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담동=남정훈 기자] 여자 프로배구 정관장의 미들 블로커 정호영에게 2025~2026시즌은 ‘특별히’ 더 중요하다. 2019~2020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프로에 데뷔한 정호영은 2024~2025시즌으로 6년차 시즌을 마쳤다. 드래프트 동기인 다른 2001년생 선수들, 이다현(흥국생명)이나 육서영(IBK기업은행)은 자유계약선수(FA)가 됐지만, 정호영은 1년이 더 늦다. 2년차 시즌이었던 2020~2021시즌에 시즌 첫 경기에서 무릎이 뒤틀리는 부상을 당했고, 진단결과는 전방십자인대 파열로 시즌아웃이었다. 이 때문에 FA 자격 행사가 1년이 더 늦어지게 됐다.
2021~2022시즌에 건강하게 다시 돌아온 정호영은 무럭무럭 성장했고, 어느새 리그를 대표하는 미들 블로커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1m90의 큰 신장에 파워넘치는 공격과 블로킹까지 2025~2026시즌을 건강하게 보낸다면 시즌을 마친 뒤에는 무난하게 FA 최대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올 시즌 활약 여부에 따라 몸값이 달라질 수 있기에 신경이 안 쓰일 수 없지만, 정작 정호영 본인은 FA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단다.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호텔 리베라에서 열린 2025~2026 V리그 여자부 미디어데이에서 만난 정호영에게 FA를 앞두고 있는 심정을 묻자 “주변에선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저는 아예 생각을 안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올 시즌 우리 팀이 전체적으로 많이 바뀌었잖아요. 그래서 경기 준비하는 데 집중하다보니 그럴 틈이 없어요. 게다가 FA가 1년이 밀렸다 보니 원래 FA란 게 없었던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라고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일부러 FA 생각을 안 하려고 하는 것인가’라고 묻자 “안 하려고 하는 게 안 난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FA를 앞둔 선수들의 전형적인 멘트같다고 되묻자 “진짜에요. 만약 지난 시즌을 마치고 FA가 됐다면 욕심이 났을 것 같아요. 팀 성적도 좋았고, 개인 성적도 좋았고, 팀 멤버 구성도 좋아서 잘하는 선수들 사이에서 제가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가 많아서 욕심을 냈을텐데, 올 시즌엔 팀 구성도 많이 바뀌고 해서 ‘내가 잘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할 틈이 없는거죠”라고 설명했다.
지난 시즌 챔프전 준우승을 차지한 정관장이지만, 2025~2026시즌은 가늠할 수가 없다. 팀 공격의 중심이었던 메가(인도네시아)-부키리치(세르비아)가 모두 떠났고, 코트 후방에서 살림꾼 역할을 하던 표승주도 FA 미아가 되어 현역에서 물러났다. 그나마 정관장이 다른 팀에 비해 비교 우위라고 할 수 있는 세터 자리도 주전인 염혜선이 최근 왼쪽 무릎에 수술을 받았다. 복귀 시기가 정확히 나오진 않았지만, 무릎에 메스를 댔기 때문에 최소 1~2개월은 경기에 뛸 수 없다. 세컨드 세터인 김채나도 여수 KOVO컵에서 부상을 당했다. 당분간 주전 세터는 지난 시즌을 마치고 현대건설에서 방출된 뒤 정관장에 합류한 3년차 최서현이 맡아야한다.


이럴 때일수록 정호영의 진가가 발휘되는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배구는 팀 스포츠라 저 혼자 잘한다고 팀을 이기게 할 순 없어요. 오히려 제가 잘 한날은 이길 수 없어요. 제가 ‘아, 오늘은 민폐다’ 싶을 정도로 못해도 다른 팀원들이 잘 하면 이길 수 있거든요. 민폐가 아니게만 잘 해봐야죠”라며 웃었다.
미들 블로커 포지션은 세터와의 호흡이 특히나 더 중요하다. 공을 때리는 타이밍이 측면 공격보다는 더 찰나의 순간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삐걱거리면 유효타를 때릴 수 없다. 새로운 주전 세터 최서현과의 호흡은 어떠냐고 묻자 정호영은 “저랑은 잘 맞더라고요. 서현이 토스가 빠르진 않아도 곱게 올려주는 스타일이거든요. 저 스스로 제가 몸놀림이 빠르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서현이는 곱게 높게 올려주는 스타일이라 오히려 저랑은 타이밍이 잘 맞는 것 같아요. 서현이랑 맞춰본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호흡이 잘 맞는 편이라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시즌을 치르다보면 서현이도 경험이 늘어나서 더 잘맞아들어가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그동안 항상 세터 언니들과 뛰다 이제 동생인 세터와 뛰는 게 부담이 되진 않느냐고 묻자 정호영은 “오히려 더 재밌는 것 같아요. 언니들이랑 뛰면 언니들이 플레이를 생각하고, 상대와 수싸움을 하고, 저는 사인만 보고 하면 되는데, 서현이랑 해보니 ‘상대 블로킹 움직임이 이러니까 이거 한번 해볼까?’라고 제 의견도 더 반영할 수 있더라구요. 이런 게 재밌더라고요. 그리고 서현이가 좀 흔들리는 것 같으면 ‘그냥 높게만 올려놔. 내가 알아서 때릴게’라면서 제가 이끌어주기도 하고, 이런 것도 있고요”라고 답했다.

시즌을 앞두고 정관장의 선수 면면이 워낙 달라졌다보니 지난 시즌 챔프전 진출팀임에도 봄배구 진출도 간당간당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호영은 “저 역시 객관적으로 보면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다른 팀들도 전력이 많이 바뀌었으니 1라운드를 빨리 돌면서 적응을 해야할 것 같아요. 아직 연습경기도 안 해본 팀도 있으니까요. 시즌 전 평가를 한번 뒤집어 보고 싶어요”라며 각오를 다졌다.
마지막으로 팀 내 최고참이자 중심인 염혜선에 대한 마음을 전했다. “혜선 언니가 되게 속상해하고 미안해하시는 데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비시즌 동안 혜선 언니가 아파서 훈련에 참여를 못했거든요. 그래서 남은 선수들이 그걸 더 커버해야한다고 마음을 모았거든요. 언니가 돌아올 때까지 잘 버티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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