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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아빠는 방임 유죄, 열여섯 아들은 아직 그 집에 있다 [탐사기획-사각의 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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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2팀=백준무·이예림·최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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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다 컸다는 말

방치된 청소년… 책임 잊은 어른들

부모 이혼 뒤 혼자 남겨진 민준이
그룹홈 전전하다 홀로살기 택해
엄마 아빠의 부재, 허기진 삶…
아무도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엄마가 전화를 차단했다. 수화기 너머 벌써 세 번째 수신거부음이 흘러나왔다. 회색 교복을 입은 민준이 마른 침을 삼켰다. 거미줄처럼 금 간 휴대전화 액정 틈을 엄지손톱으로 쓸어내리며 고개를 돌렸다.

 

울산 태화강을 따라 불어오는 늦겨울 찬바람이 버스 차창을 스쳤다. 흐린 유리에 앞머리가 눈썹까지 내려온 열여섯살 소년의 모습이 비쳤다. 이날 민준이 다니는 공업고등학교는 단축수업으로 오후 1시쯤 파했다. 반 친구 두 명과 시내 아트박스에서 샤프심을 사고 헤어진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위 사진은 지난달 27일 취재팀이 찾은 청소년 방임 피해 가정의 모습. 천장에는 갈색 얼룩이 크게 퍼져 있고, 이불과 옷가지가 뒤엉켜 방 곳곳을 덮고 있다. 꽃샘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3월 말, 선풍기가 방 한편에 놓여 있다. 유희태 기자
위 사진은 지난달 27일 취재팀이 찾은 청소년 방임 피해 가정의 모습. 천장에는 갈색 얼룩이 크게 퍼져 있고, 이불과 옷가지가 뒤엉켜 방 곳곳을 덮고 있다. 꽃샘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3월 말, 선풍기가 방 한편에 놓여 있다. 유희태 기자

180㎝가 훌쩍 넘는 민준은 교복 위로 검은색 패딩을 걸쳤다. 4년째 겨울마다 이것만 꺼내 입었다. 그 옷을 물려준 누나와, 누나와 함께 사는 엄마는 연락 두절이다. 카카오톡 대화창엔 숫자 1이 두 달 넘게 사라지지 않았다.

민준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따로 사는 엄마에게 전화했다. 물이 없었다. 몸집 큰 소년은 하루에 1.5ℓ 생수 두 병을 벌컥벌컥 마시곤 했다. 집에 남은 건 단 한 모금뿐. 물 살 돈을 좀 달라고 말하려 했다.

친권자이자 양육자인 아빠에겐 차마 돈 얘기를 못 꺼냈다. 탈북민 아빠는 “요즘 세상에는 애들 때리지도 못하고 어떡하냐”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아르바이트라도 하겠다고 하면 “성인이 되고 하라”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아빠는 8년째 주말 하루만 집에 온다. 그마저도 일주일 치 용돈 5만원과 생필품을 전해주려 잠깐 들르는 정도다. 그는 민준을 방임한 탓에 처벌을 받았다. 2023년 아동복지법 위반(아동유기·방임) 혐의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지만 나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민준은 여전히 혼자다.

걸어서 불과 5분 거리인 구청 청소년안전망팀 사례관리사는 3년 전 없어졌다. 존폐 위기에 놓였던 여성가족부가 2024년도 청소년안전망팀 예산 16억5000만원을 전액 삭감하면서 팀 자체가 사라진 탓이다. 이들은 청소년의 가정을 직접 찾아가 일상을 살핀 뒤 연계한 서비스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살피는 유일한 공적 조직이었다.

이젠 구청 아동보호전담요원만이 한 달에 한 번 민준의 안부를 확인한다. 과거에는 청소년안전망팀에 전달하면 상황에 맞는 서비스가 연결됐지만, 사례관리사가 없어진 뒤로는 의뢰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민준이를 관리하는 컨트롤타워가 없어졌다”고 했다.

여가부 후신인 성평등가족부는 한때 전국 22개 지자체에서 운영되던 청소년안전망팀이 현재 10곳만 남아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성평등부 관계자는 “종료된 사업”이라며 “저희가 파악하고 있어야 할 사항은 아니다”고 답했다.

 

닿지 않는 전화를 뒤로하고 민준은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했다. 물오른 동백나무 한 그루가 선 306동 입구를 지나 곧바로 계단을 올랐다. 30년 된 주공아파트의 낡은 엘리베이터는 자주 삐거덕거려 안 타는 편이 나았다. 날숨에 두 계단씩, 총 마흔개를 성큼성큼 밟으니 금방 3층 집 현관문에 다다랐다.

민준은 바지 주머니를 더듬어 열쇠를 집어 들었다. 길게 찢은 빨간색 천을 묶어 만든 열쇠고리들이 주렁주렁 늘어졌다. 옆집과 달리 민준이네엔 도어락과 인터폰이 없었다. 아파트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그대로 현관문 한가운데 열쇠 구멍과 초인종이 놓였다. 미닫이 방충문 틀 위쪽이 키보다 낮아 민준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듯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인사를 받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교복을 대충 벗어던진 민준이 부리나케 화장실로 뛰어갔다. 중앙난방 아파트라 따뜻한 물이 나오는 시간은 오후 4시30분부터 5시50분까지, 80분뿐이었다.

 

간신히 김을 내뿜는 화장실에서 나와 두 발짝 거리 안방 이부자리에 누웠다. 얇은 요 한장이 두 평 남짓한 방을 가득 메웠다. 그 위로 어제 먹은 아이스크림 나무막대가 버려져 있었다.

빈 방에 들어서는 민준의 뒷모습.
빈 방에 들어서는 민준의 뒷모습.

이 방에 있는 아빠의 물건은 노란 액체가 담긴 담금주병뿐이다. 엄마 물건을 찾아볼 수 없게 된 건 13년 전부터다. 부모는 민준이 세 살 때 이혼했다. 아빠는 엄마가 다단계에 빠졌던 게 화근이라고 했다.

 

엄마도 이북 출신이다. 지금은 서울 대림동 방 두 개짜리 집에서 민준과 네 살 터울인 재수생 누나를 키우고 있다. 지난 겨울방학 때 민준은 일주일 정도 엄마를 만나러 갔다. 오랜만에 이마트에서 장을 보고 단둘이 밥을 먹었다. 민준은 어쩌다 다단계 얘기를 꺼냈다. “왜 그랬냐”는 물음에 엄마는 “남들 다 돈 버는데 나 혼자 놀고 있느냐”고 답했다. 냉랭한 기류는 민준이 울산에 돌아와서도 계속됐다. 엄마 목소리를 점점 듣기 어려워졌다.

 

“가족이 어쩌다가 이렇게 파탄이 났는지 전 모르겠어요.” 민준은 핸드폰을 두 손으로 감싼 채 군데군데 튼 엄지손가락을 꽉 맞잡았다. 입술이 엎어놓은 반달 모양으로 변했다.

‘보온 80시간’ 안내문구가 떠 있는 전기밥솥
‘보온 80시간’ 안내문구가 떠 있는 전기밥솥

한 시간쯤 잤을까. 허기짐에 깬 민준은 방 맞은편 부엌으로 가 전기밥솥을 열었다. 80시간째 보온 중이라는 안내 문구가 떠 있었다. 사흘 넘게 묵은 밥이었다. 삐쩍 마른 흰 쌀밥을 크게 한 숟가락 푸고 마지막 남은 물 한 모금을 부었다. 싱크대 아래 수납장에서 꺼낸 진간장을 대충 부어 간장밥을 만들었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이렇게 먹는다고 했다.

 

친구들이 학원에서 돌아오는 8시, 민준이 바빠졌다. 민준이 가장 좋아하는 온라인 게임 발로란트의 승급전이 있는 날이었다. 책상도 의자도 없는 방에서 민준은 이불 위에 엎드린 채 베개맡 노트북을 펼쳤다. 자세 한 번 고치지 않고 네 시간 넘게 총을 쏘다 보니 자정이 훌쩍 넘었다. 헤드셋 너머 친구들의 목소리가 하나둘 사라지고 찾아온 적막 속에서 민준은 잠들었다.

 

아빠가 떠나고 민준이 처음부터 혼자였던 건 아니다. 집에서 70㎞ 떨어진 포항 건설 현장에서 숙식했던 아빠를 대신해 가족 중 제일 먼저 탈북한 큰아빠가 아홉살 민준을 돌봤다. 그러나 상에 올라오는 건 밥에 김치뿐일 만큼 형편이 어려웠다. 민준이 아프다고 하면 같이 병원에 가는 대신 “학교는 꼭 가야 한다”는 말만 돌아왔다. 큰아빠는 1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어른 없이 초등학교 3학년이 된 민준은 겨울에도 반팔만 입고 다녔다. 수업을 빼고 안방에서 25인치 TV 화면만 멍하니 바라보는 날이 늘었다. 이상하게 여긴 학교 선생님들이 집에 찾아와 아빠를 방임 혐의로 신고했다.

 

그 뒤 민준은 아동일시보호시설에 맡겨졌다. 다른 시설에 자리가 날 때까지 머무는 곳이었다. 방이 두 개 있는 아파트형 시설에는 선생님 두 명과 민준뿐이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한 선생님은 밤마다 민준의 손을 붙잡고 기도했다. “민준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해주소서.” 민준은 그곳에서 보낸 2년을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회상했다.

 

고학년이 된 민준은 공동생활가정(그룹홈)으로 옮겨졌다. 그룹홈에는 민준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곳에서 같이 지내던 형은 중학생이 된 민준을 성인 팔 길이에 맞먹는 목검으로 때렸다. 민준은 그룹홈 선생님들이 형을 제대로 나무라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초등학생 때 손을 잡아줬던 어른들과는 달랐다고 느꼈다.

 

민준은 그룹홈을 뛰쳐나왔다. ‘탈출’이라고 표현했다. 나오면서 시설에서 관리해 줬던 통장도 챙겼다. 2년여간 엄마가 가끔 넣어준 용돈이 40만원쯤 쌓여 있었다. 민준은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뽑아 초등학교 동창 지훈이에게 연락했다.

 

지훈은 ‘노는 애’로 불렸다. 민준은 지훈이가 가출하면 아무도 오지 않는 자신의 집에서 재워줬다. 밥을 걸렀다고 하면 치킨을 시켜줬다. 지훈은 민준에게 담배를 건넸고, 자기가 아는 선배들을 소개해 줬다. 한 선배는 ‘겉담’하는 놈은 사람 취급 안 한다고 겁줬다. 또 다른 선배는 민준에게 불법 도박 사이트 링크를 보냈다. 민준이 충전한 금액의 일부가 추천인인 선배에게 돌아가는 구조였다. 통장에서 뺀 돈 대부분이 그렇게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민준이 다른 그룹홈으로 전원가고 통장 잔고마저 바닥나자 지훈의 태도가 달라졌다. 벌레 보듯 했다고 민준은 말했다. 갑자기 왜 그러냐고 묻는 민준에게 “애비가 제대로 돌봐주지도 않는 새끼가 한번 놀아주니까 왜 나대냐”고 했다.

 

“그냥 죽는 게 맞겠구나.” 민준은 자살까지 생각했다. 진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 학교 상담실(위클래스)을 찾아갔다. 처음으로 어른에게 속마음을 토로했다. 하지만 방문이 잦아질수록 친절했던 상담 선생님이 시큰둥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소년의 원망은 선생님에게 향했다.

 

두 번째 그룹홈 원장은 민준이가 학교 선생님과 싸웠다는 걸 뒤늦게 알고 크게 혼냈다. 민준은 억울했다. 안 그래도 밤 9시쯤이면 핸드폰을 제출해야 하는 이곳 생활이 답답했던 참이었다. 다 컸다고 말하는 어른들에게 집에서 혼자 살겠다고 선언했다. 구청은 사례 회의를 거친 뒤 “애가 이렇게 확고하니 나가게 해주는 게 맞는 것 같다”고 결론지었다.

 

민준의 이른 자취가 시작됐다. 중학교 3학년 1학기가 끝날 무렵이었다. 아빠가 주말마저 오지 않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일주일 치 용돈 5만원으로 매점 가고, 버스를 타고, 세제를 사면 남는 돈이 없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굶는 횟수가 점차 많아졌다. 초등학생 땐 방학 중 급식 프로그램이 있었다.

 

중학생 민준 앞에는 한 달에 한 번 구청에서 보내주는 흰 우유 200㎖ 24팩 묶음과 쌀 10㎏뿐이었다. 반찬 없이 물에 밥 말아먹기를 반복했다.

 

집 바로 옆에 있는 지역아동센터에 가면 끼니 해결이 가능했다. 방과후 초중고생들에게 급식과 학습, 정서 지원을 제공하는 곳이다. 하지만 민준은 제 발로 그곳을 찾아가지 않았다. 열에 아홉은 초등학생이었다. 민준은 “아무래도 센터에 가는 게 창피하다”고 했다.

 

민준만의 일이 아니었다. 아동권리보장원의 2023년 전국 지역아동센터 통계조사에 따르면 이용 아동 10만4033명 중 중학생 비율은 16.6%였다. 센터를 다닌 적 없던 중학생이 새로 문을 두드리는 일은 더 드물었다. 복지부에 직접 확인해 보니 같은 해 전체 이용 아동 중 중학생 신규 입소자는 3.4%뿐이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센터는 초등학교 방과후 돌봄이 위주”라며 “초등학생이 들어와서 쭉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민준이 또래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성평등부의 청소년안전망 서비스다. 전국 240개 청소년상담복지센터를 거점으로 위기 청소년에게 전화·문자·카카오톡 상담을 제공한다. 그러나 민준의 핸드폰은 온종일 방해금지 모드다. 전화를 걸면 신호음 없이 끊겼다. 민준에겐 집 문을 두들겨 밥솥과 냉장고를 자주 살펴보는 사람이 필요했다.

 

소년은 또다시 도박에 손댔다. 밥 먹을 돈이 필요했다. 마지막 남은 용돈 2만 2000원을 불법 도박 사이트에 사용했다. 벼랑 끝에 몰린 소년이 선택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민준은 그 이후로 도박을 끊었다고 했다. 소년의 위태로운 다짐이 지켜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민준과 1년6개월 함께 산 그룹홈 원장은 민준을 “시설과 맞지 않는 아이”로 기억했다. 민준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시간이 갈수록 민준이 시설 규칙과 훈육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학교에서 사고 치고 돌아오면 원장은 다그치고 민준이 욕설로 맞받아치는 날이 잦아졌다. 민준을 감당하지 못해 퇴사한 선생님도 있었다.

 

갈등이 반복되자 민준은 울며불며 집에 보내 달라고 애원했다. 민준은 “아무 데도 가기 싫다. 그냥 이런 데 자체가 싫으니까 제발 나 집에 좀 보내 달라”고 말했다. 미성년자인 민준을 혼자 내버려둘 순 없어 구청과 함께 아빠를 설득했다. 아빠는 원장에게 “나는 모르겠으니까 너희가 키우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퇴소한 민준이 곧잘 학교를 빠진다는 이야기를 구청 주무관에게 들었다. 민준의 중학교 학생부장은 “민준이가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민준은 졸업식에 아빠가 오지 않아 서운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빨리 돈을 벌어 아빠의 상한 이부터 고쳐주고 싶다고 했다.

 

고등학생 민준의 머리맡 노트북 옆엔 자명종 알람시계가 있었다. 학교가 멀어 아침 셔틀버스를 타려면 오전 6시30분에는 일어나야 했다. 하지만 매일 아침 울리는 자명종 소리에 민준이 눈을 떴는지 확인하는 사람은 없었다.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탐사보도2팀=백준무·이예림·최우석 기자

사진: 최상수 기자, 편집: 이대용 기자

미술: 손성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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