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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현재 넘나드는 순애보…“뻔한 연기는 피하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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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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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멋진 신세계’ 주연 허남준

‘재벌 3세’ 완벽 소화… 세계인에 눈도장
창헌대군 연기 할 땐 감정 최대한 절제
“예측불가 시한폭탄 같은 긴장 주고파”
차기작 tvN ‘고래별’선 독립운동가 변신
“연기로 조금 과하게 하긴 했지만, (그로 인해) 제 안에 있던 지질함을 더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작가님이 신세계는 ‘하남자 중에 상남자’라고 표현하셨거든요. 그런 모습은 특히 신서리에게 ‘진짜 후회할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에 잘 드러나요. 강한 척하지만 어딘가 질척거리는 느낌이죠.”


최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허남준은 SBS 금토드라마 ‘멋진 신세계’에서 자신이 연기한 차세계란 인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 20일 종영한 ‘멋진 신세계’는 초반까지만 해도 여자 주인공 신서리 역의 임지연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넷플릭스 ‘더 글로리’, JTBC ‘옥씨부인전’ 등을 통해 묵직한 캐릭터를 소화해 온 임지연이 이 작품에서는 이른바 ‘망가지는 역할’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현 役, 차세계 役(왼쪽부터).
이현 役, 차세계 役(왼쪽부터).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시선은 점차 상대역 허남준에게도 향했다. 2019년 영화 ‘첫잔처럼’으로 데뷔한 그는 여러 작품에 출연해 왔지만, 임지연만큼 큰 화제성을 얻지는 못했다. 넷플릭스 ‘스위트홈 시즌2’로 서서히 눈도장을 찍었고, ENA ‘유어 아너’에서 남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인물이지만 여동생 앞에서는 누구보다 따뜻한 오빠 김상혁을 연기하며 연기력을 인정받는 데 그쳤다. 그런 그가 ‘멋진 신세계’에서 ‘악질 재벌’ 차세계를 맡으며 비로소 대중에게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인기를 실감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주저 없이 “네”라고 웃었다. “친구들이 제 작품을 보면서 오글거린다고 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뭐가 좋다는 말은 잘 안 해요. 그냥 ‘드라마가 재밌다’고 하는데, 그게 제일 기분 좋은 칭찬이더라고요.”

‘멋진 신세계’는 희대의 조선 악녀 강단심의 영혼이 빙의돼 악녀로 변한 무명 배우 신서리(임지연)와 ‘자본주의의 괴물’이라 불리는 재벌 3세 차세계(허남준)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다. ENA ‘유어 아너’로 이름을 알리긴 했지만 조연에 머물렀던 그가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남자 주인공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허남준은 그런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차세계라는 인물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만들어낼 것인가”에 집중했다고 했다.

“차세계는 어릴 때부터 사람을 믿지 않는 법, 약점을 숨기는 법만 배운 사람이에요. 밖에서는 주름 하나 없는 수트를 입고 완벽한 모습을 유지하지만, 집에만 들어오면 목이 늘어난 반팔 티셔츠를 입고 편하게 늘어지는 인물이죠. 그런 그가 신서리를 만나 생애 처음 서툰 사랑을 시작하면서 꽁꽁 감춰뒀던 지질한 본성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해요.”

그는 “신서리 앞에서만 보이는 귀엽고 바보 같은 모습을 살리는 데 특히 신경을 많이 썼다”며 “반대로 일할 때에는 차갑고 프로페셔널하게 보이도록 톤을 확실히 나누려 했다”고 설명했다. 조선시대 인물인 창헌대군 이현을 연기할 때는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이현은 시대적 배경과 지위가 있는 캐릭터라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려 했어요. 불안함이 겉으로 드러나선 안 되는 사람이라 외적으로는 늘 단단해 보이도록 신경 썼죠.”

차세계는 냉정한 사업가와 서툰 남자친구라는 상반된 얼굴을 동시에 가진 인물이다. 이를 연기로 입체적으로 풀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였다. 특히 감정이 폭발하는 후반부 장면을 앞두고는 적잖은 압박도 느꼈다. “시청자에게 어색하지 않으려면 연기하는 제가 그 상황을 먼저 완전히 믿어야 해요. ‘여기가 중요한 신이다’라는 생각에 혼자 너무 오래 끙끙대다 보니 현장에서는 오히려 힘이 들어갈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막상 힘을 좀 빼고 상황을 가볍게 받아들이면서 접근했을 때 무거운 분위기가 더 자연스럽게 살아나는 걸 느꼈어요.”

‘멋진 신세계’를 통해 허남준은 글로벌 시청자에게도 얼굴을 알렸다. 인기를 체감한다면서도 그는 “내 직업의 본질은 결국 연기를 잘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앞으로 살아가다 보면 행복한 날도, 슬픈 날도 많겠죠. 머리 모양처럼 제 뜻대로 안 되는 겉껍데기는 과감히 내려놓고, 제가 가진 한계 안에서 최선을 끌어내는 데 집중하고 싶어요.”

허남준은 “예상할 수 있는 뻔한 연기는 피하고 싶다”며 “빌런을 연기할 때도 ‘나 나쁜 놈이야’라고 소리치는 대신,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긴장감을 주는 쪽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차기작도 이미 정해졌다. 내년 방송 예정인 tvN 드라마 ‘고래별’에서 그는 독립운동가 송해수 역을 맡는다. 192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어린 시절 눈앞에서 가족이 몰살당하는 비극을 겪고 치열하게 싸우는 인물이다. “처절하게 독립운동을 하다가도 지키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서 우정과 사랑을 겪는 인물이에요. 제가 표현할 수 있는 지점에 분명 한계는 있겠지만, 시간이 허락하는 한 다양한 역할에 계속 도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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