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한·일의원연맹 간사장(민주당)은 정치권의 대표적인 지일파다. 동아일보 재직 당시 도쿄 특파원으로 3년을 지낸 이 간사장은 2000년 정계 입문 이후 줄곧 한·일의원연맹 활동을 해왔다. 일본 정부가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내용의 중학교과서 검정을 통과시킨 다음날인 지난달 3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 간사장을 만났다. “일본을 이해하는 나로서도 참 안타깝고 괘씸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일본 대지진 사태 이후 국내에서 봇물처럼 터진 ‘일본을 돕자’는 우호 기류에 역사왜곡 교과서로 찬물을 끼얹었다는 것이다. 양국 간 ‘풀뿌리’ 차원의 공감대는 점점 넓어지고 있는데 독도, 역사 문제와 같은 ‘암초’는 더 단단해지는 양상이다. 이 간사장은 이런 흐름의 주된 원인으로 갈수록 보수·우익화하는 일본 사회의 메커니즘과 여기에 끌려다니는 ‘박약한 정치 리더십’을 꼽았다.
그는 “독도 문제에 관한 한 일본 민주당도 자민당과 마찬가지로 단 한 발짝도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면서 “우리 정부가 어떤 경우에도 지지 않을 만큼 독도가 국제법적으로, 역사적으로, 실체적으로 한국 땅이라고 입증하는 사료적 근거와 논리를 계속 보강해나가고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 차원의 일본 규탄 결의문과 같은 일회적 대응보다는 내실 있는 접근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일본 민주당 정부 출범 이후에도 독도 문제를 비롯해 우경화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일본 민주당도 독도 문제에 관한 한 자민당과 다른 게 없다. 한국민으로서는 일본의 대지진과 쓰나미라는 불행 앞에서 역사의 상처도 접고 동정하고 지원했는데 그 답이 역사왜곡 교과서로 나타나니 더 큰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다. 일본의 한계다.”
―관료집단, 보수·우익화하는 사회 분위기에 제동을 걸지 못하는 일본 정치의 한계인가.
“기본적으로 일본 사회의 메커니즘이 독도, 역사 문제에 유연함을 갖지 못한다. 거기에 정치 리더십이 박약하기 짝이 없어서 그런 걸 누르고 이웃 나라를 배려하고 자기네 국민을 설득할 역량이 없다. 사회의 보수적 메커니즘에 그대로 끌려가는 걸로 보인다.”
―한일의원연맹 차원에서도 독도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 텐데.
“그 문제로 싸우다가 헤어지는 경우도 있다. 옛날보단 덜 싸우는데 이번 경우는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령하고 있다’고 악화시켰다는 점에서 참으로 고약하다. 의원연맹 차원에선 종전보다 독도 관련 기술을 더 악화시키지 못하도록 하거나 발표를 덜 예민한 시점으로 돌리는 일 등을 과거에도 조금씩 해왔다. 하지만 근본적인 접근은 아니다. 이번에는 일본 정부가 학기초가 임박해서인지 시기 조정도 못하고 더 악화된 내용으로 내놓았다.”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건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는 것뿐인가.
“독도 문제에 관한 한 일본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는 건 순진한 발상이다. 지난 노무현 정부 때 제가 처음으로 국회에서 일본의 두꺼운 ‘내셔널 아틀라스’(영어판 국가지도집)를 보여주면서 우리도 제대로 독도 문제에 대응하려면 이런 걸 만들어 세계 각국 도서관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에서 독도 문제가 터지면 일시적으로 바짝 반응했다가 흐지부지돼선 안된다. 고증 자료를 계속 축적하고 국제사회에 알려야 한다.”
―‘독도 홍보’에 관한 한 오히려 민간 차원의 활동이 두드러져 보인다.
“승부의 첫 번째는 누가 실효적으로 독도를 지배하느냐, 두 번째는 국제여론이다. 첫 번째 부분에서는 (일본을) 이기고 있는데 두 번째 부분에서는 이기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독도 교과서 파문으로 일본 지원 성금이 뚝 떨어졌다고 한다. 모처럼 조성된 한·일 우호 기류가 퇴색한 측면이 있는데.
“일본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애증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이웃의 슬픔에 동참하겠다고 성금 모금, 응원이 이어졌다. 특히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까지 ‘힘내세요’ 했던 건 일본의 양식에 큰 울림을 줬다고 생각한다. 무토 마사토시 주한 일본대사가 손학규 대표를 방문한 자리에서 “일본은 좋은 이웃을 뒀습니다”라고 말했다. 풀뿌리 차원에서 한·일 관계가 더욱 좋아지는 훌륭한 전기가 됐다. 풀뿌리 차원의 교감은 해마다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독도 문제와 같은 암초가 여전히 남아 있기에 양국 관계를 개선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한일의원연맹이 그런 암초들을 치우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나.
“과거부터 양국 정부간 마찰이 생기면 물밑에서 조정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김포∼하네다 셔틀노선 개설,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 결정 과정에 의원연맹의 막후 역할이 있었다. 하지만 독도 문제가 불거지면 굉장히 한계에 부딪힌다. 이번에 일본 대지진 사태 때 (의원연맹) 회원들이 성금을 모아 전달했다. 저를 포함해서 일본 카운터파트너에게 위로 전화를 걸어 지역구 피해 정도 등을 물으니 무척 고마워했다. 어느 장관은 전화를 걸어와 후쿠시마 원전 상황을 죽 브리핑해줬다. 신뢰랄까, 우의가 진전되고 있구나 느꼈다. 그런 것들이 축적되면 좀 더 나아질 것이다.”
―이번 대지진이 일본 국민들의 생활뿐 아니라 인식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분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양면이 있을 수 있다. 과거에 일본으로부터 상처를 받았음에도 이번에 도와준 이웃 나라가 있구나, 혼자가 아니다는 인식에서 이웃과 세계를 향해 더욱 개방적으로 나올 수 있다. 반면에 불행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집단주의 경향이 강화될 수도 있다. 패전 직후 일본처럼 안으로 더욱 응축되는 건 아닐 지 현재로선 어느 쪽으로 갈지 모르겠다.”
“보는 사람마저도 슬플 만큼 강한 인내와 절제. 또 하나는 매뉴얼 사회의 빛과 그림자다. 매뉴얼대로 위기에서 질서정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은 ‘빛’에 해당된다. 나쁜 점은 매뉴얼을 초월한 비상사태 앞에서는 허둥거린다는 점이다. 이것이 드러난 게 원전 사태다. 싱카포르 리콴유 총리가 쓴 글에 일본 사람들의 고지식함을 지적한 부분이 있다. 일본에서 한 햄버거집에 갔는데 날씨가 무척 좋아 가게 앞 벤치에 앉아서 먹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매뉴얼에는 ‘가지고 갈 것인가’, ‘가게에서 먹을 것인가’ 둘밖에 없는 거다. “벤치에서 먹을 것”이라고 답했더니 계속 가져갈 것인지, 먹고 갈 것인지를 물어보더라는 얘기다. 정해진 틀에서 갈 때는 좋은데 궤도가 이탈된 상황에선 매뉴얼의 혼돈이 오는 것이다.”
―이번 사태 수습 과정에서 정치 리더십, 간 나오토 총리의 리더십이 너무 취약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굉장히 약하다. 우선 정치 지도자들의 기량, 역량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전후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 다나카 가쿠에이,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들과 비교해 보라. 구조적으로 일본 지도자들이 차원 높은 선택을 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고 생각한다. 패전 이후 대외정책은 미국 하자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었으니, 지도자들이 스케일 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시대를 살아온 것이다.”
―위기 상황에 대한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 차원에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점이 있다면.
“기본적으로는 어느 나라에서나 그 나라의 메커니즘을 지도자가 뛰어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간 총리도 마찬가지다. 일본 원전 문제만 하더라도 자민당 정부 시절부터 묵인된 9개 전력회사의 담합체질, 정치권 유착관계의 한계를 간 총리가 벗어나기 어렵다. 그럼에도 아쉬운 대목은 정확한 판단과 대담한 결단, 자기희생 정신의 부족이다.”
―대지진 사태가 침체된 일본이 역동적으로 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대지진 후 일본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나.
“지금 원전사태가 어떻게 매듭지어지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원전 문제가 잘 마무리된다는 전제에서 말하자면 대지진 사태에도 엔화 가치가 오히려 급등한 점이 많은 걸 말해준다고 본다. 어마어마한 복구 작업이 시작될 텐데 재원 마련이 일본 정부에는 부담이 되겠지만 일본이 오랜 무기력증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목표를 잃어버린 젊은 층에게 일자리가 생기고 뭔가 도전할 마음이 생길 수 있다. 마치 패전 직후 일본 부흥기처럼 사회적 에너지가 결집되지 않겠느냐는 쪽에 무게를 둔다.”
대담=황정미 부국장, 정리=김예진 기자, 사진 이범석 기자
■ 이낙연 한·일의원연맹 간사장
▲전남 영광(49) ▲광주 제일고·서울대 법학과 ▲동아일보 국제부장·논설위원 ▲새천년민주당 대변인·대표비서실장·원내대표 ▲대통합민주신당 대변인 ▲민주당 사무총장 ▲16, 17, 18대 국회의원
▲전남 영광(49) ▲광주 제일고·서울대 법학과 ▲동아일보 국제부장·논설위원 ▲새천년민주당 대변인·대표비서실장·원내대표 ▲대통합민주신당 대변인 ▲민주당 사무총장 ▲16, 17, 18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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