다. 안 후보자도 이 신임 차관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차관은 경북 경산 출신이다. 안 후보자는 전북 고창 출신이다. ‘호남 장관·영남 차관’ 구도를 형성, 지역 안배를 하는 효과도 있다.
국방차관이 결정되면서 군 안팎의 관심은 후속 인사에 쏠리고 있다.
다수 인물이 자천 타천으로 거론되는 방위사업청장은 합참 차장을 지냈던 최현국 예비역 공군 중장(공사 33기)과 강환석 현 방위사업청 차장이 거론된다.
전남 광주 출신인 최 중장은 합참 군사지원본부 인사부장, 공군본부 정보작전지원참모부장, 공군교육사령관, 공군사관학교장, 합참 차장을 지냈다.
2021년 전역 직후 제20대 대통령선거 국면에서 이재명 캠프에 합류, 스마트강군위원회 전력증강특위 위원장을 역임했고 이번 대선에서도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소식통은 “최 중장은 2022년 대선에서 이 대통령을 도왔을 때부터 가깝게 지냈다”며 “계속 옆에서 도왔으니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있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강 차장은 방위사업청에서 입지전적인 경력을 쌓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7급 공채로 공직에 입문, 법제처에서 일하다 개청과 함께 방위사업청에 들어왔다. 대변인과 조직인사담당관, 기획조정관 등 주요 업무를 두루 거쳤다. 이재명 정부의 차관급 인사에서 내부 승진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강 차장에게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종승 전 국방과학연구소(ADD) 소장도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2021∼2024년 ADD 소장을 역임했으며, 30여년을 ADD에서 재직하면서 한국의 주요 미사일 개발 사업에 참여했다. 현재는 국정기획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다만 군과 정부 안팎에서 부정적 기류가 강한 것이 걸림돌이다.
ADD도 이건완 현 소장의 교체가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공사 32기로 공군작전사령관을 역임했던 예비역 공군 중장 출신인 이 소장은 지난해 4월 ADD 소장에 부임했다. 부임 당시부터 ‘낙하산 논란’에 휩싸였던 이 소장은 정권이 바뀌면서 교체 가능성이 매우 커진 상태다.
후임으로는 ADD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중량급 연구원이 내부 승진 형식으로 소장에 임명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사일연구원장 등을 지낸 A씨와 3본부장 등을 거친 B씨 등이 거론된다.
군수품 품질 관리 등을 담당하는 국방기술품질원장과 국방과학기술 연구 등을 담당하는 국방기술진흥연구소장도 현직 내부 인사나 전직 인사가 맡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전반기 인사를 진행하지 못한 육·해·공군과 국방부 직할부대 및 합동부대도 안 후보자 취임 이후 단기간 내 인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다만 인사청문회 대상자인 합참의장은 대통령실의 의중이 변수다. 또한 이 신임 차관이 육사 46기라는 점도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계엄 당시 핵심적 역할을 했던 수도방위사령관, 특전사령관, 국군방첩사령관 등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송영무·정경두 전 국방부장관 재직 당시 요직을 거쳤던 인사들을 중심으로 후임자가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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