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브넌스 코드블루의 여명/박세정/북스타/1만9000원
고(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마지막 프로젝트였던 ‘윤한덕TF’의 실화를 토대로, 대한민국 응급·외상체계의 붕괴와 재건 과정을 소설이다. 윤한덕 센터장은 응급학전문의로 대한민국 응급의료 체계 발전에 헌신해온 인물이다. 2019년 설 연휴 기간 근무 중이던 사무실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사인은 과로사로 추정된다. 의료계의 근무환경과 응급의료체계의 부담을 다시금 환기시켰다. 저자는 TF의 설계자로 참여했던 연구원으로 기록과 인터뷰, 현장 경험을 문학적으로 재구성했다. 그가 보고 듣고 겪은 현실의 기록이며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던 의료체계 구조에 관한 고백을 담고 있다.
이 소설은 어느 날, 한 신문 실린 한장의 기사 사진에서 시작되었다. 낡은 의자 위에서 생을 마감한 고(故) 윤한덕 센터장님 맞은편의 화이트보드다. 거기에는 필자가 보고하고 윤 센터장님께서 정리한 내용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그걸 보고는, 서랍장 깊숙한 곳의 명함철에서 고인의 피가 묻어있는 명함을 꺼내 든다. 그때부터 작가는 7년간의 고독한 글쓰기에 들어서게 된다. 윤한덕 센터장의 사망 이후 이어진 국가적 슬픔과 '책임 없는 시스템'의 민낯, 그리고 그 안에서 끝내 조직을 되살린 사람들의 분투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한 명의 리더가 사라진 이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 속에서 남겨진 이들이 어떻게 시스템을 다시 세웠는지를 추적한다.
 
            “위에서 결정한 거니까 따라야지.” 연구가 난항을 겪을 때마다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다. 그 누구도 ‘위’가 누구인지는 말해 주지 않았다. ‘위’는 늘 추상적이고, ‘아래’는 늘 구체적이었다. 우리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라고 해서 그 자리에 있었지만, 결정은 보도자료의 문장 길이와 보건복지부 장·차관 일정에 따라 움직였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언제부터였던가? 그날 이후,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회의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고개를 들면 책임이 되고, 입을 열면 조직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침묵이 익숙하게 반복되더니, 어느새 침묵은 TF의 공식 언어가 되어 버렸다. ‘우리가 입을 다물면, 환자는 숨을 멈추게 된다.’ 내 머릿속을 시끄럽게 뒤흔들었던 건 정작 닥터헬기 프로펠러가 아닌 책임지지 않는 침묵이었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이 책은 2019년 윤한덕 센터장의 과로사 이후 우리 사회의 응답이자 아직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과 남겨진 책임자들의 이야기다. 한 명의 리더가 사라진 자리를 지키는 이들이 어떻게 조직을 되살리고, 어떻게 ‘죽음을 줄이는 체계’를 현실화시켰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소설이지만 실화이고, 픽션이지만 너무도 사실적이다. 이야기 속 이름은 가명이지만, 그들이 만든 변화는 실제였다. 그래서 의료시스템 붕괴와 책임 공백의 이면을 조명하며, 응급의료체계 속 내부자 시선에서 바라본 한국 공공의료의 민낯과 희망을 담고 있다.
단순한 의료 현장 고발이 아닌 문학적 장치를 통해 저자가 마주한 시스템적 무기력, 리더십 붕괴, 사일로(부처 장벽), 조직 간 책임 전가, 정치 장난질 속에서 생명을 살리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고독한 전쟁’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 누구의 책임을 묻기보단 누구도 책임지지 않던 시스템을 기록한 이야기라고 작가는 말한다.
 
            “거버넌스는 제도가 아니라, 생명을 위한 약속이다.” 박 작가가 현장에서 가장 오래 붙들었던 문장으로, 현실 기반의 장편소설을 통해 정책과 감정, 시스템과 사람이 교차되는 공간이 그려졌다. 제도를 설계하는 이들의 고뇌와 사람을 살리는 시스템이 어떻게 구축되는지를 그는 한 편의 서사로 완성해 냈다. 정치적 이해관계, 조직의 사일로, 책임 회피 속에서도 생명을 살리기 위해 싸웠던 이들의 기록이자, 공공의료 거버넌스의 내부자 시선에서 본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보여주고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저자 박세정은 국립중앙의료원 윤한덕 센터장이 이끌던 응급·외상체계 범정부 TF의 설계에 참여한 연구자이자 작가이다. 저서로는 ‘미친 꿈은 없다’, ‘스타트업 노트’ 등이 있으며, ‘비앙또 단편선’으로 한국추리소설상, 테크문학작가상을 수상했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학폭 대입 탈락](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1/04/128/20251104518667.jpg
)
![[데스크의 눈] 트럼프와 신라금관](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08/12/128/20250812517754.jpg
)
![[오늘의 시선] 巨與 독주 멈춰 세운 대통령](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1/04/128/20251104518655.jpg
)
![[김상미의감성엽서] 시인이 개구리가 무섭다니](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1/04/128/20251104518643.jpg
)







![[포토] 윈터 '깜찍하게'](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0/31/300/20251031514546.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