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36주차 태아를 수술해 숨지게 한 집도의와 병원장이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박정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8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살인 등 혐의를 받는 60대 집도의 심모씨와 80대 병원장 윤모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봤다.
이들은 지난해 6월 임신 36주째인 만삭 산모 20대 A씨 뱃속의 태아를 제왕절개 수술로 꺼낸 뒤 방치해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수술실 내부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지 않은 혐의(의료법 위반)도 있다. 법원은 지난해 10월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한 차례 기각했지만, 경찰은 최근 보강 수사를 거쳐 재차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이날 구속에 이르게 됐다.
경찰은 지난해 6월 유튜브에 A씨가 올린 ‘36주 임신중지 브이로그’ 영상과 관련해 보건복지부의 수사의뢰를 받아 수사에 착수했다. A씨는 태아가 건강한 상태였는데도 2곳 병원에 임신중지를 문의하고 이를 거절당하자 인터넷을 통해 접촉한 브로커의 소개로 해당 병원을 찾아간 것으로 조사됐다. 방문 당일 진료, 수술비 협의, 입금, 제왕절개 수술 등이 한 번에 진행됐다.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난 아기는 출산 직후 건강한 상태였지만 어떤 조치도 없이 방치돼 있다 숨진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병원장은 “뱃속에서 이미 사산된 아이를 꺼냈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다른 의료진의 진술은 엇갈린 것으로 전해졌다. 아기의 시신은 병원 냉동고에 수일간 불법 보관되다 화장 대행업자에게 넘겨졌다.
경찰은 태아가 세상 밖으로 나온 뒤 숨졌다고 보고 병원장과 집도의, A씨 등 9명을 입건했다. 다만 A씨에 대해선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36주 태아가 자궁 밖에서 독립생활이 가능한 정도인 만큼 살인 기준에 대해 큰 논란이 일었다. 복지부의 수사의뢰와 경찰의 살인 혐의 적용을 두고도 갑론을박이 있었다.
낙태는 형법상 낙태를 하게 한 임신부나 낙태를 한 의사 모두에게 불법이었지만, 2019년 4월 관련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지며 낙태죄가 없어져 처벌 규정이 없는 상태다. 헌재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2020년 말까지 결정을 반영한 대체입법을 할 것을 요청했지만, 5년이 넘도록 관련 논의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두고도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안전한 임신중지가 필요한 여성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7월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은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36주면 자궁 밖으로 나와 독립생활이 가능한 정도라는 전문가 의견이 있다”며 “다른 일반적인 낙태 사건과는 다르게 무게 있게 수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 청장은 “낙태 관련 전통적인 학설과 판례는 살인죄를 인정하지 않지만 구체적인 경위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며 “자궁 안 또는 자궁 밖 사망 등 여러 태양(형태)에 대한 종합적 사실 확인을 거쳐 적용 법조와 죄명을 보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시민단체 오픈넷은 성명을 내고 “36주 임신중지에 관여한 이들에 대한 무리한 경찰 수사는 어렵게 성취한 임신중지 비범죄화를 일순간에 퇴행시켰다”며 “‘낙태죄’를 우회해 임신중지를 규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빌미가 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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