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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 95세로 별세…남아공의 상징적 존재

관련이슈 넬슨 만델라 타계

입력 : 2013-12-06 07:44:48 수정 : 2013-12-06 17: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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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르트헤이트(흑백차별정책)를 철폐한 인권투사이자 용서와 화합의 상징적 존재인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향년 95세를 일기로 요하네스버그 자택에서 타계했다.

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남아공의 위대한 아들을 잃었다"고 만델라 사망 소식을 전했다. 남아공은 만델라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르기로 하는 한편 전국에 걸쳐 조기를 게양키로 했다.

만델라는 2000년도 중반 이후 급격한 노쇄현상을 보인 끝에 지난 2010남아공월드컵 이후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2011년 이래 지병인 폐 감염증 등으로 수차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 왔으며 지난 6월 상태가 위중해져 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지난 9월 퇴원, 요하네스버그 자택에서 의료진의 진료를 받아왔다.


만델라는 1918년 남아공 동남부 음베조에서 마을 족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흑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초등학교와 중·고교를 졸업하고 포트헤어 대학에 진학했다. 법률가가 되고 싶었던 만델라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환으로 일하며 방송통신대학인 남아공대학(UNISA) 학사 과정을 이수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 등 흑인지식층과 교분을 통해 백인정권의 흑인 차별정책에 눈을 뜬 만델라는 25세때인 1943년 당시 민주화 투쟁의 중심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가담했고 이듬해인 1944년에는 ANC 청년조직인 'ANC청년동맹'(ANCYL) 창립멤버로 참여했다.

34살이던 1952년에는 변호사 자격을 획득한 그는 올리버 탐보와 함께 남아공 최초의 흑인 법률사무소를 설립했다.

1952년의 전국적 저항운동을 계기로 만델라는 남아공 흑인 지도자로 주목받게 됐으며 ANC도 10만명의 회원을 지닌 강력한 조직으로 탈바꿈했다.

백인정권은  1960년 3월 요하네스버그 인근 샤퍼빌에서 일어난 경찰 발포사건으로 69명이 사망한 '샤퍼빌 대학살' 이후 반 공산당법을 발표, ANC를 불법조직으로 낙인찍었다.

만델라는 1964년 내란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투옥돼 무려 27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이를 계기로 남아공을 넘어서 국제적 인권지도자가 된 만델라는 국내외 지지세력을 넓혀가며 백인정권을 압박, 마침내 항복을 받아냈다.

백인정권은 1990년 만델라를 출소시키고 ANC도 합법조직으로 인정했다.

이러한 공으로 지난 1993년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마지막 백인 대통령인 F. W. 데 클레르크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이듬해인 1994년 남아공 최초의 민주선거를 통해 첫 흑인 대통령이 됐고, 이후 '진실화해위원회'를 출범시켜 청문회에서 잘못을 고백한 백인을 사면하는 등 흑인과 백인의 평화로운 공존을 도모하는 용서와 화합의 참 모습을 보여줬다.

만델라는 떠났지만 20세기를 관통한 위대한 인물로 역사는 기억할 것이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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