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고 활기찬 힘으로 새 대한민국 이끌어야
광복은 큰 빛을 전제하는 개념이다. 그 빛을 복원 또는 실현하는 과업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아직 미완이다. 하지만 우리는 매년 8·15를 맞이하여 광복절 행사를 하고 광복절 메시지를 듣지만, 광복의 개념은 아직 정립되지 못한 상태다. 여기에 우리의 낙후한 정신문화, 태만, 자부심의 결여가 작용한다.
좋건 싫건 간에 중국에는 중국몽(中國夢)이 꿈틀거리고 있고 미국에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대전환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에는 아름다운 일본을 향한 나름의 자각과 운동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공교롭게도 이재명정부는 ‘빛의 혁명’을 말한다. 그 빛은 광복의 개념과 통할 수 있다. 국제관계가 요동치는 혼란과 탈바꿈의 상황에서 우리는 국정을 총체적으로 이끄는 메타 이념 또는 가치로서 광복 개념을 정립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싶다.

광복은 외부에서 빌려온 개념이 아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 안에서 성장하고 있다. 조선조가 패망할 당시 고종도 광복의 이름으로 일제 침략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성원했고 유길준은 1907년 평화광복책을 순종에게 상소문으로 올렸다. 국권 상실 이후에는 1911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광복회로부터 시작하여 1913년 풍기광복단, 1920년 간도 광복군 총영, 1936년 김일성의 조국광복회, 1940년 중경 한국광복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광복운동이 전개되었다. 일제강점기 신채호는 고대사 연구를 통해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보면서 광복운동의 방향을 제시했다. 1941년 중경의 한국광복군은 ‘광복’ 창간호를 발간하여 일본의 패망과 새로운 광복의 시대를 열망했다.
그러나 어디서건 광복의 개념이 정립되지는 못했다. 무장 독립투쟁이 보다 절실했다. 예외가 있다면 백범 김구의 통찰. 그는 1941년 2월 1일 ‘광복’ 창간호에서 당시의 상황을 “혹은 좌로 또 혹은 우로 방황”하는 혼돈 상태로 갈파하면서 “편견적 좌경주의”, “퇴보적 완고주의”, “망국적 지방열”을 넘어 “중심이론”에 의한 국민통합을 강조했다. 만약 그가 해방정국에서 소신을 펼 수 있었다면 그의 머릿속에 있던 광복의 개념이 중심이론으로 개화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그러나 김구는 정치적으로 실패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서 광복의 고귀한 가치로서 문화국가를 제시했다. 널리 알려진 문장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않고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김구의 소망은 오늘날 놀라운 현실이 되고 있다. 세계로 뻗어가는 다양한 한류 문화가 이를 증명한다. BTS에서 보듯이 한류의 음악과 춤, 가사, 멜로디는 각자도생의 위험사회에 내몰린 수많은 팬의 마음을 할퀴는 상처, 외로움, 상실감을 위로하고 삶의 의욕과 보람, 희망을 전파한다. 서로 부축하고 의지하며 같이 살아가는 삶의 활력소를 제공한다.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아니라 평화와 연대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그 배후에는 젊고 활기찬 대한민국의 새로운 세대의 성장이 있고 디지털 소통의 역동성이 있다. 그 힘으로 우리는 광복의 새로운 분수령을 열었다. 이러한 성취에 기반하여 우리는 이제 제2의 광복 개념을 발전시켜 그 논리와 힘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이끌어가야 할 때가 되었다.
제2 광복의 주된 목적은 적과 동지의 진영논리를 단호히 벗어나는 것이고 이를 위한 방법론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소통철학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가혹한 분열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배면의 공통 세계를 찾는 과제가 중요하다. 각 부문의 진영 대립에 대화와 소통의 문을 열 수 있다. 남북 대립과 긴장도 제2의 광복의 가치를 매개로 하여 해소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전쟁에서 우리는 제2의 광복을 국민적 합의로 정착시켜 그 기반 위에서 흔들림 없이 우리 나름의 소통과 평화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