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 ‘AI 3강’ 될 것처럼 들떠
충분한 과학기술 인재 없인 난망
국력은 AI·로봇 아닌 결국 사람
‘한국에 2030년까지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장 우선 공급’
얼마 전 15년 만에 방한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던진 통 큰 선물이다. 우리나라 전체가 금방이라도 인공지능(AI) 강국이 된 것처럼 들떴다. 엔비디아가 AI산업 생태계 구축에 필수적인 고성능 GPU를 대량으로 한국 정부와 기업에 푼다고 해서다. 전 세계 주요 국가와 기업이 앞다퉈 탐내는 전략 자산을 단숨에 무더기로 확보할 수 있게 됐다니 한껏 부푼 반응은 당연하다.
‘피지컬 AI’ 시장까지 노리며 ‘AI 제국’을 꿈꾸는 엔비디아가 그 협력자로 한국을 지목한 것도 고무적이었다. 피지컬 AI란 AI가 연산과 추론 등 소프트웨어 영역뿐 아니라 자율주행차와 로봇, 스마트공장 등 물리적인 현실 세계에서 폭넓게 활용되는 것을 의미한다. 젠슨 황은 “성공을 위해 필요한 세 가지 핵심 역량인 소프트웨어, 제조, AI 기술을 모두 가진 몇 안 되는 나라”라며 한국을 ‘깐부’로 낙점했다. AI 대부로 불리는 그가 이렇게까지 치켜세우니, 미국과 중국에 버금가는 AI 강국을 내세운 이재명정부는 그 누구보다 쾌재를 부르지 않았을까.
그러나 성급하게 샴페인을 터트릴 때가 아니다. 미·중에 견줘 한국의 AI 기술력과 경쟁력은 명함조차 내밀기 부끄러운 수준이다. 명실공히 ‘AI 3강’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난하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미래 성장산업의 핵심축이자 국가 경쟁력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과학기술 인재가 턱없이 부족한 게 심각한 문제다. 비단 AI 분야뿐 아니라 로봇·정보통신기술(ICT)·바이오 등 첨단산업은 물론 기술 혁신이 절실한 전통 제조업 현장도 마찬가지다. 기초과학·의학 쪽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미·중 양국 정부와 주요 대학, 빅테크 기업들이 매력적인 임금·보상·교육체계와 최적의 연구개발(R&D) 환경 등을 앞세워 경쟁적으로 자국과 해외 인재를 끌어모으고 양성하는 것과 비교된다. 한국에선 그나마 있는 인재 중 상당수가 더 나은 기회를 찾아 외국으로 갔거나 떠나려 한다. 이와 관련해 최근 의미심장한 경고음이 잇따라 울렸다. 공교롭게 엔비디아발 GPU 공급 축포가 쏘아진 직후다.
한국은행이 지난 3일 내놓은 ‘이공계 인재 해외 유출 결정요인과 정책적 대응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이공계 연구자 10명 중 4명이 “향후 3년 내 외국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42.9%)고 답했다. 연구 분야별로는 선진국이 우위를 점한 바이오·제약·의료기(48.7%)에서 이직 고려율이 가장 높았고, IT·소프트웨어·통신(44.9%)은 물론 우리나라가 우위에 있는 조선·플랜트·에너지(43.5%)조차 이직을 고민하는 비중이 40%를 넘었다. 석·박사급 191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인데, 20대(72.4%)와 30대(61.1%) 응답률에서 보듯 젊은 연구자일수록 ‘한국 탈출’ 의향이 강했다. 17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올해 ‘세계 디지털 경쟁력 순위’에서도 한국은 암울한 지표들이 덕지덕지 달렸다. 아시아 경쟁국인 싱가포르·홍콩·대만·중국에도 밀리며 전체 순위가 69개국 중 15위에 그쳤다. 특히 낙제점을 받은 인재 부문(49위)의 주요 세부 지표는 국제경험(58위), 디지털 기술 능력(59위), 해외 우수 인재(61위) 등에서 처참한 수준이었다. 정부가 2022년 ‘대한민국 디지털 전략’을 발표할 때 ‘IMD 디지털 경쟁력 지수’를 2027년까지 세계 3위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한 나라의 꼴이 이렇다. 그래도 다행인 건 새로 들어선 이재명정부가 ‘AI 3대 강국, 과학기술 5대 강국’ 도약을 선언하고 과학기술 인재 확보와 양성에 적극 나서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연구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금전적 보상과 연구 생태계·네트워크 활성화, 정당한 기회 보장 방안 등은 미흡한 실정이다.
국내외 인재들이 한국에 정착해 마음껏 꿈을 펼치고, 미래 인재들이 의대보다 이공계 대학으로 쏠리도록 하는 길을 닦아야 한다. 미국과의 ‘불공정 관세협상’에서 분투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이런 일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 우리 국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힘은 AI와 로봇이 키워주는 게 아니다. 답은 결국 사람이다. AI 3강 꿈이 백일몽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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