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학자의 메시지 깊게 생각해야 돈이 남아서 주체를 못하는 집안의 사모님들이 많이 손대는 분야가 미술품 컬렉션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하기야 쌓여 있는 돈을 쓰기에 미술품처럼 유효한 것이 없다. 부동산처럼 많이 사 모으다가 사회적 지탄을 받는 일도 없고, 자동차처럼 감가상각되는 것도 아니고, 잘하면 금괴처럼 값이 오를 수도 있다. 게다가 우아하고 고상해보이기까지 하니 더할 나위 없으리라. 그래서인가. 한국 미술품의 값어치가 터무니없는 잣대로 매겨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림크기를 재는 단위로서 이른바 ‘호수(號數)’의 크기. 물방울을 주로 그리는 화가의 그림에 물방울이 몇 개인가의 여부, 보리밭 그림의 보리 이삭 숫자 등이 그것이다. 헛웃음을 부르는 한심한 일이지만, 한국 미술시장을 실제로 반영하고 있는 현실이다.
더 잔인한 희비극은 특정대학 출신으로 똘똘 뭉쳐 미술계의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파벌주의다. 세상에! 어느 대학 나왔다는 걸로 권위 있는 미술관의 전시 여부가 결정되고, 그림값이 정해진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토목공사 비리 현장에나 있을 법한 일들이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곳이 대한민국 미술계다. 하기야 이 나라는 항공기 안전운항을 감독하는 항공 안전 감독관과 운항 자격 심사관의 대부분이 특정 항공회사 출신인 나라다. 미술계라 해서 예외이겠느냐만, 문제는 돈 많은 아줌마들의 취향과 학벌 카르텔 중심으로 기록된 한국현대미술사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에 나온 책 ‘나의 조선미술 순례’가 던지는 메시지가 가볍지 않다. 전작 ‘나의 서양미술 순례’(1993)를 통해 개인사, 한국현대사, 서양사를 교차시키면서, 그림을 읽는 새롭지만 고통스러운 방법을 일깨워준 재일교포 작가 서경식이 21년 만에 내놓은 미술 에세이다. 그의 이번 순례 대상은 유럽도 미술관도 아닌 한국 미술가들이다. 이 책이 다루는 미술가들은 신경호, 정연두, 윤석남, 이쾌대, 신윤복, 미희 등 6명. 부록에 담은 홍성담, 송현숙을 포함해도 8명뿐이다. 더구나 그중 몇몇은 지금껏 한국미술사에서 거론조차 되지 않았거나, 대부분 미술계의 주변 혹은 외부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이번 순례의 여정은 대로가 아닌 후미진 골목길의 풍경을 비출 수밖에 없으리라. 이 책의 저자와 작품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은 그림의 크기나 작가의 출신대학, 물방울이나 보리이삭 같은 화가의 마케팅 포인트가 아니라 죽음, 섹슈얼리티, 가족, 민족 등의 껄끄러운 주제들이다.
김무곤 동국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 |
조금이라도 매스컴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작가라 하면 걸핏하면 몇천만원을 부르는 게 한국 현대 회화다. 너무 비싸다. 세계 미술시장의 흐름과 가격구조와는 아무 상관없다. 그 값으로 팔리는 게 더 문제다. 그러니 돈 많은 아줌마들에게 잘 보이려는 화상과 화가만 가득하다. “오리가 다른 작품보다 세 마리 더 들어가 있으니, 한 마리당 오백은 더 쳐주셔야겠네요.” 미술 애호가라면 이 비슷한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리라. “거실에 걸 작품이니 좀 더 화사한 색깔로 다시 그려줄 수 없나요?” 한 화가가 탄식하며 해준 말이다. 파벌과 속물적 투자관행, 유통구조의 왜곡이 한국 미술을 혼미하게 만들고 있다. 이 탓에 깜찍한 신인의 발칙한 작품이 잘 안 보이는 게 가장 문제다. 서경식 교수가 한국미술에 던진 질문을 곱씹어야 한다. 그런데 이 글 때문에 이 책에 나온 작품 값만 오를까 걱정이다.
김무곤 동국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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