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탓인가. 북유럽 경험도 제법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컨디션이 저조했다. 전시 준비도 하고 현지에서 작업도 해야 했지만, 마음은 복잡하고 몸은 착 가라앉아 버렸다. 베스트포센 미술관에서 열리는 그룹전을 위해 한 열흘 정도 북유럽 노르웨이에 머무르고 있던 지난해 3월 무렵이었다.
찬찬히 되짚어보니 날씨 때문이 아니었다. 무리하지 않는 삶에 관심도 많았고 실제 그렇게 살려고 노력도 해온 그였지만, 최근 몇 년간 너무 많은 일을 해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티스트이자 인디밴드 1세대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배우로서 백현진은 최근 몇 년간 전시장과 무대, 스크린을 종횡무진 내달렸다. 특히 드라마 「모범택시」 속 ‘갑질 회장’ 역이나 쿠팡플레이의 예능 「직장인들」에서 ‘백 부장’ 캐릭터로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크게 알리지 않았던가. 아,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번아웃이라는 것이구나.
오히려 젊은 시절에는 번아웃이란 개념도, 실제 번아웃도 없었다. 미술가와 뮤지션, 배우로서 시장에서 성과가 거의 없는 탓에 먹고 사는 것 자체가 막막했고 계속 낙담해왔던 시절이었으니까.
노르웨이 그룹전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백현진은 황량한 시간을 거친 뒤에야 다시 캔버스 앞에 설 수 있었다. 그 사이 좋아하던 술도 담배도 끊었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확 줄였다. 아이고, 하면서 지난해 9월부터 번아웃에서 빠져 나와 담담하게 붓질할 수 있었다. 붓끝을 타고 백지 위에는 그 동안 그의 몸과 마음에 응고돼 있던 풍경과, 감정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나기 시작했다. 비워지고 덜 그려진 듯 채워지고, 억지와 긴장 대신 산뜻한 색채와 담백한 언어가….
“그림이 그렇게 보이신다면 아마 맞을 겁니다. 그림에 대한 느낌에 대해서, 제가 맞다 틀리다고 말할 건 아닌 것 같아요. 언어로 제대로 표현할 수 없어 그린 작품들이니까요. 여기 있는 그림들은 작년 번아웃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들이긴 해요. 개인적인 여러 문제로 마음이 좀 복잡하고 많이 가라앉아 있었던 상태에서 그린 것들이죠.”
지난해 쿠팡플레이의 예능 프로그램 「직장인들」에서 ‘백 부장’ 캐릭터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배우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아티스트 백현진의 개인전 「서울 신택스(Seoul Syntax)」가 지난 4일부터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3월21일까지.
‘서울 신택스’라는 타이틀은 ‘서울식’을 영어로 옮긴 표현으로, 지난해 발표한 솔로 앨범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대도시 서울을 소리로 표현한 작업이 앨범 ‘서울식’이라면, 이번 개인전은 그 시각적 결과물인 셈이다.
이번 개인전에는 나무 같기도 하고 숲 같기도 한 곳에 사람이 누워 있는 듯한 작품 「멈춤」을 비롯해 변화와 공존을 거듭하는 동시대 ‘서울’의 모습이 담긴 장지 페인팅과 드로잉, 비디오 영상 작품 30여점이 전시됐다. 작품들은 서울이라는 공간 속 리듬과 어긋남, 규칙과 오류의 공존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작품 「난제」 역시 엇비슷한 나무나 숲 패턴을 배경으로 하지만, 대책 없이 맞선 검은 모양이 그림 전체를 압도하며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갈팡질팡하는 색깔의 도형들이 두툼한 한지에 그려진 「갈팡질팡」 역시 화면을 위에서 아래로 가로지는 금색 스프레이 선이 다른 색들의 선들과 묘하게 삐걱대면서 어우러지는 것이 인상적이다. 전체적으로 안정과 불안, 정다움과 낯섬, 성공과 실패가 공존하는 서울의 가변적인 모습을 상징하는 것 같다.
영화 「미나리」의 한예리 배우와 영화 「기생충」의 홍경표 촬영감독이 참여한 비디오 작품 「빛 23」은 해질 무렵 서울 근교에서 원테이크 기법으로 촬영한 영상. 날씨의 변화와 인간의 희로애락이 낭만적으로 담겨 있다.
콜롬비아 소설가 안드레스 솔라노가 “노래하듯 그림 그리고, 연기하듯 노래하며, 그림 그리듯 연기한다”고 평한 백현진은 왜 느슨한 구성과 반복적 패턴 속에 리듬과 어긋남이 공존한 그림을 그려야 했을까. 그가 포착한 서울의 색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작가적 여로는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 백 작가를 지난 5일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 전시회 ‘서울 신택스’ 현장에서 만났다.
―첫 작품 제목은 왜 ‘멈춤’인가.
“우선 최대한 언어를 배제하고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다 그려놓은 뒤에 제목을 붙일 때 언어가 개입하게 된다. 제목이 그리 중요하지 않고 별명 정도라고 가볍게 생각하면 된다. 제목이 없어도 크게 문제는 아닌데, 친구에게 별명을 지어주는 것처럼 그냥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이 작품의 경우 ‘멈춤’이라는 낱말을 별명처럼 붙여놓으면 괜찮지 않겠나 했던 것 같다. 근데 지금 보면 또 이게 왜 멈춤이었지, 라는 생각도 든다(웃음).”
―작품들 속에 나무나 숲, 산 모양 또는 왕관 모양이 계속 반복돼 나오는데.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릴 개인전을 준비하던 지난해 1월, LA에서 큰 산불이 났다. 아마 그때쯤 풀인지 식물인지 산인지 모를 그림을 단순하게 반복해 그리고 있더라. 붓질하는 재미도 있고, 간단하기도 했다. 반복돼 비슷한 패턴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또 다 다르다.”
―「갈팡질팡」도 다른 작품들과 연결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연결이 돼 있을 거다. 컨디션이 좋을 때도 갈팡질팡, 엉망진창, 이런 것들에 대해 관심이 많다. 제 스스로 질서가 있는 부분도 많지만, 엉망진창이고 갈팡질팡하고 우왕좌왕하는 면도 많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고 있지 않나.”
―예전 작품들보다 이번 작품은 비워진 공간이 많아 보이는데.
“잘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좀 덜 그린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렇게 좀 덜 그리는 그림, 많이 비워지는 그림이 현재 물리적인 제 몸에 가장 맞는 것 같다. 젊었을 때에는 덜 그리면 계속 불안해 밀도가 높은 작품을 많이 그렸다.(언제부터 이렇게 그리게 된 것인지) 오래 전부터 간간이 실험을 했다. 본격적으로 그린 것은 한 5년이 안된 것 같다.”
―왜 유화를 썼는지.
“유화가 저에게 제일 맞는 것 같다. 아크릴은 빨리 굽고 성질이 조금 급한 것 같고, 유화는 속도가 저랑 맞다. 앞으로 유화만 고집할 것 같지 않고 그냥 이것저것 쓸 것 같다. 최근에는 먹도 유화랑 섞어서 썼다.(한지에 그림을 그렸다) 전주 상인이 만든 한지다. 한지를 테스트해 보았는데, 제 몸에 맞고 새로운 재미도 있어서 재작년부터 본격적으로 한지로 작업했다. 유화를 가지고 장지에 붓질을 할 때가 캔버스에 붓질할 때보다 몸이 좀더 편하더라. 그렇다고 앞으로 장지 그림을 계속 그리겠다는 것은 아니다.(밑그림을 그린 뒤에 붓질한 것인가) 아니다. 장지에 바로 그렸다. 유화 물감 농도를 장지에 맞게 잘 조절했다.”
―비디오 작품 「빛 23」은 어떻게 만들었는가.
“음악가로 「빛 23」이라는 곡을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미술가로서 비디오 아트처럼 뮤직비디오를 겸해 찍은 것이다. 홍경표 촬영감독이 영화 「마더」의 김혜자씨가 춤추는 장면이나 「버닝」의 해질 때 자연광을 기가 막히게 다루는 것을 보고 자연광을 잘 담고 싶어 부탁했다. 홍 감독께서 마침 시간도 되고 해 주신다고 그래서 찍게 됐다.”
어느 날 소년 백현진은 아버지의 서재에 들어갔다가 서재를 가득 채운 노란색 잡지를 보게 됐다. 바로 『내셔널 지오그래픽』 미국 판이었다. 오랜 세월 외국계 선박회사 선장으로, 한 달 정도 집에 머무르는 기간을 제외하면 늘 해외를 떠돌던 아버지는, 집으로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보내왔다.
펼쳐본 잡지의 사진들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국내 신문 등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사진들이었다. 소년은 노란색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들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보곤 했다. 이즈음 허영만 작가의 만화도 즐겨 읽게 됐다. 그림도 좋았고 스토리도 흥미진진했다. 문뜩 생각 하나가 그의 머릿속으로 굴러왔다. 만화가가 되면 재미있을까.
막연하게 만화가를 떠올린 소년은 어느 순간부터 낙서처럼 노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꾸준히 그림을 계속 그렸다. 화가가 되기 위한 훈련을 자신도 모르게 하고 있었던 셈이다. ‘아티스트 백현진’의 씨가 뿌려진 순간이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누나의 영향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주로 락이나 헤비 메탈 쪽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엔 시를 비롯해 문학 쪽으로 기울기도 했다. 글 읽기도 쓰기도 모두 좋았다. 막연하게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이거, 재미없는데. 1994년 뒤늦게 홍대 조소과에 들어간 그는, 곧 정규 대학 수업이 재미없고 자신과 맞지 않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때 그는 이미 학교 밖의 작가들과 교류하고 있었다. 이거, 대학을 못 다닐 것 같은데.
대신 영화음악을 하는 장영규씨와 함께 언더밴드 ‘이어부 프로젝트’를 결성한 뒤 이듬해부터 홍대 앞 클럽에서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학교는 더욱 나가지 않게 됐고, 점점 멀어져 갔다. 홀로 계속 그림을 그려온 그는 1996년 서울에서 열린 그룹전 「살」에 참여하며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듬해 대학을 그만뒀다.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난 백현진은 1996년 그룹전 「살」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한국을 비롯해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대만 등지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어왔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리움미술관, 일민미술관, 아트선재센터, 상하이 민생현대미술관, 쿤스트할레 빈 등 세계 유수의 미술기관 그룹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2017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원작가로 선정됐다.
2000년대 초반 백 작가의 샤프 드로잉 작품을 본 이래 관계를 이어온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는 “현대 미술의 포괄적인 영역에서 어떻게 보면 가장 당대적인 비전을 갖고 총체적인 역할을 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충만한 젊은 작가”라고 평가한다.
특히 백현진은 장영규씨와 인디밴드를 결성한 이래 싱어송라이터와, 2000년대 이후 영화 「북촌방향」과 「경주」, 「브로커」와 드라마 「무빙」, 「모범택시」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전방위 예술가’라는 말도 나오는데.
“그냥 직업이 몇 개 있을 뿐이다. 스스로 전방위 예술가라고 얘기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이것저것 관심이 많아서 하다 보니까 그렇게 부르는 것 같다. 전방위 예술가라고 하면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무대 연출도 해보고 영화도 찍어봤지만, 지속적으로 계속하는 일은 아니고, 직업으로서 오래 해온 것은 미술가와 음악가, 배우의 일이었다.(전체를 100이라고 한다면 그림 비중은 얼마쯤인가) 지금은 거의 동등하게 돌아가고 있고, 셋 중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다만 더 나이 먹고 생물학적으로 쇠했을 때에는 배우로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들고 찾아주지 않으면 못할 것이고, 공연 음악가로서 무대에 서는 것 역시 많이 줄어들 것이기에, 아마 화가로 그림 작업을 더 많이 오래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배우로 더 많이 아는 것 같다.
“2000년대 초반부터 드문드문 독립 영화 등에 출연했다. 당시 저는 앞날이 깜깜한 청년 예술가였다. 드라마에 출연한 것은 9년 전쯤 됐고, 이후 드라마나 상업 영화에 찔끔찔끔 나오다가 「모범택시」 이후부터 조금 위상이 생긴 것이다. 그러니까 배우로 알려진 것은 한 4, 5년에 불과한 것 같다.(연기를 하는 것이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지) 연기와 그림이 서로 방해되지 않는다. 물론 오해도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저 사람 배우로 유명하니까 예술가인 척 그림도 그린다, 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예전 같으면 아니 내가 일한 타임 라인을 보면 저런 말을 할 수 없는데 어떻게 보지도 않고 저렇게 말하지 하고 분노했겠지만, 지금은 충분히 그럴 수 있어, 라며 그러려니 한다.(그래도 본업에 충실하라거나 그림만 그리면 더 잘할 텐데 하는 말도 나올 텐데) 그림 그리고, 음악 만들고, 연기하는 게 제 본업이라고 생각한다. 오롯이 화가로만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유리하거나 혜택을 주는 측면도 있다. 예를 들면, 미술가로 몇 년째 전시도 안 하고 수입이 없을 때 배우로 번 돈 때문에 뱃심이 생겨 시장 눈치를 보지 않고 그리고 싶은 것만 그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림이 팔려 돈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러면 음악가로 돈을 벌지 못하고 있는 시기에 음악가로 일할 조건이 돼 주기도 한다. 운이 좋아 세 가지 일 사이 연동이 무리 없이 잘 됐고, 시스템이 잘 작동하는 것 같다. 전혀 의도하지 않고 호기심에 따라 재미있는 것을 하다보니 인생의 포트폴리오가 생긴 것 같기도 하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드라마 「모범택시」 등을 비롯해 빌런 연기를 하다가 그림을 그리려 할 때 코드 전환은 어떻게 하는가.
“아무래도 영향이 없을 순 없을 것이다. 우울하거나 화가 난 모드를 최대한 제거하고 붓질을 하려고 노력한다. 「모범택시」에 출연할 때엔 몸이 아팠다. 아무리 연기가 가짜라지만, 나쁜 말을 많이 하고 사람을 계속 때리는 역할이어서 그런지 몸이 진짜로 아프더라. 그런데 작업실에 가서 붓질하고 있으면 전환이 돼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훈련이 많이 돼 있어 자동으로 전환이 잘 되는 것 같다.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어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AI 시대, 미술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AI와 얘기한 지 꽤 된다. 최근 『듀얼 브레인』이라는 책을 재밌게 읽었는데, 저 혼자 작업할 때와 AI와 함께 할 때 뭐가 다른지를 계속 탐구해 보고 있다. AI가 절대 못하는 것을 해야지, 하는 생각은 아니다. 지금 ‘스케치북’이라는 앱에 조금 그려보고 있는데, 생성형 AI ‘제미나이’에게 보여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스스로 묻고 답하는 것들을 지금은 AI랑 묻고 이야기한다.”
촬영을 하거나 작업실에 가 있는 것을 제외하면, 백현진은 대체로 집에 있다. 최근 21년간 살았던 서울 연남동에서 망원동으로 이사했다. 집 근처 구민 운동장에서 조깅을 하기도 하겠지만, 그냥 누워 있는 것을 좋아한다. 때론 멍 때리기도 하고 생각 사이만 분주히 왔다갔다 할 것이다. 아마 CCTV로 보면, 우와 저렇게 게으른 인간이었나, 라는 말이 터져 나올지도.
그것은 아티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배우로서 전시장과 무대, 스크린을 종횡무진 내달리기 위한 맹렬한 ‘멈춤’일 것이다. 나무 같고 숲 같은 곳에서 격렬하게 누워 있는 사람처럼. 그리하여 어느 봄쯤 르네상스인 백현진은 기어코 다시 붓을 들 것이다. 이미 캔버스는 주문해 놓았고, 지금은 작업실을 청소했으니까. 알 수 없는 호기심과 자명한 진리, 새로운 재미와 오랜 감동이 벌써 그림 사이에서 기웃거리고 있다.
“오래 훈련이 돼서 그런지, 배우가 회장 옷을 입으면 회장 무드로 전환이 되는 것처럼,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작업실에서 옷을 바꿔 입으면 미술가로 전환되는 것 같습니다. 음악 작업실에 가서 악기를 만지면 음악가로 전환이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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