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설왕설래] ‘빨간 우체통’ 역사 속으로

관련이슈 설왕설래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5-12-23 22:54:14 수정 : 2025-12-23 22:54:13
채희창 논설위원

인쇄 메일 url 공유 - +

덴마크에선 내년부터 거리 곳곳에 설치된 ‘빨간 우체통’을 볼 수 없다. 덴마크 사회의 디지털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우체국이 400년 넘게 유지해 온 편지 배달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덴마크 국영 우체국 ‘포스트노르’는 그제 “이달 30일을 마지막으로 편지 배달 서비스를 전면 중단한다”며 소포·택배 중심의 물류 기업으로 체질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국가 차원의 공식 우편 제도가 탄생한 유럽에서 국영 우체국이 편지 배달 서비스를 완전히 중단하는 것은 덴마크가 처음이다. 역사적 전환점인 듯하다.

포스트노르가 이런 결단을 내린 이유는 우편 물량이 크게 감소해서다. 1624년부터 편지 배달이 시작된 덴마크에서 편지 발송량은 2000년 이후 25년 동안 92%나 급감했다. 이에 따라 우편 업무 관련 일자리 1500개가 없어지고, 빨간 우체통 1500개도 철거될 예정이다. 지난해 덴마크 정부가 우편 시장을 민간에 개방하면서 면세 제도를 폐지해 우표값이 크게 오른 것도 한몫했다. 현재 덴마크에선 편지 한 통을 보내려면 29덴마크크로네(약 6300원)를 내야 한다. 앞으로 편지를 보내려면 민간 배송업체를 찾아가거나 택배원을 불러야 한다.

우편물 감소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 대부분 국가의 고민거리다. 컨설팅사 맥킨지에 따르면 2010년대 후반 독일과 스위스의 우편물 처리량은 2000년대 초반보다 40% 줄었고 미국은 46%, 영국 등은 50~70% 감소했다. 이에 따라 영국은 지난 7월부터 일반 우편을 기존 월~토 6일에서 평일 2~3일만 배달하고 있다. 프랑스는 내년부터 이용량 감소 등의 이유를 들어 우표값 인상을 예고했다. 미국 우정청도 비용 절감과 수익 다각화 등을 놓고 고심 중이다.

우리도 우편사업 손익이 악화하면서 올해 적자가 2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우정사업본부는 금융·복지·공공서비스 등으로 서비스를 다변화하고 있다. 다만 아직 편지 배달 서비스를 종료하거나 배달 빈도를 줄이는 방안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 추세를 막긴 어려울 것이다. 빨간 우체통에 담긴 추억과 낭만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게 영 허전하다.


오피니언

포토

김혜준 '깜찍한 볼하트'
  • 김혜준 '깜찍한 볼하트'
  • 강한나 '아름다운 미소'
  • 전미도 '매력적인 눈빛'
  • 서현진 '매력적인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