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이 있다. 주식(主食)인 ‘쌀’을 통해 섭취한 탄수화물은 체내에서 포도당으로 흡수돼 생명을 유지해주고, 다양한 신체활동의 ‘연료’가 된다. 우리가 눈을 뜨고 움직이고,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바로 탄수화물 덕이다. 그런데 최근 서구화된 식습관과 건강식 열풍이 불면서 ‘쌀은 혈당을 높이고 살이 찐다’는 오해를 하는 이들이 많다. 다이어트 효과를 높이기 위해 쌀 섭취를 무리하게 줄이거나 아예 끊기도 하는데, 탄수화물을 극단적으로 줄이면 심각한 건강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적당한 쌀 섭취가 건강 유지와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도 있다. 쌀에 대한 오해와 쌀이 가진 건강 효능 등을 알아봤다.

◆ 한국인 ‘밥심’ 옛말...국민 1인당 쌀 섭취량 꾸준히 감소
지난 10년간 한국인의 쌀 소비량은 꾸준히 감소했다. 지난해 농협중앙회가 발표한 ‘쌀 소비 트렌드 분석’ 보고서를 보면, 2023년 국내 쌀 소비량은 약 380만t대로 2011년 450만t에 비해 크게 줄었다. 60대 이상 고령층에서는 여전히 쌀을 주요 식재료로 소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20대에서 40대까지의 젊은층에서는 쌀 소비가 30% 이상 감소했다.
이는 서구화된 식문화와 대체 식품 소비 증가 등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쌀에는 우리 몸에 유익한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다.

쌀의 주된 구성 요소인 탄수화물은 우리가 일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 공급원이 된다. 체내에서 포도당으로 분해되어 우리가 신체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쌀 100g에는 약 0.5g의 지질이 포함돼 있는데, 이는 세포막 구성과 호르몬 생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밖에 무기질, 아연, 칼슘은 우리 몸의 당질 대사를 촉진해 에너지 생성에 도움을 주고, 면역 기능 강화와 뼈와 치아 형성에 도움을 준다. 비타민 B1, B2, B6 등은 뇌의 활동을 활성화해 기억력과 집중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쌀에 함유된 식이섬유는 우리 몸에 콜레스테롤이 쌓이지 않도록 돕는다.
쌀밥이 비만을 예방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듀크 대학 연구팀이 546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4주간 쌀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운영한 결과, 여성은 평균 몸무게가 8.6㎏, 남성은 13.6㎏ 정도 감량 효과가 있었다. 이들은 식이요법을 마친 뒤에도 요요 현상이 없었고 1년 후 조사에서도 전체의 68%가 감량한 몸무게를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밀가루가 아닌 쌀을 중심으로 한 식단이 비만을 예방하고 건강식으로 좋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미국의 쌀 소비는 지난 20년간 2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한다.
식사 대용으로 밥 대신 빵을 선택하는 이들도 많은데, 빵은 가공하는 과정에서 당분 등 각종 첨가물이 첨가된다. 특히 흰쌀빵처럼 정제된 탄수화물은 체내 염증 수치를 높이고 산화 스트레스를 유발해 노화를 가속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밀가루에 있는 글루텐 성분은 소화 불량이나 피부 트러블, 비만 등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때문에 밥 대신 빵을 먹을 땐 가급적 흰밀가루빵 대신 통밀빵이나 호밀빵, 잡곡빵을 고르는 것이 좋다. 또 버터 대신 올리브유 등 식물성 기름을 사용한 빵을 고르면 지방 함량을 낮출 수 있다.

◆ 다이어트 결심, 쌀부터 줄여라? “득보다 실 커”
최근 드라마틱한 체중 감량을 위해 쌀 섭취를 극단적으로 제한하는 식단이 유행하고 있다.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고 단백질 또는 지방 섭취를 늘리는 저탄고지(Ketogenic diet, 케톤식) 식단이 대표적이다. 저탄고지 식단은 탄수화물 섭취를 제한해 우리 몸이 더 빨리 지방을 에너지로 쓰도록 유도해 다이어트 효과를 높이는 방법으로 알려졌다.
단백질은 몸의 면역력과 근력을 강화하는데 필수다. 하지만 단백질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단백질은 적정 체중을 기준으로 ㎏당 0.8~1.2g 정도 먹으면 된다. 키 160㎝ 여성의 체중이 52㎏일 경우 단백질 섭취량은 42~62g 정도로, 하루 달걀 2개(14~16g) 분량이면 충분하다.
운동 없이 단백질 섭취만 늘리는 것이 노화를 앞당기고 건강을 해친다는 의견도 있다. 정희원 서울의대 교수는 최근 한 방송에서 “단백질은 근육과 세포를 회복시키는 중요한 영양소지만, 운동 없이 단백질만 과도하게 섭취하면 활성산소가 증가하고 오히려 노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모든 영양소는 균형이 중요하며, 단백질 역시 다른 영양소와 함께 섭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과도한 쌀 섭취 제한은 뇌세포 형성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지난 20년간 다양한 국가에서 임상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탄수화물 섭취를 극단적으로 줄이거나 불규칙적으로 섭취하면 뇌세포가 손상되고, 치매를 겪을 가능성도 커진다. 뇌가 활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포도당이 필요하고, 그 포도당을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가 바로 쌀이기 때문이다.
입 냄새도 심해진다. 탄수화물이 부족하면 우리 몸에 케톤체라는 독성 물질이 발생하고, 이 물질이 입으로 뿜어져 나오면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날 수 있다. 아침밥을 거르는 사람들이 양치를 잘해도 입에서 냄새가 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만 혈당관리를 위해 흰쌀 섭취를 제한해야 하는 경우, 정제과정을 덜 거친 현미나 잡곡을 추가하면 혈당이 급격히 오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현미에는 식이섬유나 비타민, 미네랄, 다양한 항산화 물질이 흰쌀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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