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후 3년이 지난 1948년 신생 공화국 대한민국의 헌법을 만들 제헌의회 구성이 시급해졌다. 이를 위한 5·10 총선이 1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동아일보에 여성들의 투표를 독려하는 글이 실렸다. “우리 여성들은 교육 정도가 남성에 비해 떠러져(떨어져) 있으나 그 대신 우리 여성들에게는 자랑할 만한 단결력이 있다”는 구절이 눈길을 끈다. 남성보다 여성의 문맹률이 훨씬 높았던 1940년대 후반 ‘선거에서 여성이 과연 온전히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컸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해당 글이 여성 유권자를 향해 가급적 여성 권익을 옹호할 후보자에게 표를 던질 것을 촉구한 것은 타당한 조언이라고 하겠다.
공화정 수립과 동시에 남녀의 동등한 투표권이 보장된 한국과 달리 민주주의 국가 다수는 여성 참정권 확보를 위한 지난한 투쟁의 역사를 갖고 있다. 1893년 당시만 해도 영국 식민지이던 뉴질랜드가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남성과 똑같은 투표권을 부여했다. 뉴질랜드 성인 여성의 25%에 달하는 3만2000여명의 서명이 담긴 청원서가 의회에 제출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정작 영국 본국은 1918년에야 30세 이상 여성에게, 그것도 제한적으로 참정권을 허용했다. ‘의회 민주주의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영국에서 투표권의 완전한 남녀 평등이 실현된 것은 1928년의 일이다. 프랑스는 그보다도 한참 더 늦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6년에 비로소 여성이 투표를 통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은 어떨까. 남북전쟁 이후인 1860년대 후반부터 여성 지식인들 사이에 ‘여자에게도 남자와 대등한 참정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전쟁터로 떠난 남성들 대신 여성들이 농장 및 공장 노동과 가족 부양을 책임지게 되며 그만큼 권리 의식도 높아진 결과로 풀이된다. 교사이자 작가, 사회운동가였던 수전 앤서니(1820∼1906)의 주도 아래 1869년 전미여성참정권협회(NWSA)를 결성하고 연방의회 의원들을 설득하는 작업에 나섰다. 투표권의 남녀 차별을 금지하는 헌법 개정안까지 직접 만들어 의회에 제안했으나, 의원들은 여야를 불문하고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1872년 11월 미국에서 대선이 실시됐다. 앤서니는 투표소에 무단으로 들어가 기어이 한 표를 행사했다. 이듬해인 1873년 법원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앤서니에게 벌금 100달러를 선고했다. 하지만 앤서니는 이를 납부하지 않고 버티며 “심판을 받아야 할 대상은 미국 행정부와 의회”라고 외쳤다. 이로부터 거의 반세기가 지난 1920년에야 미국은 수정헌법 19조 제정을 통해 여성에게 남성과 똑같은 참정권을 부여했다. 그 사이 앤서니는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고 없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820년 2월15일 태어난 앤서니의 206번째 생일에 해당하는 15일 내놓은 대국민 메시지에서 고인에게 “진정한 미국의 거인이자 인간 존엄성의 영원한 옹호자”라는 찬사를 바쳤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옛 법언(法諺)이 새삼 묵직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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