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운동의 시작은 1970년 4월2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 박정희 대통령은 부산에서 가뭄 대책 지방장관 회의를 주재하며 ‘새마을 가꾸기 운동’을 제안했다. 실은 박 대통령 본인이 방방곡곡을 다니며 몇몇 농촌 지역에서 접한 변화의 기운이 단초가 됐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주민들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함께 마을을 가꾸는 모습에 속으로 ‘바로 이거야’ 싶었던 것이다. 그해 10월 정부는 전국 3만3000여개 마을에 시멘트 335포대씩을 지급했다. 그러면서 ‘개별적으로 쓰지 말고 반드시 마을 공동 사업에 이용하되 사업 내용은 주민들이 합의해서 정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지역개발담당관에게 새마을 운동 관련 업무가 맡겨졌다. 나중에는 지역개발담당관이란 관직명도 아예 ‘새마을담당관’으로 바뀌었다. 초대 새마을담당관은 다름 아닌 고건 전 국무총리였다. 그는 훗날 회고록에서 “새마을 운동은 빈곤 탈출에 대한 열망에 불을 붙였다”며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농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술회했다. 고 전 총리의 책은 ‘새마을 운동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란 제목의 챕터를 따로 두고 무려 6페이지에 걸쳐 ‘관제 운동’, ‘획일화된 농촌 개발 조장’ 등 새마을 운동을 겨냥한 후세의 비판을 구체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1980년대 들어 새마을운동중앙본부(현 새마을운동중앙회)가 생겨났다.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가 1981∼1988년 이 새마을본부의 사무총장, 회장, 명예회장을 차례로 지냈다. 민주화 이후인 1988년 들어 5공 청산 작업이 본격화하며 전씨의 부정부패 행각이 드러났다. ‘새마을 비리’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지경이었다. 2017년 초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 농단 사태로 파면을 당하고 그해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분신과도 같고 5공 시절엔 비리의 온상이었던 새마을 운동이 새 정부에게는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개발도상국에 새마을 운동을 전파하기 위한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의 신규 추진을 중단했다. 기존 사업 이름에서도 ‘새마을’을 뺐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4일 경기 성남 새마을운동중앙회를 방문했다. 진보 진영의 대통령이 새마을중앙회를 직접 찾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눈길을 끌었다. 이 대통령은 새마을 운동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위해 시작했고, 상당히 큰 성과를 거뒀던 운동”이라고 후한 평가를 내렸다. 새마을운동 관계자들을 향해선 “이념과 가치도 중요하지만, 공적 영역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국민 통합을 주문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와 야, 진보와 보수 간 대립·갈등이 극에 달한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화합’과 ‘포용’이다. 이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 챙기기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더욱 심화한 통합 노력으로 이어지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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