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솅겐 조약(Schengen Agreement)은 유럽연합(EU) 29개 회원국이 여행과 통행의 편의를 위해 체결했다. 가입국끼리는 검문·검색 절차 없이 국경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1985년 6월 룩셈부르크 남부 솅겐 마을에서 서독·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가 출입국 관리 정책을 단일화해 통행 제한을 없애자는 취지로 도입했다. 유럽도 장기적으로 미국 같은 ‘하나의 연방국가’가 될 수 있다는 포석이었다. 시행에 들어간 건 1995년부터다. 솅겐 조약은 유로화와 함께 유럽 통합을 이끄는 두 개의 기둥이다.
솅겐 조약은 원칙적으로 치안, 공중 보건 등 예외적 사유에 한해서만 ‘최대 6개월간’의 임시 국경 통제를 허용한다. 하지만 최근 유럽 국가들이 앞다퉈 불법 이민자 단속을 위해 국경 경비를 강화하면서 조약이 허물어지고 있다. 이민자 유입을 이유로 국경 통제 기간을 반복 연장하며 사실상 국경을 상시 통제하는 나라가 늘고 있어서다. 폴란드 정부는 7일부터 독일·리투아니아 국경 52개 지점에 임시 검문소를 설치하고 30일 동안 통행자 단속에 나섰다. 투입된 군인만 5000여명이다. 앞서 독일은 지난해 9월부터 폴란드·체코·오스트리아 등 9개국과의 국경에서 검문을 확대했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벨기에 정부는 올여름부터 국경 통제를 강화하고, 특히 열차·항공편 이용자에 대한 표적 단속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네덜란드에서는 극우 시민들이 이른바 ‘난민 자경단’을 꾸려 독일과의 국경에서 자체 검문에 나서고 있다. 프랑스는 2015년 파리 테러 이후 6개월 단위로 지역별 국경 통제를 유지하고 있다. 유럽 내 고조되는 반이민 정서 속에 극우 세력이 약진하면서 저마다 국경을 걸어 잠그는 추세다.
유럽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EU에 불법 입국한 이민자 수는 23만9000명에 달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인 2020년에 비해 3배 가까이 급증한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40년간 쌓아 올린 ‘국경 없는 유럽’이라는 공든 탑이 흔들리고 있다. 각국이 ‘임시’라는 명분으로 국경 통제를 시작하지만, 이를 상시화할 경우 솅겐 체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유럽 공동체의 퇴행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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