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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차’로 떼돈 번 정원관, 전 재산 탕진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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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0-09 06:00:00 수정 : 2025-10-09 06:10:06
김수진 기자 s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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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커뮤니티, 유튜브 채널 ‘송승환의 원더풀 라이프’

1987년 대한민국 최초의 3인조 댄스그룹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소방차’.

김태원, 이상원, 정원관 3명의 멤버로 구성된 ‘소방차’는 한국의 0세대 아이돌로 국내 아이돌의 시초라고 평가받는다.

 

‘소방차’는 당시 댄스를 선보이는 무대가 생소했던 우리나라에, 댄스와 퍼포먼스를 메인으로 활동하며 소년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데뷔곡 ‘그녀에게 전해 주오’를 필두로 ‘어젯밤 이야기’, ‘통화중’, ‘하얀 바람’, ‘사랑하고 싶어’, ‘연애편지’, ‘G카페’, ‘Bye Bye’, ‘추남 시대’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내놓으며 10대들의 ‘원조 오빠’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특히, 멤버 중 정원관은 100kg이 넘는 거구의 체격으로 다른 두 멤버에게 뒤지지 않는 날렵한 안무를 소화하며 공중제비를 하는 퍼포먼스까지 선보여 큰 사랑을 받았다. 학생들 사이에서 소방차 책받침은 거의 필수품이었으며 정원관의 ‘바가지 머리’가 대유행할 정도로 인기의 정점을 찍었다.

 

‘소방차’는 엄청난 인지도로 해태제과의 오예스, LG전자의 미니카세트 아하, 코니카필름, 삼일제약의 부루펜시럽 등 당대 최고 업체들의 광고 모델로 활약하며 돈을 긁어모으다시피 했다. 1980년대에 연수입이 50~60억원이었다고 하니 실로 어마어마한 금액이 아닐 수 없다. 당시 강남의 최고가 아파트가 한 채에 7천만원 정도였으니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간다.

인터넷 커뮤니티

하지만 성공 가도를 한창 달리던 때 ‘소방차’는 멤버 교체와 해체, 재결성 등의 굴곡을 겪으며 점차 팬들의 뇌리에서 잊혀갔고 1996년을 끝으로 가요계에서 사라졌다.

 

약 30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소방차’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적잖은 가운데, 최근 정원관이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지난 9월 23일 유튜브 채널 ‘송승환의 원더풀 라이프’에 얼굴을 비춘 정원관은 자신의 인생사를 돌아보며 소회를 풀었다.

 

‘소방차’ 시절 11개의 밤무대와 수많은 CF, 각종 방송 활동으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정원관은 돈을 버는 족족 탕진했다고 밝히며, 그때 수입이 현재 한 푼도 남아있지 않다고 털어놨다.

 

정원관은 “정말 다 썼다. 원 없이 썼다”라며 “그 어떤 것보다 우리 자신한테 투자를 많이 했다. 그땐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게 없었다. 해외 공연이라도 나가면 늘 자비로 가야 했다. 의상도 제 돈으로 직접 구입해야 했다”라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유튜브 채널 ‘송승환의 원더풀 라이프’

그는 이어 “그땐 20대였고 돈을 많이 벌 때라 사람을 만나면 항상 제가 돈을 썼다. 친구들이나 동생들을 만날 때도 늘 먼저 주머니를 열고 다 사줬다. 정말 많이 썼다”면서 재산을 탕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솔직히 밝혔다.

 

하지만 그는 당시 돈을 펑펑 쓰고 다녔던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때 함께했던 사람들을 지금도 보고 있다”라며 “너무 감사한 일이다. 비록 돈은 다 날렸지만, 그 시절의 추억이 좋은 네트워크가 됐고 그게 비즈니스로 이어지면서 현재의 사업까지 할 수 있게 됐다. 사람들이 결국 내 자산이 됐다”면서 긍정적인 면모를 보였다.

 

그의 이야기를 접한 네티즌들은 “사람이 남는 훌륭한 인생을 사셨네요. 부럽습니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응원합니다”, “무대를 주름잡던 소방차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그 시절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등 격려와 지지를 보내며 과거를 추억했다.

KBS2 ‘살림하는 남자들’

한편, 정원관은 2017년 KBS2 ‘살림하는 남자들’에 출연해 1990년대 IMF 시절 사업하는 작은형을 위해 보증을 섰다가 연쇄부도가 나면서 그 여파로 빈털터리가 됐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정원관은 ‘소방차’ 해체 이후 3년 만인 1996년 엔터테인먼트 회사 ‘뮤직팩토리’를 설립해 5인조 보이그룹 ‘NRG’를 발굴해 성공을 거뒀다. 이후 2003년에는 조PD가 세운 회사 ‘퓨처플로우’의 대표직을 맡은 후 회사명을 ‘라임뮤직’으로 변경해 걸그룹 ‘i-13’ 등을 키웠다. 2007년부터는 대한민국 최초의 음원 사이트 ‘벅스뮤직’의 대표이자 연예 기획사 ‘에스엔비이엔티’의 대표직을 역임했다. 현재는 마케팅 설루션 업체인 ‘가디언즈컴퍼니’의 대표로 있으며 17살 연하의 아내와 정아인, 정다인 두 딸을 둔 아빠의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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