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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北 남침 듣고 10초 내 참전 결단”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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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7-27 08:18:51 수정 : 2025-07-27 09:27:20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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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1945년 4월∼1953년 1월 재임)이 가장 최근 대중 매체에 등장한 사례는 할리우드 영화 ‘오펜하이머’(2023)일 것이다. 핵무기 개발에 크게 기여한 미국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백악관에 초대를 받는 장면이다. 원자폭탄 투하로 다수 일본인이 목숨을 잃은 점에 대해 오펜하이머가 죄책감을 호소하자 대통령 트루먼(게리 올드만)은 차가운 어조로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며 “원폭 투하 명령은 내가 내렸다”고 말한다. 인류 최초의 핵무기 사용을 놓고 트루먼이 겪었을 고뇌는 오펜하이머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미국 제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1884∼1972). 세계일보 자료사진

미국 중서부의 한적한 시골인 미주리주(州)가 고향인 트루먼은 미 정가에서 오랫동안 ‘촌놈’ 취급을 받았다. 마흔 가까운 나이에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긴 했으나 정규 학력은 고졸에 그쳤으니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우리로 치면 ‘정치 9단’인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그를 부통령으로 발탁한 것도 감히 권좌를 넘보지 않고 ‘2인자’ 노릇에 만족할 인물로 여겼기 때문이다. 미국의 2차대전 수행과 관련한 모든 중대 결정은 루스벨트가 독점적으로 내렸다. 트루먼은 미 행정부가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핵무기를 제조하고 있다는 최고급 정보에서도 소외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작 완성된 원폭을 일본에 투하하는 역사적 결단은 트루먼이 내렸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트루먼의 임기 동안 한반도에서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했고 미군이 한국을 도와 참전했다. 그런데도 꽤 오랫동안 트루먼은 한국인들 사이에 별로 인기 없는 미국 대통령이었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전쟁의 판도를 바꾼 영웅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를 이듬해인 1951년 4월 전격 해임하고 본국으로 소환한 이가 바로 트루먼이기 때문이다. 트루먼은 ‘맥아더가 백악관과 국방부에 항명해 군에 대한 문민 통제의 원칙을 어겼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한국인 다수는 ‘그때 맥아더를 그냥 놔뒀다면 북진 통일이 이뤄졌을 것’이란 생각을 가졌다. 국내에서 ‘맥아더가 과오를 저질렀다’는 인식이 보편화한 뒤에도 이른바 ‘맥아더의 신화’에 가려 트루먼에 대한 평가는 인색했던 것이 사실이다.

 

6·25 전쟁 정전 70주년인 2023년 7월27일 경북 칠곡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 동상(왼쪽)과 이승만 대통령 동상 제막식이 나란히 열리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오늘날 북한의 남침 직후 트루먼의 명령에 따라 미군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했을 것이란 견해가 정설로 통한다. 트루먼이야말로 ‘한국의 진정한 은인’이란 판단 아래 2023년 7월27일 6·25 정전 70주년을 맞아 경북 칠곡 다부동전적기념관에 높이 4.2m의 트루먼 동상이 들어섰다. 옆에는 전쟁 당시 한국 지도자였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 동상이 나란히 세워졌다. 최근 방한해 이 동상을 살펴본 트루먼의 외손자 클리프턴 트루먼 대니얼(68)은 “할아버지와 꼭 닮았다”며 “어마어마하게 커서 놀랐다”는 소감을 밝혔다. 대니얼은 “할아버지는 북한의 남침에 관한 보고를 받은 뒤 불과 10초도 안 걸려 미군 참전을 결정하셨다”고도 했다. 한·미 관계에서 트루먼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재조명을 받아야 할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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