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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보존이냐 주민 재산권 보호냐… 갈등 증폭

입력 : 2014-07-02 20:37:16 수정 : 2014-07-02 20: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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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법 안보이는 ‘문화재 지정 정책’ 지난달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세계유산위원회는 1982년 등재된 태즈메이니아의 세계유산 지위의 일부를 취소해 달라는 호주의 신청을 심사했다. 이 엉뚱한 요청은 지역 목재업계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였다. 등재 지역이 140만ha나 돼 벌목이 제한되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었다. 또 이번 위원회는 남한산성을 새롭게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며 “인접 지역의 개발행위를 적절히 통제하도록 노력하라”고 권고했다.

남의 일, 괜한 걱정 같아 보일 수가 있지만 그렇지가 않다. 국제적인 주목을 받는 세계유산은 물론이고 국내 지정문화재에 대한 보존 정책은 지역을 개발하려는 욕구, 건물을 신축하거나 고치는 등의 현상 변경 행위를 제한해 종종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문화재 지정이 주민들에게 ‘영광’보다는 ‘고통’이 되기도 하는 건 그래서다. 

문화재 보존 정책은 주변 지역 주민들의 개발 욕구, 재산권 행사가 충돌하며 갈등을 빚기도 한다. 세계문화유산인 종묘를 둘러싸고는 인근 세운4구역의 개발 문제로 수년째 논란이 벌어지고 있고, 국가지정문화재인 풍납토성에서는 재산권 침해 문제로 인한 주민들의 불만이 심각하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문화재 보존’ vs ‘지역개발·재산권 행사’

세계유산은 ‘국가적 영예’로 간주되지만 등재된 유산의 보존, 등재 추진 여부 등을 두고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첫 번째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에서는 인근 세운4구역 개발을 둘러싼 힘 겨루기가 오래됐다. 세운4구역에 세우려는 고층 건물이 종묘의 경관을 해칠 수 있다는 게 문제였다. 해당 건물은 2009년 8월 122.3m 높이로 짓는다는 계획을 잡았으나 논란이 지속되자 75m로 크게 줄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논란을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했고 5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심의 중’이다. 세운4구역 주민대표회의는 “문화재청에서 과도한 규제를 하고 있다.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행정소송 등을 진행할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이다.

2011년 2월 등재 우선 추진 대상으로 선정된 서남해안 갯벌은 추진 과정에서 관련 지방자치단체의 이탈이 발생했다. 갯벌이 소재한 전남의 여수, 보성, 고흥과 전북의 부안은 지난해 5월 업무협약까지 체결했으나 차례로 등재 사업 불가 방침을 밝혔다. 4개 지자체의 이탈로 등재는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개발 제한 등에 우려 때문에 그런 결정을 했던 것으로 안다”며 “등재 일정은 (애초에 계획했던 것과 달리) 열어두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의 보존을 위해 설정하는 지역의 범위를 줄이려는 시도도 있다. 최근 인천시는 보존지역 범위 축소를 핵심으로 하는 문화재보호조례 개정을 추진 중이다. 현행 조례상 보존지역은 문화재 외곽경계로부터 주거·상업·공업 지역에서는 200m 이내, 녹지·비도시 지역에서는 500m 이내다. 인천시는 이를 50m, 100m로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문화재위원회는 지난 5월 회의에서 “역사문화환경 보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부결했지만 인천시의 개정 의지는 분명하다. 인천시 관계자는 “500m를 기준으로 설정된 보존지역의 넓이는 작은 도시 하나가 들어갈 정도”라며 “보상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는 보존지역 운영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화재 지정을 걱정하는 주민들

“국가사적지 지정에 대해 시민으로서 자축을 한다. 하지만 본인과 같은 해당 지역 거주자 및 토지소유자에게 큰 피해가 올까 염려스럽다.” 지난해 7월 경기도 양주시 대모산성(사적 526호) 주변 현상 변경 허용 기준이 논의될 때 시장에게 제출된 한 주민의 탄원서 내용이다. 이런 걱정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보호지역 내에서 개발행위, 현상 변경 등을 마음대로 할 수 없어 생기는 피해와 불편에 대해서는 적절한 보상이 따라야 하지만 그렇지가 못하다. 보존지역 내 토지를 국가가 매입하는 것이 문화재 보존과 재산권 보호를 위해 가장 적극적인 조치지만 예산이 너무 적다. 2000억원 정도가 배정돼 있는데 토지 매입뿐만 아니라 문화재의 보수와 주변 정비 등에까지 써야 하는 돈이다. 주민이 국가에 토지 매입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사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도 문제다.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11호)이 대표적인 사례다.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실에 따르면 사적지 매입을 위한 전체 소요예산은 2조5000억원 정도지만, 지난해까지 4700억원가량이 집행됐다. 이런 속도라면 매입이 완료될 때까지 82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박 의원실 관계자는 “보상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면 사적 지정에 따른 규제라도 대폭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상 변경의 경우엔 허가가 나지 않으면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지난 3월31일부터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국무조정실에서 문화재청으로 이관된 민원 45건 중 23건이 현상 변경 관련이었다는 점은 문화재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불만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다. 문화재법을 ‘악법’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하고, 문화재 지정에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서는 경우가 있는 것은 어떤 면에서 당연한 결과다.

보존지역 설정이 자의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 전문가는 “일반적으로 문화재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보존지역을 설정하지만 심사와 관리를 누가 하고, 지역이 어디냐에 따라 일관된 기준 없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불만이 더 커진다”고 꼬집었다.

문화재위원을 지낸 이형구 전 선문대 교수는 “문화재 보호와 재산권 행사의 충돌은 해결이 정말 어려운 문제”라며 “문화재청 단독으로 해결하기는 힘들다. 정부, 학계, 사회단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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