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주택시장에 그야말로 '봄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겨울 비수기가 무색할 정도로 올해 들어 집이 빠르게 팔려나가면서 1∼2월 전국의 주택 거래량이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중인데요. 현 정부 출범 이후 온갖 규제완화를 골자로 한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지만 최근 국내외 경기와 주택시장의 취약한 기초체력을 감안하면 기대 이상의 결과라는 평입니다. 거래량이 늘면서 집값도 조금씩 상승세를 보이고, 경매 시장에는 내집 마련과 투자수요가 몰리며 연일 북새통을 이루고 있습니다. 전세 물건은 품귀현상을 보이며 매매가 대비 전세가비율(전세가율)이 90%가 넘는 '미친 전세'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일부 지역은 보증부 월세까지 동이 난 실정입니다. 전문가들은 최근 주택거래량 증가의 발단은 심각한 전세난이지만 최소한 집값이 하락하진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실제 행동(구매)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3∼4월은 봄 이사철이 본격화되는 시기여서 당분간 주택시장에 '훈풍'이 이어질 것 같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올 봄 부동산시장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 봤습니다.
#. 서울에서 8년째 전세를 살던 직장인 김모(37)씨는 최근 성동구의 작은 아파트를 구입했다. 김씨는 "최근 전세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고, 2년마다 전셋값 올려주는 일도 버거워 일부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며 "전세와 매매가격 차이가 크지 않아 집을 사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연초 전세난에 떠밀린 세입자들이 주택구매에 가세하면서 올해 주택거래량은 가히 폭발적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월 주택 매매거래량은 총 7만9320건으로, 1월 거래량으로는 2006년 실거래가와 거래량 조사 이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주택경기가 좋았던 2007년 1월(7만8798건)보다도 많은 것이다.
2월에는 거래량이 더 늘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총 8605건으로 역시 2006년 조사 이래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설 연휴가 낀 1∼2월은 주택시장 비수기로 거래가 감소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지난달에는 사상 처음으로 거래량이 8000건을 넘었다.

이런 분위기는 본격적인 이사철인 3월 들어 가속도가 붙은 모양새다. 7일 기준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2787건, 하루 평균 398건으로 지난달(307건) 거래량을 크게 웃돌고 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국내외 경제여건이 썩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연초부터 거래량이 급증하는 것은 다소 의외"라며 "연초 강남권 재건축 이주로 전세난이 한층 더 심화되고 물건이 품귀현상을 빚자 전세난에 지친 세입자들이 주택 구입으로 노선을 바꾼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 최근 전세시장은 말 그대로 '전쟁'이다. 전세의 월세 전환 분위기 속에 서울 강동구와 서초구의 재건축 아파트 이주로 비롯된 '재건축발' 전세난으로 인해 수도권 아파트와 연립·다세대 주택까지 전세난이 확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전세가격은 '부르는 게 값'이다. 아파트 전세가율은 매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국민은행 조사 결과 지난달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은 70.6%로 1998년 12월 조사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방은 물론 최근에는 경기·서울까지 전세가율이 90%를 웃도는 곳도 속출하고 있다. 올해 들어 서울 성북구 종암동·길음동, 강동구 암사동 등 일부 아파트의 전세가격은 당월 매매 거래가의 90%가 넘는다.
주택 거래가 늘면서 가격도 상승세다. 국민은행 조사 결과 지난달 전국의 아파트 가격은 0.27% 오르며 지난 1월(0.15%)에 비해 0.12%포인트, 작년 동월인 지난해 2월(0.19%)에 비해 0.08%포인트 높아졌다. 서울 아파트 역시 지난달에 0.19% 오르며 전년 동월(0.13%)이나 지난달(0.08%)에 비해 모두 상승폭이 커졌다.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 부동산전문위원은 "최근 거래량 증가에 비해 집값은 꽤 안정적이지만 일부 인기지역은 전세는 물론 매매가격도 동반 상승하는 추세"라며 "최소한 집값이 떨어지진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고 전했다.

집값이 안정세를 보이자 최근 들어 투자수요도 가세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 등 은퇴자들이 소형 주택을 구입해 임대사업을 하려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서울 노원구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은행 이자는 연 1∼2%에 불과하지만 주택 임대사업은 연 5∼6%의 꾸준한 수익은 낸다"며 "집값이 하락할 때는 이마저도 메리트가 없지만 최근엔 집값이 안정되고 일부 가격도 오름세를 보이자, 임대수익과 자본수익(시세차익) 두 마리 토끼를 노리려는 투자 수요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연초 일반 주택 거래만큼 신규분양 시장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신규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데다 시세 차익까지 기대할 수 있는 투자 상품이 됐기 때문. 전통적인 분양 비수기로 꼽히는 올해 1~2월에도 전국 곳곳에서 여러 견본주택이 문을 열고 고객을 맞았고, 인기 단지의 경우 청약 경쟁률이 수백 대 1로 치솟을 만큼 몸값이 올랐다. 특히 정부의 대규모 신규 공공택지 지정 중단 조치로 희소성이 높아지면서 여전히 분양가가 싼 택지지구나 신도시 등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강태욱 하나은행 부동산팀장은 “이달부터 수도권 1순위 자격이 2년에서 1년으로 단축되는 등 청약제도가 대폭 완화되면서 인기지역을 중심으로 청약열기가 더욱 뜨거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이달부터 아파트 분양이 본격화되면서 무주택자를 중심으로 청약시장에 관심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3월 분양 예정인 아파트 물량은 총 5만8784가구로 200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3월부터는 수도권 1순위 청약자격이 2년에서 1년으로 단축되면서 1순위자들이 늘어나 인기지역 아파트의 청약열기가 더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함 센터장은 "현재 분양 시장은 무위험 시장"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수도권의 청약 1순위 요건이 완화됨에 따라 1순위 자격자가 500만명에서 700만명 정도로 늘게 될 것"이라며 "올해 분양 시장의 청약 경쟁률은 작년보다 더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매제한 기간이 6개월에 불과한 데다 가점제가 축소돼 누구나 뛰어들 수 있는 상황에서 환금성이 좋다 보니 직접 살려는 사람 외에 단기 차익을 노린 수요나 임대를 겨냥한 수요 등도 가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많은 물량이 쏟아짐에 따라 인기지역은 청약자가 대거 몰리고, 비인기지역은 미분양이 발생하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될 가능성도 크다. 강 팀장은 "물량이 너무 많이 쏟아지는 만큼 공급이 너무 많은 지역은 피하고 분양가의 적정성, 향후 자산가치 상승 가능성 등을 잘 따져보고 분양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