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고교(서울신일고)시절부터 야구로 두각을 드러낸 90년대 초반 황금세대의 선두주자였다.
1991년 고교야구에는 지난달 은퇴한 '코리안 특급' 박찬호를 포함해 임선동, 손경수, 정민철, 염종석, 손혁, 손민한, 진갑용, 박재홍, 김재현 등 유독 많은 대어급 선수들이 활약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조성민은 이들 중에서도 임선동, 손경수와 함께 '빅3'로 꼽히며 발군의 실력을 자랑했다.
우완 정통파 투수인 조성민은 고3이었던 1991년 신일고를 봉황기와 황금사자기 우승으로 이끌며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조성민은 봉황기에서는 우수투수상과 최다홈런상을 받았고 황금사자기에서도 우수투수상을 품에 안았다.
1991년 한·미·일 국제 청소년야구대회와 199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국가대표로 뽑히는 등 아마야구에서 최강자로 군림하던 조성민은 1995년말 일본 명문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계약금 1억5000만엔(약 18억원), 연봉1200만엔에 계약을 맺고 일본에 진출했다.
시작은 좋았다. 1996시즌 2군무대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조성민은 1997년 1승2패 11세이브 평균자책점 2.89의 무난한 성적을 거두며 일본무대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3년차였던 1998년에는 선발로 전환해 전반기에만 7승6패 평균자책점 2.75의 눈부신 활약을 펼쳤지만 그해 올스타전에서 팔꿈치 부상을 입은 후 다시 부활하지 못하고 2002년 퇴단했다.
2005년에는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에 입단해 3시즌 동안 선수생활을 이어갔지만 3시즌 동안 35번 등판해 3승4패 4홀드 평균자책점 5.09의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2011년에는 두산 베어스 2군 재활코치로 지도자의 삶을 시작했지만 지난해 12월 재계약을 포기했다.
그는 2000년 12월 탤런트 故 최진실과 결혼했지만 약 4년 만인 2004년 9월 이혼했다. 최진실 사이에는 조환희·수민 1남 1녀를 뒀다. 최진실은 2008년 10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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