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했던 추한찬의 과거 모습이 재조명되면서 그의 갑작스러운 은퇴 이유와 현재 근황이 공개됐다.
지난 12일 유튜브 채널 ‘특종세상 - 그때 그 사람’에는 ‘고시원에 살고 있는 비운의 농구선수 추한찬?’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게재됐다.
영상에서 추한찬은 한 고시원의 단칸방에 살고 있었다. 고시원에서 삼시 세끼 제공되는 밥을 먹으며 생활하는 그는 약 25만원의 월세로 숙식을 해결했다.
205cm의 큰 키에 근성 있는 성격인 추한찬은 코치의 적극적인 권유로 농구를 시작하게 됐었다. 그 후로 본격적으로 농구를 했던 추한찬은 국가대표 농구선수가 되었다. 그는 “제가 당시에는 인물도 괜찮았고 말도 잘하고 운동도 잘해서 팬들이 와서 꽃도 주고 앨범도 갖다 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졸업할 때까지 했던 농구는 폐가 아파 수술을 받으면서 그만두어야 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기흉으로 폐 수술을 하게 된 추한찬은 생계유지를 위해 잠시 농구를 내려놓게 되었다. 술을 마시며 방황했고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했지만 그때부터 공장 생활을 했다고 밝혔다.
추한찬은 “수원에서 전자 제품을 만드는 일부터 나이 들어서는 막노동도 했고 별의별 일을 다 해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사고가 나 손가락 신경이 거의 죽어서 다시 코트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고 전했다.
현재 추한찬은 대동맥 박리증을 앓고 있기도 했는데, 그가 앓고 있는 ‘마르판 증후군’이 유전성 대동맥 질환이라는 질환군에서 대표적인 질환이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동맥 박리나 파열이 쉽게 생길 수 있는 위험을 떠안고 있었다. 그가 코트를 떠난 이유도 ‘마르판 증후군’ 때문이었지만, 당시에는 위험한 병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는 “추한찬 하면 허재랑 같이 옛날에 이름이 많이 나왔었는데 제가 못나다 보니 동료들 보기에 미안해서 도피하게 됐다. 기피증이 있었다”고 밝혔다.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던 폐지 줍는 일도 하지 못하고 약물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추한찬은 “운동을 못 했던 그게 한이 많아서 방황하던 때를 생각하면 마음도 아프고 인생을 왜 그렇게 살았는지 뒤늦은 후회를 많이 느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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