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중립국이 전쟁에 휘말린 사례가 적지 않다. 중립은 스스로 방어할 수 있을 때에만 가치가 있다.” 스위스군 총사령관 토마스 쥐슬리 장군(육군 중장)이 지난 연말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으로 유럽 안보 지형이 완전히 바뀌었지만 ‘영세 중립국’의 간판 뒤에 숨어 국방력 강화 노력을 게을리하는 스위스 정부와 국민을 질타했다. 우리나라에도 통일 한국은 ‘중립국’으로 만들자는 이들이 많은데, 경종을 울리는 지적이 아닐 수 없다.
1939년 9월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독일과 국경을 맞댄 덴마크는 중립을 선포했다. 하지만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1940년 4월9일 독일은 육·해·공군을 총동원해 덴마크를 침략했다. 덴마크는 독일군의 공격 개시 후 불과 6시간 만에 항복했다. 당시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10세는 국외로 피신하지 않고 조국에 남았다.
덴마크와 나란히 나치 독일 침공을 받은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 국왕들은 영국 런던에 망명정부를 꾸리고 저항의 구심점이 됐다. 너무 쉽게 굴복한 덴마크가 훗날 연합국 국민들 사이에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권투 시합 초반 한 방 얻어맞고 링 위에 쓰러진 선수를 “덴마크인 같다”고 조롱하는 표현까지 생겨났다. 2차대전 종전 후 덴마크에서 “4월9일은 결코 다시는 없다”는 말이 유행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백악관이 그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 획득이 미국의 국가안보 우선 과제란 점을 분명히 했다”며 “미군 활용도 선택지 중 하나”라고 밝혔다.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미국이 차지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셈이다. 영국은 물론 독일·프랑스 등 유럽연합(EU) 주요 회원국들도 덴마크 편을 들고 나섰다. 하지만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한 뒤 공식 계정에 ‘FAFO(까불면 다친다)’라는 비속어를 버젓이 게재한 트럼프의 위협 앞에서 덴마크가 느끼는 불안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간다. 히틀러의 침략 후 86년 만에 덴마크가 최악의 안보 위기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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