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음모론에 사로잡힌 사촌 형제
거대 바이오 여성 기업가 납치극 벌여
란티모스 감독·엠마 스톤 5번째 호흡
2인 연극처럼 팽팽한 논쟁 장면 눈길
북미 개봉서 관객몰이… 흥행 합격점
5일 개봉하는 할리우드 영화 ‘부고니아’는 장준환 감독의 2003년 작 ‘지구를 지켜라!’(사진)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제작 단계부터 국내 영화 팬들의 기대를 모았다. 원작을 배급한 CJ ENM이 기획과 제작에 참여했으며, 원작의 열혈 팬을 자처하는 ‘유전’과 ‘미드소마’의 명감독 아리 애스터가 직접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에게 연출을 제안했다. 애스터와 이미경 CJ ENM 부회장 등이 공동 제작자로 이름을 올렸고, 미국 HBO 드라마 ‘석세션’, 영화 ‘더 메뉴’ 등으로 명성을 얻은 윌 트레이시가 각본을 맡았다.
영화는 음모론에 사로잡힌 두 사촌 형제가 거대 바이오 기업 CEO ‘미셸’(엠마 스톤)을 납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리더 격인 형 ‘테디’(제시 플레먼스)는 미셸이 지구를 파괴하려는 외계인이라고 주장한다. 미셸은 임상시험으로 테디의 엄마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형제는 미셸을 감금하고 고문한다. 테디는 미셸이 “외계인 동료들과 교신하지 못하도록” 머리카락을 밀어버리고, 팔과 다리, 머리에는 “외계인에게 고통을 주는” 항히스타민 크림을 바른다. 미셸은 테디의 집 지하실에 묶인 채 외계의 ‘황제’에게 메시지를 전하라는 강요를 받는다. 후반부로 향할수록 스크린에는 인간의 내장과 피, 신체 파편이 튄다.
◆백윤식의 ‘강사장’이 엠마 스톤의 ‘미셸’로
원작에서 백윤식이 연기한 화학회사 CEO ‘강사장’은 부패한 자본가이자 인간 말종 캐릭터였다. 미셸은 이를 현대적으로 변주한 인물이다. 타임지와 포천지 표지를 장식하는 전도유망한 여성 CEO로, 새벽마다 무술과 강도 높은 유산소 운동으로 자신을 단련하는 완벽주의자다. 몸에 꼭 맞는 고급 수트와 하이힐로 무장한 그는 재력과 권력을 한 손에 쥔 현대의 초국적 ‘슈퍼 자본가’로 그려진다.
 
           남녀 커플인 ‘병구’(신하균), ‘순이’(황정민)가 남성 자본가를 납치했던 원작과 달리, 이번 리메이크에서는 남성 두 명이 여성 CEO를 감금한다. 두 남성이 여성을 고문한다는 설정 탓에 성(性)고문 장면이 클리셰처럼 등장할까 우려하는 관객도 있을 수 있으나, 걱정은 접어둬도 좋다. 사촌형제 모두 화학적 거세를 한 설정이기 때문이다. 란티모스 특유의 냉소적 유머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 작품은 란티모스와 엠마 스톤의 다섯 번째 협업이다. 두 사람은 ‘더 페이버릿’, ‘가엾은 것들’ 등에서 이미 독특한 페르소나 관계를 구축한 바 있다. 전작 ‘가엾은 것들’은 비평가들의 극찬 속 오스카 4관왕을 차지했다.
◆광기와 사변, 그리고 인간 없는 세계
제목 ‘부고니아’는 고대 지중해에서 소의 시체에서 꿀벌이 자연 발생한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행해진 의식을 뜻한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영화는 원작의 엉뚱한 광기를 계승하면서도 이를 보다 철학적인 관점으로 확장한다.
영화 중반부, 테디와 미셸의 사변적 논쟁 장면은 마치 오늘날의 이념 대립을 다루는 연극 무대의 2인극처럼 전개된다. 대학과 액티비즘을 두고 쏟아내는 테디의 대사는 통렬하고도 냉소적이다. 두 인물의 대립하는 사고방식을 드러내는 대사는 정교하지만, 지나치게 장황하고 직설적이라는 비판을 피해가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러나 그 장황함조차 란티모스의 세계관 속에서는 불편하지만 불가결한 리듬으로 작동한다.
인간의 절멸 이후를 보여주는 엔딩 시퀀스에는 포크송 ‘꽃들은 다 어디에 갔나(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가 흐른다. 유장하게 이어지는 긴 시퀀스는 충격과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영화는 말한다. 세상을 바꾸기에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인간은 아마 세상을 바꾸기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러나 인간이 지구에서 사라진다 해도, 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를 이어 살아갈 것이라고.
◆‘저주받은 걸작’의 부활과 흥행
‘저주받은 걸작’으로 언급되는 ‘지구를 지켜라!’는 개봉 당시 손익분기점인 100만명에 한참 못 미치는 7만여명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참패했으나,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컬트적 지위를 얻었다. 리메이크작 ‘부고니아’의 흥행 결과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북미 초반 흥행은 순조롭다. 북미 영화흥행 집계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북미 17개 극장에서 제한적으로 개봉한 이후 두 번째 주말(10월 31일∼11월 2일) 2043개 극장으로 확대 개봉해 누적 580만달러(약 83억원)를 벌어들였다. 이는 란티모스 감독 커리어 사상 최대 오프닝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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