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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차를 마시며]<1> 한국불교 대표적 학승 월정사 회주 현해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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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12-08 18:26:23 수정 : 2008-12-08 18:2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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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현해 스님은 24살의 청년 시절, 교회 장로가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보내오는 구호품을 내다팔아 교회 확장에 사용하자 분개해 크게 다퉜다고 한다. 교회는 교회대로 사정이 있었겠지만, 그는 이 문제를 놓고 일주일 동안 고민하다 당시 오대산에 도인이 있다고 해서 월정사로 찾아들었다가 불교를 만난다. 그는 “불가에서도 쓴소리를 많이 하는 편”이라며 허허롭게 웃었다.
막힘 없고, 궁함이 없고, 크기를 가늠할 수 없고, 오직 몸을 던져 수행 방편으로 삼아온 스님들이 있다. 불교 조계종은 이들 12명의 스님을 종단 최고 품계인 대종사(大宗師) 반열에 올려 놓은바 있다. 이들 스님들은 그동안 한국 불교의 끝이 보이지 않는 숲이 돼 주었다. 고목이 되어 스러진 노송 주위에는 이미 그 향기며 자태를 그대로 빼닮은 또 다른 노송들이 즐비하다. 마치 수많은 병사들이 대오를 이룬 군대의 사열처럼. 그들이 평생 매달렸던 공부는 무엇이었던가. ‘한국불교의 큰나무’ 대종사를 찾아 화두의 한 자락을 들어본다.

스물네 살의 크리스천 김창석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미국에서 구호품을 보내왔으면 마땅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줘야지 왜 장로가 내다팔아 교회를 확장하는 데 사용하느냐는 것이었다. 교회 측에서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설득하려 애썼지만, 그럴수록 그는 거칠게 항의했다. 결국 교회는 ‘말이 안 통하는’ 청년을 쫓아내고 만다. 6·25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8년은 김창석에게 이래저래 가슴 아픈 해였다. 그해 가을 청년은 오대산 월정사를 찾아가 머리 깎았고, 불교 수행자로 다시 태어났다. 그가 일흔셋의 나이에 조계종의 대표적 학승이 되어 종단을 떠받치고 있는 현해(玄海) 스님이다.

북한산 자태가 가을빛을 받아 준수하다. 백운대와 만경대, 인수봉 등 북한산 주봉은 서울 북동쪽에서 보면 위풍당당한 황소의 기품이다. 머리에 해당하는 인수봉 오른쪽 부분이 귀처럼 불거졌다고 해서 북한산과 도봉산 사이 고개를 ‘우이령(牛耳嶺)’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현해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서울 도봉구 쌍문1동 법종사는 북한산 주봉들이 거칠 것 없이 조망되는 명소에 앉아 있다. 석탑 모양으로 늘씬하게 서 있는 법종사 5층 대웅보전에 올라서면 북한산은 황소가 뚜벅뚜벅 걸어가는 형국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 경계를 허무는 미소

조계종 4교구 본사인 강원 평창군 월정사 주지였던 그가 서울포교당을 물색하러 북한산 자락까지 나왔다가 가히 한눈에 반했을 법하다. 법종사는 전통 사찰은 아니지만, 북한산 사계를 끌어안으며 그윽한 매력을 내뿜는다. 그는 2004년 월정사 주지직을 놓고 곧바로 이곳으로 흘러들었다. 근세 한국의 선지식인 한암, 탄허, 만화 스님의 월정사 법맥을 이으며 월정사 회주로 있는 그는 연구실 같은 법종사 요사채에서 뒤늦게 배운 서예에 푹 빠져 산다.

대웅보전에서 참배를 마치고 스님 앞에 앉으니 차 한 잔을 우려 준다. 예상치 않게 차 맛이 씁쓸해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자 스님이 빙그레 웃는다. 노장에 대한 경계가 일거가 허물어진다.

“좋은 차는 입에 쓰답니다. 그렇지만 조금 있어봐요. 입 안에 단맛이 감돌 겁니다.”

현해 스님은 법화경(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연구의 권위자다. ‘법화경 요품강의’, ‘묘법연화경’, ‘법화종요연구’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내놓으며 법화경 연구만 15년, 강의만 12년을 했다고 한다. 붓다가 직접 설한 내용으로, 성경과 닮은 점이 많다는 법화경 이치가 궁금했다.

“부처님은 45년 동안 진리를 설했지요. 초기 내용은 아주 초보적인 가르침을 담아 원시경전이라 하고, 후기에 설한 내용은 철학이 가미되고 가르침이 깊어져 대승경으로 분류합니다. 법화경은 화엄경과 함께 대승경의 쌍봉을 이루지요.”

법화경은 진흙 속에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아름답게 피어나는 연꽃처럼 우리 중생들이 번뇌 가득한 세속에 살면서도 반드시 성불할 수 있음을 강력하게 설파한다. 특히 ‘법화칠유(法華七喩)’라 일컫는 여러 가지 비유와 각종 인연담을 통해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아 폭넓은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사는 세상을 천국, 지옥, 땅(지상세계) 3단계로 구분하지요. 불교는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계 6단계로 좀더 세분화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천당은 너무 즐거워서, 지옥은 너무 괴로워서 수행할 생각을 못하는 데, 오직 절반의 고통과 절반의 즐거움을 가진 지상세계 인간만이 수행을 통해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지요.”

아닌 게 아니라, 차 맛은 시간이 흐를수록 단맛으로 입 안을 감돌았다. 스님이 따라 주는 찻잔을 거푸 비웠다. 생각이 다시 법화경에 머물렀다. 스님은 왜 법화경에 천착했을까. 스님의 말이 이어졌다. 법화경이 성경을 닮았다는 말은, ‘탕자의 비유’를 비롯해 성경에 나오는 많은 비유가 법화경에도 등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해 스님은 처음에 법화경을 읽다가 성경과 너무 흡사해 놀랐다고 한다.

# 한 생각 속에 들어 있는 삼천세계

그는 ‘꼿꼿한’ 성품 때문에 종교를 바꿨지만 집안 대대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대쪽 같은 성품은 훗날 불가에 들어서도 공금 사용에 무섭도록 철저함을 보였다. 아무튼 젊은 시절 불교에 몸담은 스님은 고된 행각 끝에 탄허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아 황소처럼 우직하게 수행자의 길을 걸어왔다.

여러 가지 공부가 부족하다고 느낀 그는 ‘법화경’에서 “한 생각 가운데 삼천세계가 있다”는 말에 의문을 품고 향학열을 불태운다. 때마침 종단에서 학비를 대주는 1기 종비생으로 동국대에 입학하였고, 다시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면접을 치르는 데, 당시 김동화 박사가 “자네 대학원에서 무얼 연구할 건가” 묻자, 대뜸 “일념 삼천세계를 연구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자 김 박사가 “그것은 천태인데” 하고 의아해했다. 법화경은 천태종의 소의경전(所依經典: 신행과 교의 상의 근본경전)이어서 조계종 하고는 안 맞는다는 뜻이었다. 현해 스님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이때부터 법화경 연구에 젊음을 바쳤다. 스님은 동국대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73년 일본 고자마와대학 불교 장학생으로 뽑혀 유학 길에 올랐다. 그는 고자마와대학에서 불교학 박사과정을 마친 뒤 다시 와세다대와 다이쇼대에서 동양철학과 천태학을 연구했다. 쇠라도 녹일 만한 학구열이었다.

“법화경은 총 28품으로 돼 있는 데, 인간이 부처의 경지에 이르는 단계에 맞게 가르침이 담겼지요. 첫째는 방편사상이 특징이고, 둘째는 부처의 가르침을 믿어야 한다는 신앙심을 강조하며, 셋째는 보살사상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생각이 분분해지는데, 스님이 법화경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에 나오는 예화 한 자락을 구수하게 펼쳐놓는다. 옛날에 상불경보살이 있었는데, 이 보살은 누구든 만나기만 하면 합장한 채 “나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당신은 부처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절을 받은 사람이 처음에는 그 말을 듣고 기분이 무척 좋았으나, 이 보살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은 말을 하자 그만 부화가 나더라고 했다. 그래서 보살을 데려다 욕하고 때렸는데, 이 사람이 나중에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지옥에서 과보(果報)가 끝나자 “세상에 나가 상불경보살의 말을 들으면 부처가 된다”는 말을 그대로 실천해 마침내 부처가 됐다는 이야기다.

“인간의 존엄성을 거스르면 지옥에 간다는 교훈이 이야기 속에 녹아 있지요.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고 사람을 해치면 끝내는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 존엄성을 깨치는 순간 다시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법화경이 주는 교훈 입니다.”

그는 인종이나 종교 간에 원수지게 하고 담 쌓는 것도 인간 존엄성을 위협하는 행위라며, 이것만 조심하면 우리가 사는 이 땅이 바로 천국이요 극락이라고 부연했다.

화제는 약왕(藥王)보살 이야기로 이어졌다. 하루는 약왕보살이 부처의 법문을 듣고 있다가 주변 중생들이 업장(죄)이 너무 두꺼워 설법을 듣고도 깨칠 줄을 모르자 자신이 대신 참회하겠다고 말했다. 보살은 즉각 행동에 옮겨 합장한 채 자신의 손을 태워 불구자가 됐다. 그러나 함께 있던 1만2000 대중이 “저 보살은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참회하겠으니 보살의 몸을 원상태로 돌려주십시오” 하고 부처에게 간청했다. 대중은 한마음, 한뜻으로 “나무석가모니(부처님께 귀의합니다)”를 외쳤다. 그러자 천지가 진동하면서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 물론, 부처는 대중의 청을 들어줬다. 이 이야기 역시 어떤 그릇에 밥을 담으면 밥그릇이 되고, 국을 담으면 국그릇이 되듯이 우리 몸도 부처를 모시면 부처가 된다는 가르침이 들어 있다.

# 고해를 건너는 배

“마군(魔軍) 같은 이 세상도 욕심을 비우면 부처의 세상이 되지요. 신약성경 요한복음에도 예수께서 ‘천국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제자에게 ‘천국은 네 마음 속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부처의 가르침이나 예수의 가르침이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내 마음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답은 명확해집니다.”

불교은 핵심이 ‘인과(因果)’라고 강조했다. 인과를 명심한다면 늘 몸가짐을 단정히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 가지 덧붙였다. 자연은 퇴화했으면 했지, 발전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님은 자연이 퇴화하는 증좌로 감나무의 예를 들었다. 감 씨를 심으면 고욤나무가 되는 데, 접을 붙여야 제대로 된 감이 열린다는 것이다. 현해 스님은 사람도 혼자서는 성인이 될 수 없고, 성인의 말씀을 접붙여야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이 인간을 위해 살면 행복하지만, 물질과 명예에 탐착한다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돈이 독소가 되지요. 좋은 복의 씨를 많이 심어야 합니다. ”

분위기가 무르익자 스님이 ‘諸法從本來 常自寂滅相 佛子行道已 來世得作佛(제법종본래 상자숙멸상 불자행도이 내세득작불)’이라는 법화경 ‘방편품’에 나오는 구절을 하나 써 준다. 진리로 가는 길을 찾아내는 탁월한 통찰력이 담긴 감로법문이 바로 법화경임을 웅변해 주는 글이다. 모든 우주 현상의 본래 모습 그대로가 부처님의 세상이요, 열반의 세상이기에 부처님 제자들이 이것을 실천하면 그대로 다음 세상에 부처를 이룬다는 뜻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법(法)이 진리 아닌 게 없는데, 인간이 이 땅을 오염시켜 지옥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성경에 보면 예수에게 똑같이 가르침을 받았는데, 가롯 유다는 스승을 팔아먹은 제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불교에도 제바달다가 스승인 부처를 몇 차례나 해치려 한 적이 있습니다. 성인의 말씀을 듣고도 실천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요.”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닐 정도로 검소한 그지만, 인지세나 강연료 등으로 돈이 모아지면, 장학사업에 아낌없이 척척 내놓는다. 스님은 이제 ‘삼천세계’라는 화두를 들고 있지 않다. 시비분별도 물론 끊어진 듯하다. 우주의 중심을 잡고 있는 듯한 노장의 풍모에서 훈향(熏香)이 느껴질 뿐이다. 그가 앉아 있는 뒷벽에 ‘苦海寶筏(고해보벌)’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마음속으로 깊이 존경하는 벽안 스님으로부터 받은 글이라고 했다. 현해 스님은 ‘고통의 바다를 건너가는 보배로운 배’라고 뜻풀이를 해주며, “모든 사람을 태우고 고해를 건너는 배가 되라는 어른스님의 가르침이다”라고 말했다.

서예에서 사회에 회향할 그 무엇을 찾는 것일까. 스님은 “한 5년 동안 붓을 잡고 있으니, 그 속에도 뭔가가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산 자락에 살포시 저녁노을이 내려앉고 있다.

글 사진=정성수 선임기자 hulk@segye.com


>> 현해 스님은 누구인가

1935년 경남 울산에서 9남매의 여덟째로 태어났다. 1958년 오대산 월정사에서 탄허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66년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은사는 만화 스님이다. 1992년부터 2004년 1월까지 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 주지 소임을 맡았고, 조계종 제3·7·10대 종회의원을 지냈다. 지난해 4월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추대됐다. 스님은 중앙승가대학과 동국대 불교학과에서 오랫동안 법화경을 강의했다. 지금은 월정사 회주로, 주로 서울포교당인 법종사에서 대중을 만나고 있다.

스님은 평생에 걸친 법화경 강의와 연구의 결과물을 모아 1996년 ‘법화경 요품강의’를 펴냈다. 지난해에는 산스크리트어본, 한문번역본, 영문번역본, 한글번역본 등 4개 국어 대조본 ‘묘법연화경’을 3권으로 완간했다. 그는 이 작업을 위해 자료 조사에 3년, 번역에만 7년을 매달렸다. 불교계에서는 4개국어 대조본 묘법연화경의 출간을 획기적인 작업으로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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