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면 스트레스 풀려”…‘말랑이’에 빠진 20·30
전문가 “청년층의 불안·스트레스 반영된 현상”
“1월까지만 해도 장사가 안 돼서 문을 닫아야 하나 고민했어요. 그런데 한 달 전부터 20대 30대 손님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졌어요.”
지난달 29일 오전 11시쯤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완구 시장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는 이월용(70)씨는 최근 허리 시술을 받아 복대를 찬 채 계산대와 진열대를 오가고 있었다. 이씨는 “원래 허리가 안 좋았는데 최근 바빠지면서 더 안 좋아졌다”고 멋쩍게 웃으며 “주말에는 사람이 밀려다닐 정도로 인파가 붐빈다”고 했다. 평일이어서 상대적으로 한산할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 달리, 이날 오전부터 가게 안은 ‘말랑이’를 구경하거나 만져보려는 20~30대 손님들로 북적였다.
문구·완구 거리에서 24년째 가게를 지켜온 80대 김모씨도 “예전엔 장사를 계속해야 하나 열 번도 넘게 고민했었다”며 “다시 사람이 많아져서 좋으면서도 유행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창신동 문구·완구 시장 일대가 ‘말랑이 성지’로 떠오르면서 한동안 침체됐던 시장에도 다시 활기가 돌고 있다. 20~30대 사이에서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인기인 ‘말랑이’는 손으로 주무르며 촉감을 즐기는 장난감이다.
이날 시장 곳곳에서는 연필과 볼펜, 공책 대신 형형색색의 ‘말랑이’가 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학생과 직장인, 외국인 관광객들은 ‘말랑이’를 손으로 눌러보며 촉감을 확인했고, 일부 손님들은 길을 멈춰 선 채 한참 동안 제품을 만져보기도 했다. 상인들은 창고에서 재고 상자를 연신 꺼내오며 “주말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몰린다”고 입을 모았다.
초등학생들이 주된 손님이었던 완구거리에는 이제 20대 대학생들도 쉽게 눈에 띈다.
문구·완구거리를 방문하기 위해 이날 오전 8시50분 경기 가평에서 출발했다는 대학생 장은진(21)씨는 “과제 하기 싫을 때마다 말랑이를 만진다”며 “촉감이 좋아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웃어 보였다. 중간고사를 마친 뒤 친구와 함께 시장에 방문했다는 대학생 권모(18)씨도 “인스타그램에서 ‘버터 말랑이’나 ‘로제 스트레스볼’ 영상이 많이 떠 직접 보러 왔다”고 말했다.
‘버터 말랑이’는 버터 모양의 노란색 장난감이며, ‘로제 스트레스볼’은 그룹 블랙핑크 멤버 로제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사용한다고 알려지며 화제가 된 제품이다.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시장을 찾은 직장인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직장 동료 5명과 함께 시장을 찾은 서비스업 종사자 서모(26)씨는 “직장 동료들과 일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려고 왔다”며 활짝 웃었다. 디자이너 서민경(30)씨도 “친구들 선물까지 하려고 4만원어치를 샀다”며 “만지고 있으면 생각이 비워지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의료계에서 종사하는 윤다이(33)씨는 “말랑이 뿐만 아니라 키캡 같은 제품도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자주 산다”고 말했다.
SNS를 통해 유행을 접하고 호기심에 시장을 찾은 대학생들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말랑이’를 찾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시장 곳곳에서 발견됐다.
시장 일대가 SNS상에서 화제가 되면서 유동인구가 늘자 인근 상권도 활기를 되찾고 있다.
문구 거리 인근에서 된장찌개 전문점을 운영하는 나경운(48)씨는 “말랑이 사러 오는 젊은 손님이 많아지면서 20대 손님이 늘었다”며 “한 달 전보다 매출이 10~20% 정도 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문구업계가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문구점의 인기는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문구업계는 학령인구 감소와 소비 패턴 변화 여파로 부진을 겪고 있다.
지난달 23일 공시에 따르면 모나미의 지난해 문구류 수출·매출은 전년도 대비 4.31% 감소했다. 모닝글로리도 2024년 7월1일부터 지난해 6월30일까지 매출액이 전년도 같은 기간 대비 407억1395만원에서 381억3384만원으로 줄었다.
‘말랑이’ 열풍이 어려운 문구업계를 도울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상권 회복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전망도 일부에서 나온다.
전문가들은 청년층의 불안과 스트레스가 ‘말랑이’와 같은 장난감 소비 확산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이은하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청년들이 어린 시절 즐기던 장난감을 갖고 놀면서 어른으로서 감당해야 할 무거운 책임감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이라며 “동대문 문구 거리가 청년들에게는 현실을 잠시 잊게 하는 ‘보물창고’처럼 소비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말랑이’ 유행 현상은) 과거보다 청년층의 불안과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소비를 통해 정서적 안정감을 얻는다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진단했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일본 차의 잇따른 脫한국](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4/30/128/20260430521009.jpg
)
![[기자가만난세상] 한·미동맹 ‘정원’ 국익 중심 재설계를](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3/30/128/20260330519236.jpg
)
![[삶과문화] 시인을 사랑해도 될까](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2/19/128/20260219518190.jpg
)
![[박일호의미술여행] 새로움을 향한 고뇌의 얼굴](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4/30/128/20260430520922.jpg
)






![[포토] 김태리 '완벽한 미모'](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4/29/300/20260429509497.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