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매물 씨 마르고 공급 절벽 심화…전세수급지수 100 ‘훌쩍’
“대출 막혀 갈 곳 없어요” 정든 동네 떠나 경기·인천행 ‘엑소더스’
“집주인한테 문자 왔는데, 2억원을 올려달라네요. 이 돈이면 경기도로 나가는 게 맞겠죠?”
서울 강동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박모(39) 씨의 스마트폰 화면에는 전세 세입자 단톡방 알람이 쉴 새 없이 울렸다. 불과 2년 전 ‘역전세’를 걱정하며 보증금을 떼일까 잠 못 이루던 풍경은 간데없다.
이제는 자고 나면 수억원씩 뛰는 보증금 증액 요구에 “도저히 못 버티겠다”며 짐을 싸는 이들의 한숨만 가득하다. 서울 전세시장이 그야말로 ‘불장’이다. 숫자는 현장의 뜨거운 체감 온도를 고스란히 증명한다.
◆51주째 멈추지 않는 상승 그래프
18일 KB부동산 2월 둘째주 주택시장동향 통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지수는 51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주간 지수 기준으로 1년 가까이 단 한 주도 빠짐없이 올랐음을 의미한다.
KB부동산 집계 기준 올해 1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6억6948만원을 찍었다. 1년 전보다 5.8% 올랐고, 2년 전(5억8959만원)과 비교하면 13.6% 급등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전세수급지수 역시 최근 서울에서 기준선인 100을 거뜬히 넘겼다. 집을 구하려는 세입자가 시장에 나온 매물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는 구조적 공급 가뭄을 뜻한다.
◆“3억원을 어떻게 구해요”…비명 지르는 현장
거래 현장에서 세입자들이 마주하는 성적표는 더욱 가혹하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보면, 서울 성북구 길음동 ‘롯데캐슬클라시아’ 84㎡는 지난해 7억원대 거래도 이뤄졌지만, 지난달 8억~9억원을 거쳐 이달에는 10억8000만원에 신고가를 썼다. 단기간에 3억원 이상 치솟았다.
동작구에서는 중형 아파트 전셋값이 대형 면적과 맞먹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흑석한강센트레빌1차 84㎡는 12억원에 도장을 찍으며 고점을 경신했고, 114㎡ 역시 동일한 12억원에 거래됐다. 용산구 래미안첼리투스 124㎡는 약 50일 만에 5억원이 뛰었다.
현장의 한 공인중개사 대표는 “세입자들이 ‘대출을 더 받으려 해도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때문에 막혔다’며 발을 동동 구르다 결국 경기도나 외곽 빌라로 떠밀려가고 있다”고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매물은 잠기고 입주는 마르고
문제는 이 지독한 상승세가 꺾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급의 두 축인 ‘기존 매물’과 ‘신규 입주’의 숨통이 동시에 막혔기 때문이다.
아파트 실거래 정보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최근 수개월 사이 두 자릿수 감소율을 보이며 빠르게 증발 중이다.
여기에 부동산R114가 집계한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마저 전년 대비 확연히 줄었다. 신규 공급 물량이 터져주지 않는 한 당분간 전셋값 하락은 기대하기 어렵다. 대출 규제와 금리 변동 가능성까지 겹치며 서민들의 돈줄은 턱없이 짧아졌다.
◆서울 엑소더스, 불장은 외곽으로 번진다
서울에서 버티지 못한 수요는 경기도로 밀려나며 지독한 ‘풍선 효과’를 낳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1월 말 기준 통계를 보면, 도봉구(0.4%), 노원구(0.39%) 등 외곽 지역의 전셋값 상승률이 매섭다.
성남시 분당구 ‘한솔마을 1단지’ 49㎡는 한 달여 만에 1억5000만원이 오르며 5억5000만원에 손바뀜됐다. 도심 진입 장벽에 부딪힌 수요자들이 외곽으로 튕겨 나가며 수도권 전역에 불을 붙이고 있는 셈이다.
다가오는 3~4월 봄 이사철, 전세 수급 불안은 더욱 흉포해질 수 있다. 치솟는 보증금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짐을 싼 세입자들의 이삿짐 트럭은, 오늘 밤에도 꽉 막힌 강변북로를 타고 서울 밖으로 쓸쓸히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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