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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5000원이라고?”…싸지만 ‘괜찮은 한 끼’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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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1-04 05:00:00 수정 : 2025-11-04 05:33:06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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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불황 속 싸지만 괜찮은 한 끼가 만든 편의점 ‘식(食)문화의 변신’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열풍이 이제 식탁 위까지 번지고 있다.

 

컵라면, 간편 조리 라멘, 냉장 도시락 등 일상 식품 전반에서 값은 낮추고, 만족감은 유지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라멘에서 도시락, 주먹밥까지 확산중인 ‘가성비 열풍’은 단순 경기 침체의 결과가 아니다. 게티이미지

소비자들은 더 이상 단순히 저렴한 상품을 찾지 않는다. 싸지만 괜찮은 품질을 추구하는 합리 소비의 시대가 본격화됐다.

 

◆편의점이 만든 ‘가성비 라멘 붐’…“건더기 줄이고 국물에 집중”

 

4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최근 출시된 로손의 ‘격하게 맛있다!’ 시리즈가 일본 현지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

 

대표 제품인 진한 돈코츠 라멘, 매운 된장 라멘은 건더기를 과감히 생략하고, 대신 국물의 맛과 농도를 극대화했다.

 

‘가격은 그대로, 품질은 향상’이라는 접근이 소비자에게 통했다.

 

출시 직후 품절 사태가 이어졌고, 후속 제품이 나온 지난 1월 이후에도 판매량이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 중이다.

 

세븐일레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점포 내 조리 라멘’ 서비스를 시범 도입했다.

 

일부 매장에선 전용 조리 기기를 통해 2분 내에 간장·미소 라멘을 즉석 제공한다. 가격은 630엔으로, 일반 식당 라멘(800~1000엔대)보다 저렴하다.

 

훼미리마트는 도시락 가격을 500엔대로 낮춘 신제품을 출시했다. 미니스톱은 주먹밥 가격을 최대 20엔 인하하며 가격 경쟁에 동참했다.

 

한 소비트렌드 분석가는 “일본 소비자들은 단순히 ‘싼 제품’을 찾는 게 아닌 ‘가격 대비 만족감이 높은 제품’을 선호한다”며 “절약이 아닌 ‘합리 소비’로의 전환”이라고 말했다.

 

최근 일본 MZ세대는 외식 대신 편의점·간편식으로 ‘작은 사치’를 즐기며 품질을 포기하지 않는 절충형 소비를 택하고 있다.

 

‘맛있는데 싸다’가 아닌 ‘싸지만 괜찮다’로 인식이 달라진 것이다. 가치 중심 소비가 일상화된 결과로 풀이된다.

 

이른바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가 일본식 소비 트렌드의 핵심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다.

 

◆편의점 간 경쟁 치열…‘체험형 상품’ 차별화 포인트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편의점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단순한 제품 판매보다 매장에서 즉석으로 즐기는 체험형 상품이 차별화 포인트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븐일레븐의 ‘점포 내 조리 라멘’은 퀵서비스와 외식의 중간지대를 공략한 사례”라며 “향후 편의점의 ‘소형 식당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가격 인하 경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일본 편의점들은 ‘조리 기술’과 ‘서비스 품질’로 새로운 가성비를 정의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결국 일본 편의점 산업은 ‘상품 중심 유통’에서 ‘식문화 플랫폼’으로 진화 중이다.

 

장기 불황과 임금 정체로 소비 심리가 위축되자 기업들이 ‘가성비’를 생존 키워드로 삼기 시작했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라멘은 일본 서민 경제의 바로미터”라며 “라멘 가격을 보면 일본의 생활물가와 소비 심리의 체온을 읽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편의점 간 가성비 경쟁은 단순한 유통 전쟁이 아닌 디플레이션 구조 속 소비자 지갑을 잡기 위한 산업 재편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저물가 일본’의 소비 구조 변화는 곧 산업의 체질 변화를 예고한다는 분석이다.

 

편의점 라멘이 외식 라멘을 대체하기 시작한 건 품질 향상과 조리 기술 표준화가 상당히 진전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격하게 맛있다!’ 시리즈처럼 건더기를 줄이고 국물 맛에 집중하는 전략은 제조원가를 낮추면서도 ‘맛의 핵심’을 살린 현명한 설계라는 평가다.

 

간편식 시장이 성숙 단계에 접어든 일본에서는 이제 ‘조리 편의성’보다 ‘맛의 정교함’이 승부처인 셈이다.

 

즉, 일본 간편식 시장은 ‘편리함의 경쟁’을 지나 ‘품질의 경쟁’으로 진화하고 있다.

 

◆전문가들 “실속형 제품, 현지시장 공략 ‘열쇠’ 될 수 있어”

 

한 문화평론가는 “가성비 식문화는 단순한 경제 논리를 넘어 낭비를 미덕으로 보지 않는 일본 사회의 가치관을 반영한다”며 “라멘은 일본인의 정서를 상징하는 음식이다. 그 라멘이 ‘합리 소비의 아이콘’으로 바뀌는 건 세대 교체의 신호”라고 분석했다.

 

이어 “‘싸지만 제대로 된 한 끼’를 찾는 움직임은 물가 상승 속에서도 품질과 자기만족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생활 철학으로 읽힌다”고 부연했다.

 

‘검소하되, 품격을 잃지 않는다’는 일본 특유의 미학이 식탁 위에서도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가성비 트렌드는 한국 식품기업에도 시사점이 적지 않다. 프리미엄보다 ‘실속형 제품’이 현지 시장 공략의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 게티이미지

일본의 가성비 트렌드는 한국 식품기업에도 시사점이 적지 않다. 프리미엄보다 ‘실속형 제품’이 현지 시장 공략의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

 

한국 식품 브랜드가 일본에 진출할 때는 맛과 브랜드 스토리뿐 아니라 가격대와 조리 편의성이 결정적 요소로 작용한다.

 

일본의 변화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닌 ‘고물가 시대’ 동아시아 소비 패턴의 변화를 보여주는 시금석이다.

 

◆“절약 아닌 합리”…‘가성비’ 식문화가 던지는 메시지

 

라멘에서 도시락, 주먹밥까지 확산 중인 가성비 열풍은 단순히 경기 침체의 결과가 아니다.

 

그 속엔 품질을 유지하며 낭비를 줄이는 합리성이라는 소비 철학이 자리한다.

 

이는 프리미엄에 치중했던 동아시아 식품 시장에 새로운 균형점을 제시한다.

 

“싸지만 괜찮은 한 끼.” 일본의 식탁은 지금, 불황을 넘어선 새로운 생활 미학의 실험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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