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배달 과오로 민원인 항의와 고소에 따른 수사, 징계를 받고 세상을 등진 집배원에 대해 법원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진현섭 부장판사)는 A씨 배우자인 B씨가 인사혁신처를 상대로 제기한 순직유족급여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에서 지난달 18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2002년 집배원으로 임용돼 광주의 한 우체국에서 근무하던 A씨는 2022년 8월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2021년 4월 수취인 부재중인데도 임의로 대리서명한 후 등기우편물을 배송했다는 이유로 수차례 민원을 받고 고소까지 당했다.
A씨는 8개월간 수사받은 뒤 공전자기록위작 혐의와 우편법 위반 혐의에 각각 기소유예,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이듬해 2월 전남지방우정청은 견책 징계를 내렸다.
B씨는 남편 사망이 공무상 재해라며 유족급여를 청구했지만 혁신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가 민원 발생 원인 행위를 했고 일상적·통상적 범위를 벗어나는 과로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이에 아내는 소송을 냈다.
B씨는 남편이 사망 2개월 전 최하위 근무평정을 받아 큰 모욕감을 받았고, 민원인이 민사소송 등 추가 법적 절차를 진행할지 모른다는 걱정으로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증이 발병·악화했다며 사망과 공무 사이 인과관계를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에 관해 사망 직전 "심리적으로 위축돼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면서도 "사회평균인으로서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인정할 만한 뚜렷한 정황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아울러 A씨가 사망 전 정신의학과 진료를 받았다는 근거가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감정의가 '민원 사건 이후 보인 행동 변화를 고려할 때 우울장애 또는 정신장애 상태의 자살로 볼 수 있다'는 취지의 소견을 제시했으나, 재판부는 "감정의 의견은 유족과 지인들 진술을 토대로 사망 전 정신건강 상태를 추정한 것에 불과하다"며 "이를 뒷받침하는 의무기록 등 객관적 증거가 전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끝내 자살로 나아갔다는 사실만으로 그전까지 나타난 증상들이 공무와 관련된 사유로 인해 발병된 우울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섣불리 추단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 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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