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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윤의어느날] 그들이 두고 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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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더워지면서 길에서 자주 마주치게 된 것들이 있다. 누군가 벗어두고 간 옷가지들이다. 놀이터와 인라인스케이트장, 배드민턴장 인근을 지나다 보면 얇은 바람막이 점퍼나 카디건 같은 것들이 놓여 있다. 누가 봐도 어린아이 것이 분명한 아주 작은 옷들. 신기한 것은 그 옷가지들이 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는 형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옷은 철봉 위나 벤치 등받이, 마땅한 기물이 없다면 눈높이의 나뭇가지 같은 곳에 잘 펼쳐진 형태로 걸려 있다. 얼마 전에는 자전거를 타고 내달리던 아이가 떨어뜨린 점퍼를 어떤 아주머니가 주워 탈탈 털더니, 허리께 높이의 영산홍 가지 위에 잘 널어두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여기 잘 보이게 두었으니 꼭 찾아가렴, 하는 마음이 움직임 하나하나에 배어 있었다.

내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번은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내 앞으로 툭 떨어지는 신발을 보았다. 아주머니가 어린 여자아이를 등에 업은 채 하차하는 중이었는데, 잠든 아이의 발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던 신발 하나가 떨어진 것이었다. 아주머니를 불러세울 겨를도 없이 문이 닫혔고 이내 버스가 출발했다. 나는 신발을 주워 들고 서둘러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마을버스 특성상 정류장 간격이 넓지 않았지만 이미 사라진 아주머니를 찾아내긴 어려웠다. 손바닥보다 작은 신발은 너무 얇고 오염되기 쉬운 천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맑은 분홍색의 새것이었다. 제대로 땅을 밟아본 적 없는 고무밑창이 새하얗고 깨끗했다. 잠깐 바닥에만 떨어져도 엉망이 될 것 같아 나는 그것을 들고 정류장과 연결되어 있는 아파트 단지 관리실을 찾아갔다. 분실물 등록을 마친 뒤에는 잘 들어가지 않던 동네 커뮤니티에 들어가 신발 사진과 함께 관리실 위치를 알리는 게시글도 작성했다. 이리저리 오가느라 시간과 체력을 쓰긴 했지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메시지를 받았다. ‘선물 받은 뒤 처음 신겨본 신발이었는데 잃어버려서 정말 속상하던 참이었어요.’ 아주머니는 게시글을 보자마자 관리실로 뛰어가 신발을 찾아왔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러니까 나는, 굉장히 뿌듯해졌다. 사실은 아주머니를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땀을 줄줄 흘렸고, 줍지 말 걸 그랬다는 작은 후회와 함께 관리실을 찾아갈 때는 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고, 게시글을 올리는 동안에는 그냥 적당히 바닥에 내려둘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주머니가 보내온 사진, 깨끗하고 반듯한 신발 두 짝을 신고 있는 아이의 발 사진을 보고 있자니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가 손바닥 하나만큼은 이전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길 위에 놓인 물건을 볼 때, 그것을 잘 찾아갈 수 있도록 누군가가 손댄 흔적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 사소한 기억을 떠올린다. 별것 아닌 행동이 기분 좋은 결과로 이어진 기억을 말이다. 어쩌면 길 위에 사람들이 두고 간 건 물건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타인에게 상냥해질 수 있는 기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크고 작은 기회들이 길 위에 툭툭 떨어져 있다.

 

안보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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