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英선 다양한 정의 선보여
국어사전이 많을수록 좋은 이유도 뜻풀이의 다양성 때문이다. 한 낱말을 두고 여러 사전의 다양한 뜻풀이가 선의의 경쟁을 벌이면서 그 언어는 더욱 풍성해진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어사전 대다수는 뜻풀이가 유감천만이다. 우선 ‘선행사전 참조’라는 명목하에 이뤄진 천편일률적 뜻풀이가 많다. 유명 사전이 표절 시비에 얽힌 경우도 많다. 사전에 등재된 언어 상당수가 일본식 표현에 뿌리를 두었고 뜻풀이 역시 일본사전에서 따왔다는 비판도 받는다. 뜻풀이에 표제어보다 어려운 말이 쓰이거나 ‘사랑’은 ‘정’으로, ‘정’은 다시 ‘사랑’으로 순환의 덫에 독자를 빠트리는 수준 미달의 뜻풀이도 여럿이다.
‘오른쪽’이란 개념어의 경우 ‘북쪽을 향한 때의 동쪽과 같게 된 방향(바른쪽, 올흔쪽), 한글학회 조선말 큰사전 1957년’, ‘오른편쪽의 준말, 사람이 동쪽으로 향하여 남쪽이 되는 곳, 문세영 조선어사전 1938년’, ‘사람이 동쪽을 바라보고 설 때 남쪽으로 향하게 되는 몸의 부분과 방향이 같은 쪽, 동아 연세초등국어사전’, ‘북쪽을 향하였을 때의 동쪽과 같은 쪽,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등 취재과정에서 접한 국어사전 거의 모두 엇비슷했다.
안상순 전 금성출판사 사전팀장은 “1938년 문세영 사전이 처음으로 나오고 40년대 한글학회에서 큰사전이 나온 후 60년대 민중서관이나 동아출판사에서 후발 사전을 펴냈는데 그 즈음 사전을 보면 뜻풀이가 정말 거의 똑같다”며 “80년대 이후 나름대로 사전들이 새롭게 하려고 많이 애를 썼지만 특성상 선행사전을 참조 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전 왕국인 일본은 사전마다 다양한 뜻풀이가 대비된다. ‘이 사전을 펼쳐 읽을 때 짝수 페이지가 있는 쪽, 이와나미 사전’, ‘바늘 시계의 문자반을 마주할 때 1시에서 5시가 있는 쪽, 신메이카이사전’, ‘대부분 사람이 식사할 때 젓가락을 잡는 쪽, 쇼가쿠칸 사전’ 등 이름있는 사전마다 개성이 드러나는 뜻풀이를 선보였다. 일본에선 사전 편집 시 타사 사전 설명을 유용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영어권에선 영국 옥스퍼드영어대사전이 ‘북쪽을 바라봤을 때 동쪽에 속하는 몸쪽 방향’으로 유사한 뜻풀이의 원형을 제시했다. 메리엄웹스터사전은 ‘몸에서 대부분 사람의 심장이 있는 쪽의 반대편, 방향’으로 설명했다.
우리나라 국어사전 공통의 큰 문제는 뜻풀이에서 어원에 대한 설명이 빠졌다는 점이다. 가령 ‘김치’의 경우 대다수 국어사전이 이 말이 언제부터 쓰였는지 그 유래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옥스퍼드사전이나 웹스터사전 등은 영어권에서 ‘Kimchi(김치)’란 말이 등장한 시기를 콕 집어서 ‘1898년’으로 기록하고 관련 문헌 등 근거까지 제시한다. 이후에도 영어권에서 김치라는 말이 쓰이는 용례들이 나타나는 출처를 연대별로 정리 수록할 정도다. 경기대 국문학과 박형익 교수는 “국내 사전에는 대부분 어원 분석이 없는데 어원을 밝히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긴 하다”면서도 “그러나 삼겹살처럼 근래 등장한 말이나 외래어는 사전이 언제 어떻게 우리말에서 쓰이게 됐는지 파악해서 밝혀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지적했다.
특별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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