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틀리브에 예술적 충격 받은 김환기
대가 반열 오른 뒤 다시 탐구의 세계로
고틀리브, 폭발과 긴장의 역동성 특징
김환기, 동양의 명상 같은 회화 선보여
1974년 나란히 세상 떠날 때까지 ‘열정’
1963년 김환기는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회화부문 명예상을 수상한 직후였다. 그의 나이 50세,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오른 뒤였지만 금의환향 대신 뉴욕의 3평 남짓한 작업실에서 캔버스를 새로 펼쳤다.
“이번 대상을 받은 아돌프 고틀리브는 참 좋겠다. 미국에서 회화는 이 한 사람만 출전시켰다. 작은 것이 100호 정도이고 전부가 대작인데 호수도 따질 수가 없었다. 모두 벽만큼씩 해서 이런 대작품들을 46점이나 꽉 걸었으니 그 장관이야말로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양뿐만이 아니라 내용도 좋았다. 내 감각과 동감되는 게 있었다. 퍽 애정이 가는 작가였다.”
한국 미술가 최초로 국제전 수상을 하러 갔던 그가 서울로 돌아오지 않고 뉴욕으로 향한 데는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거장 고틀리브의 영향이 컸다. 상파울루에서 마주한 고틀리브의 미술세계는 그에게 예술적 충격과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김환기는 비엔날레가 끝난 뒤 “우리는 기술에만 너무 집착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주장하는 주체성이 약하다는 말이다”고 자성했다. “과감한 창조와 표현, 그리고 강한 개성”을 찾으려던 김환기는 현대미술의 중심지 뉴욕에서 이전의 구상적 요소를 벗어던진 채 점·선·면으로 응축된 자신만의 추상언어를 완성해냈다.
 
            두 사람의 2인전 ‘추상의 언어, 감성의 우주: 아돌프 고틀리브와 김환기’가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지난달 31일 개막했다. 아돌프·에스더 고틀리브 재단과 환기재단의 협력으로 기획된 이번 전시에서는 동서양 추상의 거장인 두 화가의 1960~1970년대 회화 16점을 나란히 소개한다. 페이스갤러리 65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는 준비만 6년이 걸렸다.
 
 1974년 같은 해 세상을 떠난 두 사람의 작품을 반세기 만에 한자리에 모은 전시다. 고틀리브는 마크 로스코 등 뉴욕 예술계 인사들과의 교류를 주선하며 김환기의 실험을 응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작가의 직접적인 교류 기록은 많지 않지만 김환기의 뉴욕 시절 일기에는 고틀리브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를 걸어 그의 목소리를 듣고 안도했다는 등의 글귀가 남아 있다.
 
 이번 전시는 60여년 전 서로 다른 문화적·철학적 토대 위에서 두 사람의 예술적 공명이 교차하는 지점을 조명한다. 동양과 서양, 폭발과 응축, 긴장과 명상. 형상이 감정으로, 사물이 존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구축한 고유의 예술 언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뉴욕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고틀리브는 초기에는 르네상스·인상주의 영향을 받았으나, 이후 1950년대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선도한 작가다. 잭슨 폴록, 로스코 등과 함께 뉴욕 화파를 대표하는 작가인 그는 여전히 유럽 미술이 정통으로 평가받는 가운데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성난 사람들(The Irascibles)’로 불리며 미국만의 독창적인 예술을 만들고자 했다. 1968년 3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과 휘트니미술관이 이례적으로 동시에 고틀리브 회고전을 열 만큼 그는 미국 추상주의 운동의 가장 핵심적 인물이자 중심이었다.
 
 그의 작품이 직관적인 형태와 대담한 색면을 결합한 역동성이 특징이라면 김환기의 회화는 시적이다. 그의 캔버스는 반복되는 점과 정제된 색채 구조를 통해 동양의 명상과 우주의 질서를 환기한다.
 
 전시장 2층에 걸린 김환기의 작품 10점은 1967~1971년 그려졌다. 주로 항아리, 달, 산, 매화 등 한국의 서정적 구상화풍을 자아내던 김환기가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 뒤 점·선·면의 조형요소를 탐색하며 추상 실험에 몰두하던 시기의 작품이다. 전시장에선 십자 구도 위에 점이 하나 둘 등장하고, 다시 사분면이 해체돼 화면 전면이 점으로 채워지는 등 그의 독자적 추상이 완성되는 과정을 목격할 수 있다.
 
            김환기의 절정기인 1971년에 만든 전면점화도 볼 수 있다. 절제된 구성과 세밀하게 배치된 점들로 이뤄진 화면은 하늘과 바다, 별자리를 연상시키며, 시간과 공간을 시적 추상으로 전환했다. 이 시기 완성된 그의 대표작 ‘점화’(點畵) 연작은 한국 모더니즘이 세계 무대에 소개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한 층 올라가면 김환기의 ‘뉴욕시대’를 이끈 고틀리브의 작품 6점이 전시돼 있다. 이번 전시에선 그의 예술적 정점인 ‘버스트’(Burst) 연작들도 만날 수 있다. 부유하는 구체와 폭발적인 붓질을 병치해 하늘과 땅, 정신과 감각 등을 표현했다. 이 같은 회화 구성은 질서와 혼돈, 색채와 형식 사이의 긴장을 극적으로 드러내며, 서사를 제시하기보다는 보편적이고 직관적인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낸다.
 
 페이스갤러리는 “이번 전시는 뉴욕 스쿨과 한국 서정추상이라는 두 세계가 감정의 언어로 만나는 자리”라며 “색과 형태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탐구한 두 거장의 시적 공명을 경험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2026년 1월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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