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마틴 루서 킹 목사와 깊은 인연
“유색 인종, 가난한 사람들 위해 싸울 것”
1984·1988년 民主 대선 후보 경선 도전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이자 정치인이기도 했던 제시 잭슨 목사가 8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잭슨은 2017년 파킨슨 병 진단을 받고 10년 가까이 투병해 왔다.
17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잭슨의 가족은 이날 성명에서 고인의 타계 소식을 알리며 “우리 아버지는 가족뿐만 아니라 억압받는 사람들, 목소리 없는 사람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봉사자였다”고 추모했다.
잭슨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기 직전인 1941년 10월 사우스캐롤라이나주(州) 그린빌에서 태어났다. 당시만 해도 사우스캐롤라이나를 비롯한 남부 일대는 흑백 인종 차별이 극심했다. 어릴 때부터 흑인이란 이유로 차별을 경험한 잭슨은 일찌감치 유색 인종, 가난한 사람, 힘없는 이들을 위해 사회의 온갖 장벽을 허물기로 결심했다.
그는 대학 시절 이른바 ‘백인 전용’ 공공 도서관에 들어가려다 체포되는 등의 사건을 겪으며 인권운동가로 성장해갔다. 시카고에서 신학교를 다닌 그는 졸업장을 받지 못했음에도 1968년 침례교 목사 안수를 받았다.
잭슨은 1960년대 미국에서 흑인 인권운동가로 명성을 떨치던 마틴 루서 킹(1929∼1968) 목사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1968년 킹 목사가 테네시주 멤피스의 한 호텔에서 백인이 쏜 총에 맞아 절명했을 때 그는 바로 곁에 있었다. 킹 목사 암살 후 잭슨은 시카고를 근거지로 민권 운동 단체를 설립했다. 이 단체는 훗날 ‘전미 레인보우 푸쉬 연합(Rainbow-PUSH Coalition)’으로 확대됐으며, 잭슨은 50년 넘게 그 의장을 지낸 뒤 2023년 은퇴했다.
뛰어난 연설 능력을 갖춘 잭슨은 흑인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되겠다는 정치적 야망을 품었다. 1984년과 1988년 미 대선 당시 그는 민주당 후보를 뽑기 위한 경선에 출마했다. 하지만 두 차례의 도전 모두 실패로 끝났고, 잭슨은 끝내 선출직 공무원이 되지 못했다. 미국의 양대 주요 정당에서 흑인 대선 후보가 탄생한 것은 20년이나 지난 2008년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서야 현실이 됐다.
잭슨은 1990년대 민주당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대통령의 아프리카 특사로 활동했다. 또 시리아, 쿠바, 이라크, 세르비아 등 반미 성향의 국가에 억류된 미국인들 석방 실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0년 클린턴은 이 같은 공로를 인정해 잭슨에게 ‘대통령 자유 훈장’(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수여했다. 이는 미국에서 군인 아닌 민간인에게 주어지는 최고 영예에 해당한다.
공화당 소속인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과는 악연을 맺었다. 2020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당시 46세)가 범죄 피의자의 누명을 쓴 채 백인 경찰관들로부터 가혹 행위를 당한 뒤 사망한 이른바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미 전역에서 대규모 항의 시위가 벌어졌을 때 잭슨은 트럼프 행정부와 경찰을 강력히 규탄했다.
잭슨은 대학 시절 만난 재클린 브라운과 1962년 결혼해 슬하에 다섯 자녀를 낳았다. 그의 아들 제시 잭슨 주니어는 연방 하원의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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