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사상 초유의 전직 대법원장 구속의 배경에는 이른바 ‘상고법원’이 있다. 2011년 취임한 양승태 대법원장은 대법원의 사건 적체 해소와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 경감을 위해 상고법원 도입을 추진했다. 이는 상고심(3심) 심리 체계를 이원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법원은 정말 중요한 사건 3심만 맡고, 그렇지 않은 사건들은 대법원 밑에 신설되는 상고법원이 처리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당장 ‘법원은 최고 법원인 대법원과 각급 법원으로 조직된다’고 규정한 헌법 101조 2항과 충돌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래도 양 대법원장은 휘하 법원행정처 간부들을 총동원해 청와대, 국회, 정부 등을 상대로 상고법원 설치를 위한 전방위 입법 로비를 벌이게 했다가 그만 사달이 나고 말았다.
우리 대법원에 ‘심리불속행’이라는 제도가 있다. 이는 ‘대법원의 상고심 재판을 효율화한다’는 명분 아래 1994년 도입됐다. 대법원이 보기에 상고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사건들은 더 이상 심리하지 않고 그냥 기각하는 것이다. 판결문에는 “상고 이유에 관한 주장은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에 해당해 이유 없다. 법에 입각해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는 문구만 기재된다. 패소가 확정된 사건 당사자 입장에서는 판결 이유조차 알 수 없으니 그저 답답할 따름이다. 대법원이 접수하는 상고심 사건 약 70%가 이렇게 본안 심리 없이 심리불속행으로 종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제약사 녹십자는 과거 백신 입찰 담합 사건에 연루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20억원 부과 조치를 받고 검찰에 고발도 당했다. 수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으나 최종적으로 무죄가 확정됐다. 그런데 녹십자가 공정위를 상대로 “과징금 부과를 취소해달라”며 법원에 낸 소송 상고심은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으로 기각됐다. 녹십자 입장에선 형사재판과 행정재판의 결과가 정반대로 나온 셈이다. 지난 3월 법원 확정 판결도 헌법소원 심판 대상으로 삼도록 한 일명 ‘재판소원’ 제도가 시행되자 녹십자는 “행정소송에 대한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 당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최근 헌재가 해당 사건을 재판관 9명이 전원이 참여하는 평의(評議)에 회부함에 따라 이는 ‘재판소원 1호’로 기록됐다. 심리불속행은 오랫동안 ‘10초 재판’으로 불리며 사법부의 약점으로 꼽혀 왔다. 모두 전직 판사인 현직 재판관들이 이 점을 모를 리 없다. 특히 대법관 출신인 김상환 헌재소장은 법원행정처장으로 일하던 2023년 1월 언론 인터뷰에서 “심리불속행은 대법원이 판결 이유를 기재하지 않아 제대로 심리, 검토하지 않았다는 오해와 비판을 받아왔다”며 “상고 이유가 있는데도 상고심 심리가 이뤄지지 않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할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소원제 시행과 동시에 헌재가 대법원의 아킬레스건을 겨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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