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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연구’ 최신호에서 소개 “동양의 제1위인 동경(東京)! 경성보다 몇 배나 더 문명한 그곳에서는 법률, 경찰도 소용없는 말 못할 희비극이 하루 몇 번씩이나 생기더이다.”(매일신보 1922년 2월15일자)

일제 강점기 조선 유학생들은 선진지식의 요람이자 근대문화 체험의 주된 장소였던 일본 도쿄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우미영 한양대 강사(현대소설)는 1905∼23년 국내 잡지·신문에 소개된 유학생들의 산문의 문화·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분석한 논문 ‘東度(동도)의 욕망과 동경이라는 장소’를 ‘정신문화연구’ 최신호(제109호)에 발표했다. 우 강사는 조선 지식인들이 일본 유학을 처음에는 구국이나 출세를 위한 도정으로 여겼지만 점차 조선과 다른 문명·문화를 체험하는 기회로 인식했다고 분석했다.

발표문에 따르면 을사조약(1905) 직후 도쿄 유학생들은 주로 신학문과 신문명을 배움으로써 위기에 처한 나라를 계몽해 발전시키겠다는 소명의식을 불태웠다. 결핍과 낙오의 공간, 조선을 떠나 선진 문명을 이룩한 일본에서의 공부를 통해 자신을 “최고 문명인”(이광수, 1916)으로 만들거나 “우리 사회에 비춰보고 응용적 해석을 고민”(현상윤, 1919)했다. 1920년대 유학생들은 일본에 대한 패배감보다는 경쟁의식이 더 강했다. 1919년 2·8독립선언이나 3·1운동에서 획득한 자신감이 그 기저에 깔려 있었다. 신문을 읽는 도쿄 인력거꾼에서 일본의 저력에 경탄을 마지않던 유학생(박승수, 1917)들은 금강산보다 못한 후지산(김기수, 1920)이나 불결한 동경 거리(오천석, 1921)를 발견하게 된다.

우 강사는 “1920년대 일본 유학에 관한 기고문을 보면 단순한 적대감이나 일방적인 모방의식이 발견되지 않는다”면서 “이는 유학생들이 일본 문명·문화에 대해 뚜렷한 주관을 갖고 시찰하거나 일본의 특수한 문화로 받아들인 결과”라고 말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일본에 대한 조선 유학생의 인식 변화
유학생 기고

연도
기고지 내 용
권영구 1908 대한학회

월보
  “7년 긴 병을 고치기 위해 3년 묵은 약쑥(신학문)을 구하는 심정”
이광수 1916 매일신보 “세계 최고 문명국의 최고 문명인과 동일한 정도에 추급하려 함이다”
김기수 1920 조선일보 “무엇을 구하려 급행차를 타고 그리 바쁘게 가는가. 학문을 얻어 무엇을 하려는가. 사회를 위함인가, 내 몸과 가족을 위함인가.”
민성기 1922 매일신문 “배고픈 자가 음식을 구하고 목마른 자가 물을 구하듯 아무 기탄없이 다만 목적지로 향할 뿐”
박영희 1938 신민 “경성에 있는 온갖 서적과 영화, 의복, 유행이 다 동경에서 오는 것이니 동경과 경성이 다를 것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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