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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신년특집] 미국 역대정권 인수 어떻게 이뤄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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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1-02 15:05:16 수정 : 2008-01-02 15: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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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권 안하면서 빠른 속도로… 레이건 ‘모범사례’
대통령직인수위는 정부 각 부처의 업무를 파악하고 새 정부의 국정운영 철학과 청사진을 마련하는 막중한 임무를 지닌다. 청와대 비서실과 정부조직 개편, 내각 인선까지 처리해야 한다. 

지난해 12월19일 선거 이후 오는 2월25일 취임식 때까지 대통령 당선자가 정권 인수 작업을 차질 없이 진행하면 정책 추진의 날개를 달 수 있지만, 자칫 삐걱거리다가는 총체적 실패를 잉태하게 된다. 그래서 정권 인수는 향후 5년 국정을 가늠할 시금석으로 일컬어진다. 미국 역대 정권인수팀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살펴보고 교훈을 찾고자 한다. 

◆로널드 레이건=1981년 1월20일 대통령에 취임한 레이건은 선거가 한창이던 1980년 4월 정권인수를 염두에 두고 실행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레이건은 공화당 후보로 선출되기도 전에 국방·외교 분야 자문위원들을 만나 이 같은 작업을 했다. 캘리포니아주의 국방컨설팅업체 엔지니어 윌리엄 그레이엄과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 알렉산더 헤이그 전 백악관비서실장, 존 타워·리처드 스톤 상원의원, 빌 클레먼츠 전 텍사스주지사, 캐스퍼 와인버거 전 국방장관, 앤 암스트롱 전 대사 등이 자문위원이었다.

레이건은 1980년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후보로 선출된 직후에는 23개 태스크포스에서 일하는 자문위원 300여명에게 경제 등 국내 문제와 관련해 취임식 이전에 보고서를 제출해 줄 것을 요청했다.

레이건은 그해 11월4일 제40대 미국 대통령에 선출됐다. 선거에서 패한 지미 카터 대통령은 역사상 가장 훌륭한 정권이양을 약속하고 대통령 당선자를 중심으로 단결해 줄 것을 호소했다. 레이건은 선거 이틀 뒤인 11월6일 정권인수위를 발족했다. 윌리엄 케이시 선대위 국장과 앤 암스트롱 공동본부장을 각각 위원장과 부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E 펜들턴 제임스를 책임자로 2700여개 정부 고위직을 채울 헤드헌트를 담당하는 인사국을 설립했다.

레이건은 이어 정권인수를 책임질 5개 실무그룹으로 구성된 ‘정권이양 집행분과기구’를 구성했다. 윌리엄 티먼스 부국장의 지휘 아래 실무그룹들은 여러 정부부처·기관들과 협력해 권력이양 작업을 순조롭게 진행했다. 레이건은 또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행정부와 포드 전 대통령 행정부 때 고위직을 지낸 인사 14명으로 구성된 ‘경제정책협력위원회(EPCC)’를 발족해 경제 살리기 전략을 마련했다.

그러면서도 레이건은 취임식 전까지는 카터 대통령의 권한을 절대 선취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카터 대통령이 지명한 권력이양 책임자 잭 왓슨은 레이건 인수팀에 카터 대통령이 주요 정책 결정을 미룰 것이라고 통지했다. 레이건 대통령의 권력 인수는 미국에서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으며, 취임 이후 언론과의 밀월관계도 14개월간이나 지속됐다.

◆조지 H 부시=1988년 11월8일 조지 H 부시는 제41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1836년 마틴 밴 뷰런 이후 처음으로 현직 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부시는 이튿날 크레이그 풀러 전 부통령 비서실장과 선거전략참모인 로버트 티터를 정권인수위 공동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아울러 오랜 친구인 제임스 베이커를 정권인수 핵심 자문위원으로 임명하면서 국무장관을 시키겠다고 밝혔다.

부시는 이전보다 규모가 작은 인수위를 원했고, 1988년 11월 중순 워싱턴에 정권인수위 사무실을 개설했다. 부시는 11월21일 레이건 행정부에서 일했던 리처드 손버그 법무장관과 라우로 카바조스 교육장관을 포함한 각료 명단을 발표했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부시 행정부로의 정권 인수는 차질 없이 이뤄졌다. 케네스 두버스틴 백악관 비서실장은 11월11일 각료들과 기관장들에게 정권인수팀에 조직, 자원, 목표, 기능, 의회감독위, 규제프로그램 등 모든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것을 지시했다. 거의 모든 행정부처는 11월 말쯤 정권인수위 작업에 협조할 내부 책임자를 임명했다.

◆빌 클린턴=클린턴은 1992년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 최측근들과 함께 정권인수와 관련한 문서작업을 시작했다. 미키 캔터가 이끄는 이 실무그룹은 ‘클린턴·고어 사전이양계획재단’으로 알려졌다. 이 실무그룹은 워런 크리스토퍼 변호사, 매들린 쿠닌 전 주지사, 버넌 조던 변호사 등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클린턴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인수위 핵심 책임자들을 발표하지 못했다. 내부에서 참모들 간에 인수위를 누가 이끌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정권인수계획을 주도한 캔터와 선거조직을 주도한 조지 스테파노풀로스 간 갈등이 증폭된 것이다.

클린턴은 11월 6일 조던과 크리스토퍼를 인수위 공동의장으로 발표했으며,인수위 본부를 아칸소주 리틀록에 세웠다. 클린턴은 리틀록에서 머물면서 인수위 보고서를 읽고 고위 자문위원들을 만났다.

실무팀 사무실이 워싱턴에 있었기 때문에 인수위 본부와의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발생했다. 두 도시 사이에 정보교류가 지연됐으며 시간도 많이 걸렸다. 워싱턴에서 수정된 제안들이 리틀록에서 거부되기도 했다. 백악관 주요 보직 임명은 정권인수기간 마지막 주까지 지연되는 등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조지 W 부시=2000년 11월7일 대선 개표 문제가 발생하자 존 포데스타 백악관 비서실장은 “선거 결과가 불투명해 1963년 대통령정권인수위법에 따라 연방자금과 보조를 받을 수 있는 대통령 당선자가 확정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데이비드 배럼 연방조달청장은 11월27일 “최종 결과가 여전히 불투명하기 때문에 연방정권이양기금을 제공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조달청이 정권이양기금과 정권인수팀 사무실을 제공하지 않자 부시는 버지니아주 맥클린에 딕 체니 부통령 후보가 지휘하는 정권이양 사무실을 설치했다.

체니는 11월27일 기자회견에서 정권인수작업이 민간 헌금으로 추진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후 하원은 12월6일 ‘명백한 당선 후보자’에게 조달청이 정권인수에 필요한 자금과 사무실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앨 고어 민주당 대선후보가 12월13일 패배 인정 연설을 한 직후 배럼 조달청장은 부시가 연방기금과 사무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결정했으며, 정권인수팀은 워싱턴 시내에 있는 인수위 사무실에 입주할수 있었다.

부시는 취임까지 5주가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각료들을 결정했다. 부시와 참모들은 투표 논란이 계속된 5주 동안 정권인수작업을 한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후보군을 좁히는 작업을 벌였다. 부시는 국방장관에 도널드 럼즈펠드, 국무장관에 콜린 파월, 교통부장관에 노먼 미네타 등 이전에 상원 인준 절차를 거친 인사들로 각료직을 채웠다.

◆정권인수 권고안=미국은 선거부터 취임식까지 11주 동안 정권인수작업을 마무리 해야 한다. ‘신속하고도 빈틈없게(To hit the ground)’라는 말은 역대 정권인수팀들의 목표였다. 미 의회는 2000년 기존 공무원들이 새 행정부의 임명직 인사들에게 공식 오리엔테이션을 하도록 법제화했다. 새로 임명되는 정부 고위직 인사들과 백악관 참모들이 업무를 파악하지 못해 저지르는 실수와 착오를 피하기 위한 조치이다.

미 의회조사국은 “대통령 당선자와 참모들이 선거 직후 바로 선거운동에서 정권이양작업으로 기어를 바꿔야 한다”고 권고했다. 의회조사국은 또 정권인수위가 공약을 어떻게 실행에 옮길지 결정하고, 행정·입법 프로그램을 신속하게 개발할 것을 제안했다. 특히 당선자는 핵심 인사직에 대한 결정을 가장 먼저하고, 원활한 정권이양을 담보할 수 있는 주요 기관 책임자들과 수시로 연락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의회조사국의 지적이다.

무엇보다 당선자는 정권인수위로부터 정책 문제와 관련해 적절하게 브리핑받는 게 중요하다고 의회조사국은 강조한다.

워싱턴= 한용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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