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씨 “그냥 준 돈”으로 진술 땐 범죄 성립 안돼
가림막 가린 사저 8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생가 복원공사를 벌이는 공사 관계자들이 가림막을 설치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아 썼다는 사과문 발표 직후 김해시가 사저 앞에 가림막을 쳐 관광객과 취재진의 강한 불만을 사고 있다. 김해=연합뉴스 |
8일 법조계에 따르면 권 여사와 박씨 간 돈 거래는 노 전 대통령 임기 중 이뤄진 만큼 대가성이 개입해 있다면 뇌물수수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전부터 노 전 대통령을 후원해 온 박씨가 ‘그냥 준’ 돈으로 결론날 경우 이 혐의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공직자 재산신고 규정 위반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권 여사가 박씨 돈을 받을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현직이었다. 박씨한테 현금을 받아 권 여사에게 건넨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도 청와대에 재직 중이었다. 정씨는 사석에서 말을 놓을 만큼 노 전 대통령과 절친하다. 설령 권 여사가 남편에게 비밀로 했더라도 노 전 대통령은 정씨 ‘보고’를 듣고 파악했을 개연성이 있다.
노 전 대통령 측 주장대로 퇴임 후 이 사실을 알았을 수 있다. 아무리 부부일지라도 법률적으로 독립된 존재다. 따라서 노 전 대통령은 “집안 단속을 제대로 못 했다”는 도덕적 비난은 들을지언정 법정에 서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권 여사는 대통령 부인이라는 ‘유력한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이익을 챙긴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10억여원이 청탁과 관련된 대가성 있는 돈이란 걸 전제로 한다. 대통령은 워낙 권한이 크고 업무 범위가 넓어 기업인한테 거액을 받은 점 하나만으로 ‘포괄적 뇌물죄’가 성립하기 쉽다. 이는 대통령 부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참여정부 시절 박씨와 태광실업이 휴켐스 인수 등 엄청난 혜택을 누려 “정권이 바뀌면 청문회감”이란 원성을 들은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다만 박씨가 “대통령에게 건넨 10억여원은 그냥 빚을 갚으라고 준 돈”이라며 대가성을 완강히 부인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는 지난해 2월 태광실업 홍콩 현지법인 APC 계좌를 통해 노 전 대통령 조카사위 연철호씨에게 건너간 500만달러(당시 환율로 약 50억원)도 마찬가지다. 돈을 준 사람이 “지지자로서 줬다”고 한다면 검찰이 기소하더라도 법원에서 무죄선고가 내려질 공산이 크다.
노 전 대통령 입장에선 당연히 박씨가 검찰 조사에서 이렇게 진술하길 원할 것이다. 박씨도 자신 때문에 참여정부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철창’으로 가는 현실에 엄청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씨는 확실한 근거만 들이대면 아주 정확한 답변을 내놓는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박관용·김원기 두 전직 국회의장 혐의와 관련해 박씨는 검찰이 만족할 수준으로 솔직하게 진술했다고 한다. 검찰 직접 조사를 앞둔 노 전 대통령 부부의 운명은 사실상 박씨 ‘입’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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