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이 검사 비위를 취재 중인 세계일보 기자의 등기우편을 불법 개봉한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검찰의 언론인 사찰 의혹이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그동안 검찰이 기자 동향을 파악한다는 소문은 법조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특히 고소·고발된 기자를 수사한다는 명목으로 언론 내부를 들여다보는 등 사실상 간접 사찰한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우편물을 뜯어보는 방법으로 출입기자의 동향을 엿본 의혹이 제기된 것은 충격적이라는 게 법조계 반응이다. 특히 검찰은 세계일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검 출입기자의 등기우편물을 대리 수령하는 형태로 언론의 동향을 파악해 왔던 정황이 확인됐다.
검찰의 언론 동향 감시는 예상보다 훨씬 광범위한 수준에서 진행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간 출입기자들에게 배달된 등기우편물은 전량 검찰이 대리수령해 왔다는 것이 이 같은 추정이 나오는 이유다. 대검은 올 들어 출입기자실 전체 명의의 우편물 42건, 기자실에 상주하는 기자들 앞으로 직접 온 우편물 8건을 대신 수령했다. 출입기자들에게 배달된 우편물을 대리수령함으로써 기자들의 동향을 일정 정도 들여다볼 수 있다.
대검은 기자들에게 배달되는 우편물을 대신 수령하는 것은 우편법 시행령 43조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이 조항은 동일건축물 또는 동일구내의 수취인에게 배달할 우편물로서 그 건축물 또는 구내의 관리사무소, 접수처 또는 관리인에게 배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대검 입구에 있는 관리사무소에서 기자에게 연락해 받아가도록 조치하면 되는데도 굳이 대변인실 등을 거쳐서 우편물을 수취토록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번 경우처럼 우편물 겉봉에 본지 기자 이름과 소속이 버젓이 명시돼 있는데도 뜯긴 건 더욱 이상하다. 법조계 관계자는 “그간 검찰이 출입기자 동향을 사찰해 왔다는 공공연한 비밀이 이번 파문을 계기로 풀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비판 기사 쓴 언론 동향 감시 의혹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그간 “시중 여론을 알아본다”는 명목으로 비판적 기사를 작성하는 언론사 기자들의 개인 정보를 집중적으로 추적해 왔다는 의심을 사왔다. 주요 수집대상 정보는 출입기자가 언제 누구를 만났는지와 취재원 또는 제보자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과정에서 검찰에 비판적 기사를 작성한 언론사에 대해서는 비방용 헛소문을 퍼뜨렸다는 의심을 꾸준히 받아 왔다. “A기자는 기사를 쓰면서 접대를 받았다더라”, “B기사는 저의가 있는 내용” 등 근거 없는 ‘카더라’식 소문의 진앙으로 의혹이 일었다.
또 민감한 기사를 썼다가 명예훼손 등으로 고발당하면 검찰은 기자를 상대로 “취재원을 말하지 않으면 언론사를 압수수색해 내부 정보망을 열어보겠다”며 협박에 가까운 수사 행태를 보여온 것도 사실이다.
세계일보가 보도한 ‘현직 검사 여행경비 명목 뒷돈 수수’ 기사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들은 취재원을 밝혀 달라는 요구를 여러 차례 해왔다.
박현준 기자 hjun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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